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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 이탈리아 III (로마) : 바티칸

주하인 2012. 7. 17. 18:41

 

제 9일 째 ( 12. 07. 03 ) 

 

 .

로마시내 전철은 A와 B 두 라인 밖에 없다.

너무나 유물이 많기에 함부로 파다간 귀한 유물이 다칠까봐란다.

정말 복받은 후손들이 아니던가? 

 

 

 

로마를 여행할 곳은 며칠 간을 잡아도 다 부족할 정도로

볼거리야 많겠지만 어디 '나'.. 시간이 있던가?

의사생활 하면서 

아니 평생 처음으로 12일의 휴가를 즐겼던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볼곳은 많고 시간은 없으니

줄이고 줄인 컴팩트 여행으로 하다 보니

프랑스는 '파리', 그중 파리에서도 에펠탑

스위스는 그곳 아니면 경험치 못할 풍경 중 , 편한 곳..

이탈리아는 ' 명품 맛보기', ' 수상도시' 맛보기'와 더불어

수도인 '로마'..  그 중에서도 실은 바티칸을 보기 위해서 

이태리를 가자고  아내가 그리도 강하게 원했기에

유럽 가는 길에 위의 스케쥴이 짜이면서

컴팩트한 맛뵈기 여행이 된 것이 아니던가?

 

가운데

그로테스크한 헤어스타일 ^^; 을 하고

가슴에 마이크를 달고 있는 분이

'헬로우 유럽'의 투어 가이드다.

너무 흥미롭게 가이드했기에

다시 보아도 사랑스러워 이름을 밝힌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가이드 3년차의 의류학과 출신이란다.

 

 

 바티칸은 도저히 '투어가이드' 없이는 여행할 의미가 없는 곳.

그래서 국내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갔다.

비슷비슷한 '한국 여행사'의 이탈리아 투어사가 난립하고 있지만

여행기등을 통하여 고르고 골라보니

'헬로우 유럽' - 우리가 선택한...  - 과 ' 자전거나라' 의 두 군데 가 가장 명망이 있는데

두 곳 모두 일장 일단이 있지만

조금 여유롭게 하는 곳이 먼저 표기한 헬로우 유럽이라는 말에 이곳을 선택하였다.

 

 

ottaviano 역까지 8시도착하여 바티칸 국경 정문으로  향한다.

우리는 거꾸로 가는 바람에 15분 늦었다.

그래도 다행히 기다려 주는 바람에 합류할 수있었다.

 

 

 

 여섯시 반에 일어났다.  

모이기로 한 장소까지는  숙소인 'Termini' 역 에서 부터 약 40분이 걸리기에 그런것이다.

 민소매, 반바지 안된다 하니 주의 해야 한다. 

또한 끈없는 슬리퍼, 무릎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나, 반바지는 입장이 제한되실 수 있고

카메라 삼각대, 휴대용 칼, 무기갈 될만 한 물건은 소지하실 수 없다.

 선크림 , 모자, 우비.. 등을 챙기고는 얼른 서둘러서 나갔지만

길치인 나는 그날도 역시.. 거꾸로...가다가 서둘러 돌아가서

겨우 겨우 일행에 합류할 수 있었다.ㅎㅎ

 

 

 

 

바티칸은 누구나 알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작은 '소국'이다.

그러기에 저 돌담의 국경이 있고 , 우체국, 경찰서...등 모든 것이 있고

심지어는 상징적이지만 군인도 있다.

 

 

국경 바깥,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 부터 장사진을 이루고있었다.

그날이 월요일이고 , 아직 본격적 성수기가 아님에도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 북새통이었다.

성수기에는 정말 공중에 떠서 움직인다하고

여기에도 '소매치기'는 많다고 하니 주의할 일이다.

 

참고로 난, 옥션에서 1800원짜리 , 배송비가 2500원인

배보다 배꼽이 큰 , 아주 저렴한 복대를 사서

거기에 돈과 여권, 카드등을 넣고 속옷을 입고 그 바로 위에 착용하고

바지를 입으니 편하고 안전했다.

쓸만큼의 지폐만 잠시 잠시 조금씩 안전한 장소에서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고 크로스 백으로 앞을 가로질러 차니

그래도 그래도 안심이었다는 것이다. ㅎ

 

한편 우리가 알고 있는 막연한 유럽 선진국의 인상은

여기에서도 여지없이 흔들렸다.

