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항복( 렘38 :14-28) 본문
제 38 장 ( Chapter 38, Jeremiah )
17.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
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18.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님을 조용히 비밀하게 불러들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시드기야의 갈등이 느껴진다.
예레미야님은 갈대아인에 '항복'하라고 한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고
항복하지 않음은 하나님께 항명하는 것임을 경고한다.
19.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컨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그렇게 될시
'조롱 받을 자신'의 입장을 두려워 한다고 말한다.
24.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말을 사람으로 알게 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리고는 입단속을 시킨다.
그것은 그가 마음 속으로 '선택'을 끝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복'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말이 두려움에 항복하기로..
어제 노동절.
아내와 오랫만에 멀리 나들이를 하려 차비를 차리던 아침 일찍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모친이 별세하셨단다.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시지 못했던 분이시다.
89세.
호상이시긴 하지만 마음이 안좋다.
잠시 앉아서 묵상기도를 했다.
'옥'에서라도 전도가 되시길....
그리고는 아내와 외출을 마치고
저녁 늦게 되어 '수원'에 있는 빈소로 찾았다.
'연화장'
노대통령, 천안함 일행의 화장으로 유명해진 곳.
수원시에서 운영하지만
이름에서 그렇듯 불교식으로 운영되는 곳인 듯 싶어
마음이 그랬다.
그래도 오랫만에 친구들 만난다는 기쁨이 들기도 했다.
오늘 새벽 늦게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친구 들은 고등학교 시절 부터
대학시절을 넘어서 결혼해서 까지
부부동반으로 열심히 열심히 만나던 친구들이던 바
나이 들어 오히려 너무들 바빠서 만나기가 더 어려웠다.
개중에는 '글로벌 리더' 급에 속할 정도로 성공한 CEO친구도 있고
대기업 부장들,
녹음실 운영하던 친구도 있고
병원 첨단장비실 인테리어 방면에서 최고를 달리던 CEO까지
나름대로 꽤 탄탄한 자리들을 잡고 있는 친구들이다.
고등학교 때 '우리들 세계'라는 프로그램에 출현하여
노래로 탄탄한 팀웍을 다지면서
졸업하고는 방학 때마다 시골에 같이 숙식하고
아르바이트도 같이하고 놀러다니던
그야말로 '불 x친구'들.
나를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 불신자였던 우리들은
시간이 훌쩍 지나고 지금이 되어서는
두 친구 만 빼고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되어 있었다 ^^*
만날 때 단 한번도 서로의 돈을 탐내는 고스톱은 친적이 없었고
술이나 특별한 음탕한 짓을 한 추억들이 없었던 고로
솔직히 그게 오히려 나이들어 팀 결속에
구심점이 없었던게 사실이긴 하다.
어제 오랜 이야기 중 그 이야기가 나왔다.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관심사가 나왔다.
불신자 그룹들.
술 잘마시고
한친구는 골프에 푹 빠져 있고
다른 한 친구는 몇시간 씩 테니스를 치는 테니스 광팬이 되어 있었다.
물론 술도 열심히 마신다.
그들은 구심점으로 '골프'를 제안했다.
앞으로 두달에 한번정도 만날 계기가 될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 믿는 그룹들.
한친구는 독서와 교회 봉사가 유일한 취미다.
또다른 친구도 거의 그리 되어 간다
난, .........
골프는 군대가서 필드 몇번 나갔다가 취미가 되지 못해서 ..
술도..
운동도 걷기나 수영 정도..
어찌보면 세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면 무미건조한 사람들로 느껴진다.
성공한 두 CEO 친구들은 운동과 기도와 찬양.......에 골고루..
역시 다르긴 다르다. ㅎ
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난 양 그룹의 얼굴들을 살폈다.
불신자 친구들을 보는 우리 그룹들은 차분히 쳐다는 보지만
안타깝다는 느낌으로 그들을 보는 듯 했고
불신자 친구들은 우리 들이 얘기 할 때 비웃는 - 조롱하는 듯, 어이없다는 - 표정들로
보였다.
난 확실히 보았다.
저들.
불신의 친구들은 아직도 관심이 '자신'에 있었다.
자신의 즐거움,
자신의 건강.
그리고 그 전제 조건에 '현재 상황'에 있었다.
현재 지금 자신들이 즐기는 상황이 즐거우니 그것에 추구하는 듯한 느낌.
우리 믿는 친구들은 ' 하나님의 일로 인한 타인에 대한 배려'로 하루하루 이어나간다는 느낌.
솔직히 난 그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가능하면 그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들은 자신의 젊음 -벌써 50넘으면 젊음은 끝났는데... - 이 언제까지 이어질 듯
그 안에 머물려 자기최면을 넣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열심히 테니스를 해서 아직 몸이 튼튼하니 더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열심히 실내 골프를 즐기니 너무 재미있고.......
