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가 붙든 것은(렘 38:1-13 ) 본문
제 38 장 ( Chapter 38, Jeremiah )
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 나 여호와가 이 같이 말하노라'
갇혀 있는 상태의 예레미야님 입에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선언이 나온다.
지하감옥 토굴을 두려워 하는 분이다.
그 소리는 한결 같이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강력한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
그의 소리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의 입을 통해서 발하시는 소리다.
그는 하나님께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선언한다.
5. 시드기야 왕이 가로되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릴 수 없느니라
시드기야왕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않는 듯하다.
사람들을 두려워 한다.
그는 애굽의 손을 힘입어 왕이 된 자다.
사람 들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지도 않는다.ㅜ.ㅜ;;
10. 왕이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는 여기서 삼십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그것은 에벳말렉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 구덩이에서 예레미야님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
강력한 자기 부인을 하는 것이다.
그는 헷갈리고 있다.
정황상 예레미야님이 하나님의 사도가 아닐 가능성이 적은 것을 알면서도 저런다.
그의 심사는 '부정'이다.
강력한 부정.
그 바탕은 '헷갈림'이다.
어떤 것이 옳은지 중심을 잡고 붙들 대상이 흔들리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흔들림.
'
6. 그들이 예레미야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
를 줄로 달아내리웠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 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
예레미야님.
또 다시 구덩이에 갇혀 버리게 되어 있다.
요아긴의 토굴에 갇힐 것을 두려워 하던 어제의 묵상 구절(20절)에 의하면
구덩이에 갇힐 때 많은 생각이 스쳤을 것 같다.
그의 일생은 왜 이리도 힘이 들까?
고난 고통 뿐이지 않는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집어 던지지 않고 줄에 달아 내리고
내려간 구덩이 바닥이 일단은 물이 흥건하지 않는 물없는 진흙 바닥이라
조금은 쿠션 감에 있어서 낫지 않았을까?
그 안에서 예레미야님은 어찌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푹신한 웅덩이에 앉아서
자신의 무서움과 두려움을 기도로 알려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들려하는 온갖 자괴감과 상념들을 고백했을 것이다.
어제의 묵상이후로 그 분이
'믿음의 로보트'처럼 기도만 하고 아무런 두려움이나
인간적 흔들림 없이 버티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기는 힘들어 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기도하며 깊은 평강을 얻어 갔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기도를 멈추면
그도 밀려드는 혼란은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러기에 더욱 기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도하기에 적합한 쿠션감의 진흙 , 어두운 조명 위에서...
이러한 추정은
처음에 그 군중 들 앞에서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외침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하면서
강력한 주님의 임재 안에서 선언하던 모습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이 대비된다.
왕이고 왕궁이고 사람들에 의하여 둘러 쌓여 대접 받고 있는
흔들리는 '시드기야'왕과
깊은 구덩이 속에 두려움과 고독 속에 쌓여 있어야하는
기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다.
무엇이 다른가?
왕은 왕이지만 옳게 붙들고 있는 중심이 없다.
예레미야는 갇힌 몸이지만 '하나님'을 강하게 붙들고 있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결국 예레미야님은 구조를 받았다.
왕은 나중에..............잘못된다.
무엇을 보이시려는것인가?
이 땅 위의 삶은
어찌보면 구덩이 속 삶 같다.
왜 이리도 힘든 일 뿐이던가?
앞을 봐도
뒤를 보아도
어디 하나 희망이 없어 보인다.
도울 사람 하나없고
모두 자신들의 소리들 뿐이다.
내 어려움 한번 들어 주길 그리 바라는 데도
듣는 그들의 귀는 막혀 있다.
소통 부재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의 위안은 있다.
기도할 수 있다.
기도할 편안한 기도처가 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내면 옆에 계신듯 주님이 느껴질 때가 자주 있다.
말씀을 잡고 묵상을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진다.
그때는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때는 희망이 소롯이 임한다.
세상은 사라지고
주님이 보인다.
윗쪽 하늘은 막히지 않았엇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어렵지만 난 기쁘다.
흔들리지만 다시 돌아온다.
내 결국은 다시 구원임을 깨닫는다.
그것을 확신한다.
구원 이후의 내 결국은
천국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감사하다.
위안이 된다.
힘이 된다.
편안하다.
평강이다.
기쁘기도 하다.
난 내가 예수님의 구원을 받았음이 행운임을 기뻐한다.
다른 그들이 그리 부럽지 않다.
그들이 오히려 불쌍하다.
감사하다.
주님
제 주인되셨음이
제가 주님의 하인이 되고
주님의 자녀가 됨이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예기간(렘39:1-10 ) (0) | 2010.05.03 |
---|---|
항복( 렘38 :14-28) (0) | 2010.05.02 |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렘 37:12-21 ) (0) | 2010.04.30 |
확신과 자기 기만 ( 렘37:1-10 ) (0) | 2010.04.29 |
주님의 말씀이외에 그 어느 것이 (렘36:20-32) (0) | 2010.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