새치기는 그들의 일상인듯

자연스레이 밀고 들어오는 일행들이 많았다.

그래도 여행~~은 사람을 조금 인자하게 만드는 현상을 벌인다.ㅎ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검문소 비슷한 곳을 통과하긴 하나

여권대신 성인15유로 짜리 티켓을 끊고 들어가야 한다.

 

 

 

 국내에서 투어는 일인당 '3만 2천원'의 비용을 계산했으나  티켓과 점심등은 본인이 알아서 계산해야 한다.

 각자 티켓을 끊고는 공항 검문대 비슷한 곳을 통과해 들어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거기 한곳에 모여 각 조별로 인원체크하고 본격적으로

바티칸 국내로 이동했다.

 

.일행은 약 30명 정도로 가이드의 마이크 설명을

무선 이어폰을 통해서 들으며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거기서 난 A조 조장으로 뽑혔다 ~~!!

울 어머니 아시면 이탈리아에 가서도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아들이 자랑스러우실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

 

 

  이동은 사진에서 보듯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

 

 올라가니 넓찍한 광장이 보인다.

거기에 일단 모여 기다리느지친 몸을 잠깐 식혔다.

 

 

 

르네상스  이전 중세 시대의 미술관

가이드의 유려한 설명은

미술에 문외한인 우리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흥미는 내내 바티칸 투어를 질리지 않게 했다.

 

 

 중세 미술의 특징은 원근감이 없고

사람들의 얼굴을 동양인처럼 둥글게 표현한게 특징이란다.

정말 .. 그러고 보니 모두 복스럽고 둥글하다.

르네상스로 넘어서면서

원근감, 구도, 빛의 표현으로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림의 변화를 조금씩 깨달아 가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 미술관.

 

 

 듣는 순간 , 아..그렇구나.. 하면서

유명한 하면서 이해가 가고 유명한 화가의 이름이 외워지는 듯했으나

가물거린다.ㅎ

어차피 미술에 조예가 있고 전공하신 분들은

인터넷 서핑하면 무궁무진하게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직접 가보면 더욱 감동스러울 수 있다.

 

 

 

바티칸 내 휴계소 음식점

불량과자처럼 보이는게 '파스타'

 

 

 이것 저것 많은 얘기를 재미있게 듣다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1시간여의 시간을 주고 바티칸 내 휴계소 식당을 이용하라 한다.

 우리 A 조에 속했던 '대학생 배낭여행'객들은

아침에 준비해온 식사라고 '주섬주섬' 도시락을 펼쳐든다.

 

 우리나라 휴계소 처럼 이것 저것 음식을 선택하여

계산은 카운터에서 시행한 후 좌석에 앉아서 먹는 시스템이었다.

정말 음식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파스타는 밀가루 뭉쳐 놓은 듯 한 맛으로 짜지도 달지도 않은 맛이었고

후식으로 선택한 과일 칵테일도 그냥 물에 가장 맛이 없는 과일들을 잘라서

약한 단맛이 나도록 설탕을 아낀 설탕물에 그냥 버무려 놓은 듯 했다.

가격은 또 왜그리도 비싼지..

바티칸의 식당은 가급적 자제 하시기를 ...ㅎ

 

 

식사 후 여유 시간.

뒤로 보이는 것이 베드로 성당이다.

 

 

 한시간 이상의 점심시간을 즐긴 후 에 우리는 다시모였다.

 

 

솔방울 조각상을 보면서 들어선 광장.

르네상스 시대 미술관 안에선 가이드를 할 수 없단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한 상태로 그늘 아래 앉아

많은 설명을 듣고 들어 갔다. 

 

 

 

 미켈란 젤로는 정말로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였던 모양이다.

 

입장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가이드'께서

현장감 있게 불러낸 '미켈란 젤로'를  드라마 보듯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

그는 기행으로 유명한 자였다.

특별히도 천지 창조를 그릴 때 '수년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천장에 그림을 그릴 때 전적인 지원을 하던 '교황'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거의 완성을 앞두고 살그머니 들어왔다 들키는 장면에서는

얼마나 재미있게 표현하는 지 모두 '탄성'을 지를 정도였다.

