발칙한 QT
은혜의 손(시123:1-4) 본문
(시123:1-4)
2012년
새 해가 떴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그 빈 시간과 공간을
주님의 은혜로 채우소서
주님 은혜의 손만 바라봅니다
주인님의 하인처럼
여주인의 여종처럼
그리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 황량함과 곤란을
주님의 은혜로 채우소서
아마도 있을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을
오직 주님 은혜로 채우소서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어디에나 계시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조금 더 절박한 간구를 의미하는 듯하다.
특별히 눈들어 주를 바라볼 때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상전의 손바라보는 종같은 간절함으로
여 주인이 혹시 은혜를 베풀까봐 기다리는 여종 같은 눈으로
하나님,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은혜.
그렇다.
은혜 ,또 은혜 만이 우리가 살 길이다.
심한 멸시.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
예수님 안 믿어도 ,
대충 신앙인 흉내만 내어도 편안하고 세상이 다 잘풀리는 것 같은
그러한 '안일한' 자의 조소와
그러그러하게 성공한 자들의 멸시는
나름 열심히 주님을 믿고
밤낮없이 주님 만을 매달리면서도
현상을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이 주하인,
주님의 종에게는
한번씩 '주인이 나에게 계셨던가'를 잊어 버리는
이 어리석은 불신앙을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
나
믿는 자로서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보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는
그 메마른 불신앙의 경험이
늘... 더 나를 힘들게 한다.
그들의 멸시와
그들의 멸시를 통한 내 불신앙을 감지한 스스로의 멸시.
그것의 답은 '은혜'를 모름.
은혜 없음.. 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노력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단의 생각들이 붙는다.
생각은 생각을 낳고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다해도
매일 주님의 손을 바라고
그 분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는
넘어질 위험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어제.....
괜히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모임을 마치고 수영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10시가 넘었다.
가는 길목의 '갈멜산 기도원'은 나의 평화의 장소다.
기도원 자체보다
그 곳에 내려 놓아진 하나님의 평강의 은혜가
많은 분들의 절절한 기도의 흔적과 더불어
나에겐 고향의 편안함을 늘 주는 곳이다.
그래서, 핸들을 틀어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아.
사람이 너무 많다.
물어보니, 신년 기도회란다.
'우리나라'가 세상의 중심에 서 가는 이유는
이처럼 많은 분들이 아직도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생각이 퍼뜩들어
너무 마음이 좋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밖에 없는 이유,
기도하는 사람들.
은혜 사모하는 사람들.
주님과 어찌되었든 끈을 놓치 않는 사람들.........
그들,
어제 말씀에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함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란 말씀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성전에 들어갔다.
예배 시간이 마침 끝나서 나오는 사람들과
아직도 많이 앉아 계신 기도하시는 사람이 들이 밟힐 까봐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가며 빈 곳을 찾아 앉았다.
'예루살렘 성의 문을 열고 발을 딛길' 원하는 어제의 말씀 구절을
응답해주시길 바라면서도
설마 했던 마음에 '이게 그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참 기뻤다.
그랬다.
정말.. 마음이 참 좋다.
난.. 말씀이 이해가 가구
그 말씀이 내 영혼, 특별히 메말라 있는 듯 심령이 가난할 때,
그 말씀이 이해되며 물이 스며들며 황토를 적시는 듯한 느낌이 날때
난, 그것을 '은혜'의 한 현상으로 이해한다.
기쁘다.
사람이 아주 아주 많아 소란 스럽다.
그 소란의 가운데 깊이 들어가
한분 한분 외치는 소리가 응답되어 주시길 기도했다.
말씀대로..
방언하시는 분,
단을 두드리시는 분,
찬양하시는 분...
우시는 분... 모두 모두 주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찾아가 만나주시길 기도했다.
그러니... 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흐뭇한가?
그거야 말로 진정 은혜였다.
오늘 '은혜.. 은혜' 하신다.
그 은혜를 사모함이 주님의 주시는 말씀이시다.
그 사모함의 절절함이
주인의 손을 '간절한 기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바라보는
'하인'의 마음처럼 간구하라신다.
그래야 겠다.
오늘, 식구끼리 신년 맞이 외식이 있다.
무엇하나 희망적인 것이 많지 않은 2012년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잉카인들의 문서에 나오는 예언처럼,
지구적 재앙의 다발에 근거하여
젊은이들의 실업률에 의거하여
북한의 변수에 비추어 볼때
2012년은 어쩌면 '암울한' 한해 일 수 있다.
이때,
인간의 생각으로 어떠한 대책을 세우고 만족해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냥 바라기는 '우리식구' 모두
주님의 은혜의 손을 절절히 바라는 믿음으로 채워지길 소망한다.
내 아들들에게
더 빛나는 미래를 제시하는
소위 좋은 아버지로서 식사를 같이하면 폼나겠지만
난 그들에게 내 가진 '은혜'를 누리는 방법,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그냥 몸으로 보이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없다.
그것이 이전에는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좀 다르다.
그리되길 , 기도한다.
그리고 잔소리가 될 가능성에 대하여는 내려 놓고 기다리려 한다.
하나님 은혜의 손을 간절히 바라보는
주하인과
주하인이 될 아들들을 위해 기도한다.
적용
1. 은혜의 손을 묵상하자
주님의 손에는 무엇이 들렸을까?
내가 간구하면 주실 것이 들렸을까?
그 손은 희실까?
크실까?
여 주인의 손처럼 나긋 하실까?
.........
2. 은혜 만이 살길이다.
내 가족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길 기도한다.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음을 믿길 원한다.
세상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사모하는 삶 살 수있길 기도한다.
3. 새해 맞이 하며 '말씀'으로 많이 깨닫게 하신다.
특별히 '긍휼'과 '겸손'으로 옷입자.
은혜로만 가능하다.
타인을 사랑하자.
나를 인정하자.
이런 나를 사랑하자.
4. 성경 세장 읽겠다.
5. 비평과 조소에 둔감해지는 '은혜'를 주소서.
기도
내 주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주님.
주님의 은혜로만 전 살수 있습니다.
조금의 틈이라도 나면
안일한 자와 비교가 되고
그들의 조소와 멸시가 내 맘을 뭉게는 듯합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 안에서
매사에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와 은총으로
일상에 큰 변화도 있게 하소서.
주님.
환경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주님이 인도하시면 모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지금껏 제 인생을 그리해오신 주님
제 자식들의 그것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들이 상황에 맞추어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인도하소서.
오늘 특별히 가족 식사가 있습니다.
모임에 함께 하시고
선하고 좋은 결과 있어
그들의 삶속에 평강과 평화가 같이 하는
은혜로 주님 잡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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