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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기간(렘39:1-10 )

주하인 2010. 5. 3. 12:43

  제 39 장 ( Chapter 39, Jeremiah )

 

세상 모든 민족이

세상 모든 나라가

자신 들의 이익 만을 위해

처절히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잠시 유예받은 이시간에

의미없는 것들에 흔들리기 보다는

진실의  하나님의 영광 만을 위해

살다가는  그런 인생 들 되길 원합니다

 

비록 그게

그리 드러나지 않고

혹여 결실 뚜렷지 않으며

남은 여명 그리 많지 않더라도

그게 주님의 뜻이시라면

제 영혼 불태워

그리하길 소원합니다

간절히 바라나이다

 

 


1.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 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금방 함락 된 것이 아니다.

 거의 2년이 다되어서야 함락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시드기야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분명히 비밀히 예레미야님을 불러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조롱을 두려워 하기도 했는데...

그의 밤잠은  악몽일 때가 많았을 것이고

갈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년간 계속 그랬을까?

 

그 긴시간..

만성 스트레스 안에서 ?

 

 
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기타 모든 방백들이었더라 
 그리고 그 결국은

'바벨론 왕'의 예루살렘 성 입성이다.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아들들이 죽고 자신은 눈 빠졌다.


 
 

 시드기야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2년 동안 버틴 것이 참 신기하다.

그 매일 매일을 '하나님 말씀대로 항복할까?' '아냐, 백성들이 날 뭐라 할까?'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을 것인가?

이 시간 동안 아마도 바벨론은 공격도 했다가 잠잠했다가

나중에는 둘러싸고 말라 죽이는 작전으로 갔을 것이다.

그때,

공격이 퍼부어질 때는 방어하고 몸을 숨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주님의 말씀을 생각할 여지가 없기에 ,

잠시 뜸할 때는 폭풍 전야 속의 고요 때문에

역시 생각할 정신적 기력이 없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기다림에 들어가는

처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도 긴장을 놓고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람이 스트레스에 얼마동안 긴장상태를 유지할 능력이 있을까?

외국 사람들이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보며

늘 위험한 상태로 인식하던 것과는 달리

막상 한국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거의 전쟁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사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잊어 먹는다.

구약 시대 사람들도 그렇다.

주님의 임재하신 후 얼마 동안은 열렬한 믿음을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우상을 섬기고 불순종하고... 얼마나 또 많은 선례가 있던가?

우리 형은 수색대 , 그 군기 센데를 제대하고는

새벽같이 일어나 눈 치우고 체조하고 눈이 빛이 나는게

일주일을 못버티더니만 게을러지고 민간인 다 되었던 기억이 난다.

 시드기야도 처음 얼마동안은 흔들렸을 것이다.

항복할까? 말까?

그러면서 점차로 잊어먹게 되었을 것이다.

이 기간.

정확한 혼란이나 갈등은 잊혀졌지만

멍한 상태로 잊어먹게 되고 지나가는 시간.

이 기간 후에 예루살렘성은 함락이 되고 만다.

이 기간이 유예기간이다.

유예기간은 정리할 시간이다.

정리할 시간은 더 이상없다.

만일 현실을 부인하고  잊어먹고 망각 속으로 도피해버린다면

결과는 비참하다.

왕에서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다.

찬바람 맞으면서 배곯으면서 도망다녀야 한다.

잠도 못잔다.

머리는 터질 것 같고 눈은 빠질 것 같게 될 것이다.

결국 시드기야는 눈도 빠졌다 ㅜ.ㅜ;;;

유예기간 후 도적이 임하듯...

밭갈던 열 처녀 중 남아 버린 다섯처녀처럼

불현듯 임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이 유예기간.

지금 우리의 삶 속의 유예기간은 무엇일까?

난,

지금 부터....재림 예수 오실 때까지 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적인 재앙의 쉴 새 없는 발현,

종교적 갈등,

자원고갈,

지역적 분쟁 가능성의 늘어남.

폭팔적 이슬람의 팽창 및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인의 생각지 못한 늘어남 등

........... 세기말적 현상 들이 일어나면서도

우리 들은 '괜찮겠지'하는 막연한 생각 속에

회개와는 거리가 먼 생활들을 하루 하루 연명해 나가는 것...

비슷하지 않을까?

오래전 부터 종말론으로 들썩이며

급기야 시한부 종말론 까지 휩쓸고 지나가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의 요한 계시록에 똑같이 예언된 현 상황이 발현 됨에도

종말이란 사실을 눈을 감아 버리고

그 단어 자체에도 '이단'시 하거나 치를 떨어 버린다.

그리고는 삶은 점점더 하나님과 멀어지는 ...........

 

 나.

개인적인 유예기간은 어떠한가?

솔직히 열심히 열심히 나름대로는 영적으로 성화의 길을 달려간다고 각오도 하고

자부했었지만 흔들리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카자흐 스탄 및 발리 등에 대단위 사업을 벌이고 있는

CEO친구,

오랜 모태 신앙인이긴 했지만 그 친구의 삶을 안다.

인간적 매력이 넘치고 가정적으로나 사업적으로

입지전적인 성공을 했다.

젊었을 적 우리 친구 부부들은 정말 힘들게들 자수 성가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30여년 지나고 나니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 있었다.

나름으로 모두들 성공했지만

그 친구를 보면서 놀랄 변화는 마음 속에 질투 비슷한 감정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는 다가와도 나름 격조했었던 것도 있었지 않나 싶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번 다른 친구 모친상에서 만나 대화한

그 친구의 모습은 또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세상적이고 거친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깊어지고 영적인 모습.

그의 인생후반 설계도 뚜렷해졌다.

하나님을 위한 사업으로의 헌신.