각설하고 붓을 팽개치고 그 시대 그 엄청난 위세를 지닌 교황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 가버렸다한다 .

그 나머지 미완성의 부분을 채우려 초청된 수많은 당대의 유명화가들 중에서도 

천지창조를 완성하는 게 모두 불가능하다 하였다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 입체감' 들도록 그리는 것은

당시로는 '미켈란 젤로' 이외에는 표현 불가한 기법이었고

이런한 것은 그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음을 상징한다.

 

그런 그의 미술에 대한 집념은

여러구의 '인간의 시체 해부'까지 하면서 얻어진 인간신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로 부터 표현된 섬세한 '근육'의 표현은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는데

더욱 놀라운것은 천지창조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그는 조각가 였고 다비드 상이 그의 작품이 아니던가?

그는 천지 창조를 그리기 이전에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던 사람이라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천재성이던가?

하나님이 내리신 특별한 천재....

 

조각 분야에서도 모두 조각을 하기 위해서는 그 조각보다 훨씬 큰 대리석이 필요했으나

그는 거의 비슷한 크기의 돌 만으로 조각을 그리도 훌륭히 해냈다는데

그의 탁월한 영감에 대한 유명한 그의 말이 있다.

"그 형상은 처음부터 화강암 속에 있었죠.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들만 깎아냈을 뿐입니다"

놀라울 뿐이다.......................

 

 그 시대를 뒤흔든 '세 천재 미술가들',

미켈란 젤로, 레오나르드 다빈치, 레오나르도다빈치, 라파엘로'

그 천재들 사이에도 많은 힘의 역학이 있었다.

너무 재미는 있었지만

갈매기들 조차도 저리 그늘을 찾는

저 무더위에서 아랑곳 않고 오랜시간 열변을 토하는

가이드도 역시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가이드 3년 만에 15키로가 빠졌다니 이해가 갔다.

 

 

각설하고 천지창조의 완성은

결국 후대의 교황의 요청으로 다시 복귀한 그가 4년여 만에 완성하였다 하는데

그 높은 천장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서 

200평이 넘는 그 넓은 성당의 천장에 그림 그리는 장면을 연상해 보니

정말 그 작업은 엄청난 고행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괴팍함으로 인하여 초기 몇년은 '제자'들과 같이 작업을  시작했으나

모두 떠나가고 후반 2~3년은 홀로 작업을 했다니

그 높은 곳에 물감을지고 올라가서 천장만 보고 누워서 ,

굴곡진 곳은 하늘을 향해 목을 뒤로 젖히고 그림그리던 작업 후

결국은 허리가 구부러질 지경이 될 정도였다한다.

그런데 그 몸으로 당시 90살 까지 살았다 하니 기이한 천재가 틀림은 없나보다...

 

 

르네상스 미술관이 시작되며당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 되어 있다.

 

 

 르네상스관과 미켈란 젤로관은 들어가서 설명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던 탓에

모든 배경을 가이드로 부터 들은 후 시간이 되어 한줄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정말 ....눈의 호사였다.

가는 곳 모두 쳐다 보는곳마다 아름다움 뿐이다.

유럽 투어의 마지막날이.. 정말 의외의 감탄으로 채워지니 기쁘다.

 

.천장 구석구석이 모두 화폭이다.

어떻게 저런 발상들이 가능했을까 놀랍다.

 

 원근감과 구도.. 등을 염두에 두고 하나하나 보니

모두가 감동이다.

빈틈없이 채워지는 구성도

저 높은 곳에 올라가서 그림을 그리던 그들의 고행도..

생각하니 감동스러울 뿐이었다. 

 

3대 천재 중 또다른 유형의 천재, 라파엘로.

그는 미켈란 젤로의 철저한 천재성은 없어도

스승이나 다른 유명작가의 화조를 그대로 베껴내는 모방작가였다.

그러면서 그는 끝없이 성장하는 노력의 작가였음이 감동였다.

 

 

 라파엘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철저하게 유행을 따라간 사람이고 세속적 인기영합주의자로

수많은 여인과의 염문으로 인하여 결국 성병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인하여 30대에 요절했다하는 흥미로운 사람이 맞았다.