조심조심하며 난 그들에게 물었다.
'몇년 더 건강하게 그럴 수 있겠느냐?'
그후에는?
대답은 못한다.
난 강변햇다.
난 이래이래서 삶이 힘이 있다.
난 기쁘다.
예수님 믿는 것은 삶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
거기까지하고는 '그래서 너희도 믿어라'는 말은 말꼬리를 감추었다.
너무 강한 대쉬는 부작용을 일으킬 것 같기도 했었다.
역시 CEO 달랐다.
ㅎㅎ
그 친구는 제안을 했다.
'친구들이 친구로 유지되지 위해서는 만나야 한다.
그래서 구심점이 필요하다.
너무도 취미가 다르고 관심이 다르니 이렇게 하자.
책을 한권씩 읽어 매 두달마다 만날 때 나누자.
만나는 곳은 각자의 부모님 계신 고향에서 돌아가며 만난다.
만나는 장소에서 두시간 정도 나누며
관광도 하고 올라온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해외봉사도 염두에 둔다.
.............'
좋다.
난 거기에 노래 좋아했던 친구들이니
찬양까지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중에 이루어질 문제다.
항복.
무엇에 항복하여야 하는가?
무엇에 항복을 못하는가?
무엇에 항복을 하고 사는가?
난 어떤가?
나에게 항복 못한 부분은 어디던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항복'을 선언한 자들이고
자신의 성품이나 환경이나 순간적인 선택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고
결국 영혼 속의 모든 부분들이 다 주님께 항복을 하여
온전히 내 자아는 사라지고
주님의 뜻만이 영혼에 올곳은 의지로 자리 잡아 가는 자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그래서 삶에서
그들의 관심이 '자신'에서 점차로 벗어나
'타인'들에 대한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그 증거로 나온다.
자신을 온전히 낮추고 '기쁨'으로
하나님과 타인을 위한 낮춤으로 바뀌어가
결국은 어떠한 사람들은 '삶의 방편'을 버리고
과감히 타인을 위한 '목숨'을 버리는 '순교'의 행동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것 같은
비 논리적이고 불합리한 듯 보이는 일에서 조차도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바뀌어 가게 되는 것이다.
반면 '불신자'들은 '사단'에 항복하는 자들이고
그들은 거짓의 영인 그들의 특성대로
'자신'의 뜻인 것처럼 속는 것이다.
그들은 유일한 관심이 '자신'이다.
자신에게 항복함은 방향을 잃음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자신의 육신의 힘이 떨어지고
상황이 변하여 자신이 '힘'을 잃어갈 때
목표를 잃어 버리게 된다.
위에 얘기 했고
나의 경우를 보아도
항복이란 단 한번에 다 일어나는 게 아닌 듯싶다.
어느 부분에서는 온전히 자아의 부인을 하지 못한다.
온전한 자기 부인,
온전한 주님 앞에서의 항복이 있을 때에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에 거할 자격이 부여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땅의 삶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항복'을 해야 한다.
주님의 뜻에 항복할 결심을 하고
아직도 적군처럼 남아서 게릴라 행동을 하고 있는
내 죽지않은 자아를 들어내고
주님의 성령 아래 말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선혈에 씻어야 한다.
그래서 정결히 되어야 한다.
매사에 항복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다.
아침에 돌아와 자고 본교회에서 예배를 들였다.
예배를 드리고 나니 피곤하다.
그래도 어제 그 기독교인 CEO 친구가 그랬다.
'이런 친밀한 친구들에게는 끝까지 빈소를 지켜주는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
그렇다.
다시 수원에 가기는 몸이 몹시 피곤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주님의 뜻일 줄도 모른다.
세상의 법칙에 따르는 불신자들도 그런다.
난 솔직히 '연화장'이란 불교냄새의 이름이 거북스럽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안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는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
그러기로 했다.
조금 더 쉬다가 일어났다.
이제 가련다.
기도
주님
세상에 어떤 것이 올바른 일인지
잘 구분이 안갈 때도 있습니다.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막연히 알고는 있지만 지키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시드기야왕같은 잘못된 선택을 할 때는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주님.
늘 올바른 지혜를 통한 선택을 잘 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항복을 잘하게 하소서.
매사에 그게 옳다 생각이 되면 과감히 지키고 따르는 자되게 하소서.
예수님.
오늘 주님 뜻대로 친구 모친 빈소에 다시 가려합니다.
제 안에 부대낌 막아 주소서.
주님 뜻이면 기쁘게 그리하게 하소서.
제 가족지키소서.
모두 주님 앞에 그리하게 하소서.
세상의 모든 믿는 자들 그리하게 하시고
제 친구들 이로 인하여
모두 주님 안에서 하나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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