신학대학과 기독교 사업을 실크로드 쪽에 대단위로...........

그랬다.

한편 너무 기쁘기도 하고

그의 변화는 친구들 사이의 전도의 촉매제가 될 것 같은

천군 만마의 힘이긴 했지만

나름, 세상에서 그리 의사로서 많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고생고생하다 여기 까지 온 내가

그들보다 조금은 그래도 치우치지 않은 것이

'영성'이라 생각해온 바가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았다.

난, 선택받은 소수.

그 친구는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은 적당한 크리스찬.

그래야 난 균형이 맞을 것 같은 어리석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이다.

그래.

분명한 것은

이전보다 훨씬 덜 흔들린다는 사실이지만

난 아직도 이런 '내'가 버젓이 살아 있음이 당혹스러웠다.

그래서인가?

뚜렷이 그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머리 한구석이 '멍'하다.

 

 아버지 학교 가려다가 너무 피곤을 많이 느껴 수영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큐티도 적다가 수술하면서 그럭저럭 미루어 버리고

아무런 마음의 부담도 없이 오늘 하루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아마, 내 속에는 '내 이런 삶의 방편이 너무 나에게 크게 생각되어 온게 아닌가? '하는

좌절감 내지 열등감이 그런 슬그머니 포기하는 생각으로 다가온 듯 싶다.

기도원 다녀온 지금 생각하니...ㅜ.ㅜ;;

그 친구는 그리 멋지게 큰 인물로 ... 난...... 겨우?? .. 뭐 이런 생각.

사단의 생각이 맞는 지는 알지만

그런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히면 팔다리에 힘풀어 버리던게

아주 아주 오래된 내 삶의 태도였었다.

예수님 믿고 은혜 체험하고 영혼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지만

가끔 그리 된다. ㅜ.ㅜ;;

 

 그래서 집으로 오면서 다짐했다.

이전에는 훨씬 더 자주 기도원 갔다.

지금은 예배 빼먹을 때만 느즈막히 간다.

확실히 영적으로 게을러진게 사실이다.

누구들과 비교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원하심에 비추어

내 하는 것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확실히 '게으름'맞다.

이 게으름은 날 '유예기간' 중에 있음을 눈치채지도 못하게 하고

그것을 알아도 시드기야왕처럼 멍.. 따..하고 있게 만드는 기본이다.

그래서 얼른 집에 가자마자

가벼운 옷을 갈아 입었다.

청바지 너울 거리는 것... 저 프로필 사진에 입은 저 하의로 갈아 입었다.

난 교회도 저거 입고 간다.

자유롭다.

자유주신 주님의 자유를 저렇게나마

답답한 내 일상에서 인정하고 싶은 모양이다.

안그런가?

집 교회 기도원 ........... 가끔 여행........

물론 누구야 안그렇게는가마는

친구들 만나고 오면 잘나가는 그들에 비교될 때마다

조금은 내 삶에 대하여 '좌절'비슷한 감각을 느끼니

이제는 알고 있으니 자유롭게 되기 위해 그랬다. ㅎ

 

역시 주님은 날 기다리고 계셨다.

 MP3의 찬양 녹음 한 것들이 그대로 기도로 되어 내 영혼으로 들어왔다.

오르 내리는 길에 사진을 찍는 데

예전의 그 폭죽 끓는 듯한 영감이 터져 나온다.

사정없이 셔터를 눌렀다.

주님은 상황에 하나도 상관없는 '은혜'를 주심을

또 이렇게 상기시키신다.

한참을 구석쟁이에 의자에 앉아 혼자 기도했다.

'내 문제' 만을 가지고 그랬다.

주님은 내려올  때 즈음

'모든 거 주님의 영광 위해'라는

당연한 느낌을 지속적으로 주신다.

그렇다.

난, 내 달란트를 주님 영광 만을 위해 내려 놓으면 된다.

내 가슴을 흔드는 달란트 대비 아주 적은 현실의 포상- 철저히 내 교만의 느낌..^^;;- 의 열등감이 날 누르려 해도 '그래도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터부....... 그래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다보면 정리될 것 같다.

마음이 뜨겁다.

그래..

유예기간을 조금 더 뚜렷이 헤쳐나가며

진실로 선택받은 소수로서 나 자신의 자존심을 넘어서

주님의 영광 만을 위해 살 가능성이 있어진 듯

기쁘다.

최소한 시드기야의 미련한 유예기간,

세상의 어리석은 유예기간을

나는 달리할 것 만 같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오늘의 마지막 몇분을 남겨놓고 겨우 마무리 해가는 묵상입니다.

주님 아시지요?

제가 왜 이리 어려워 했는지요?

시드기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도 알았지만 그도 흔들리고 방황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지금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현실에 파묻혀 살다가

재림예수님 오실 때 땅을 치고 후회할 것처럼

바벨론 군사들에 의하여 저 고문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그리되지 않는 다는 보장이 없음은

오늘 이 느즈막히 쓸수 밖에 없는

흔들리는 영성에 의해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여러가지 깨닫게 하시고

제 블로그 운영의 본질,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일,

그것을 통하여 아주 적은 제 달란트의 결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값없이 너무 편하게 해내고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이 절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다시한번 확인했습니다.

제 영감이 잠시 다시 살아나고

은혜의 시간 중에 있게 해주셔서요.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그리 해주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이 유예기간,

잘 보내게 하시고

주님을 늘 잊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안되면 깨닫게 하시고

되면 더욱 더 그리하게 하시되

주님 ,

주님의 기쁨으로 그리하게 하시고

주님.,흔들리지 않게 하시옵소서.

저.

강력한 후반의 목표가 되게 하소서.

그 유예기간,

주님오실 그 날까지 죽도록

어떤모습이든 영광 드러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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