얼마나 여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던지 작품마다 당시 사랑하던 애인의 얼굴을

모두 집어 넣었다 한다.

그의 작품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아테네 학당'등이 유명하다.

 

설명을 통해 그림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니

다양한 유파의 그림 사조가 녹아 들어 가 있음을 알 수있어

진정한 창작이라는 면에서 답답한 마음이 없지 않으면서도

수많은 질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발전시키는

그의 노력의 결실은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천재는 아니지만 노력으로 이루어낸 천재

사람들의 질타에 굴하지 않는 꿋꿋한 사람...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 인간이 흉내내기 어려운 천재에 대한

질투가 좌절을 불러 올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복해내고 자기 만의 한 분야를 이루어낸 의지의 인물..

그가 라파엘로 였다.

매력적인 인간들...

 

 내 부족함...

하나님 안에서 죽을 때까지 변하려고 내려놓고 또 내려놓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영적 품성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안에서의 열심은

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할 이유보다는 더욱 감사하며 열심이 살 이유를

라파엘로를 보며 다시금 깨닫게되었다.

바로크 시대.

인본 주의의 그림.

좌측에 보이는 어두운 배경의 그림이 예수님의 모습이다.

창에 찔려도 성스러운 모습이 이전의 사조였다면

아파서 어쩔 줄 모르던 예수님의모습이 상징하듯

인간 실제의 모습을 표현하려는 사조가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다.

 

 

 바로크 시대 미술의 특징은 '인본주의'적 표현이고

빛과 그림자의 대비다.

 

 그 바로크 시대의 중심에는 '카라바조'라는 특별한 화가가 있었다.

 가이드의 유려한 설명에 의하면 그는 매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는 '창녀'인 어머니 슬하에서

갖은 고난을 겪어가면서 성장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고

그런 그의 부정적인 눈은

어두움과 대비되는 빛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고

근육등 인간의 실제적 특징을 헐씬 더 세밀하게 그리면서

그의 관심은 '인간'의 실재에 대하여 깊이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파격적인 그림은 당시 시대를 너무 앞서 가게 되며

그의 일생은 불행하게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었으나

점차로 유럽 전역, 특히 네덜란드 쪽에서 인기를 끌면서

빛의 화가라 불리는 '루벤스'에게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흥미진진한 설명을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천지창조'가 있는 곳.

이탈리아 재정의 부족으로 보수에 천문학적 수준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던 중

일본이 '저작권'료를 이유로 전액 보수에 필요한 자금을 댄 이후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규제하여서 안타까웠으나

그 작품은 정말 대단하였다.

그 안의 그림 하나하나가 튀어나올 듯 생기가 있었다.

후대 수많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아담과 하나님의 손가락이 맞닿는 그 유명한 그림은

ET의 소년과 우주인이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이 나오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한다.

 한편 성당 입구 문 바로 위편에 있는 지옥에 끌려가는 사람의 얼굴이

그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릴 때 그토록 핍박하던

교황 측근 중 일인의 얼굴로 그와의 알력과 압력,

그리고 결국 교황을 통해 사과하고 도움을 주라는 교황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림 속에 그려넣은 미켈란 젤로의 그 괴팍함이 놀라왔다.

수백 년을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인간사의 애증이

아직도 이땅 이시간 우리의 삶속에서 여전히 동일하게 꿈틀거림을 보며

이 깊은 인간의 원죄가 놀랍다는 생각일 뿐이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아니고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

그 끈질긴 죄의 흐름....

 

베드로 대성전 천장.

 

 

  마지막으로 베드로 대 성전을 투어함으로

바티칸의 여정의 대미를 장식했다.

 

보이는 황금색이 모두 진짜 황금으로 칠해졌다 한다.

황금 300톤.

내 뒤로 보이는 십자가 올려진 기둥 밑이

베드로 님의 무덤이란다.

 

 

베드로 대성당은 온통 황금빛이다.

화려의 극치...

예수님은 청빈의 대명사고

고난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라 하셨으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 하셨는데

그 대제자인 베드로의 이름으로

그 당시의 카톨릭은 저런 우를 범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손가락으로 가르킨

저 창문에 비둘기로 상징된 '성령'이 표현되어 있다.

 

 

 이 베드로 성전건축에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하였고

그로 인하여 '종교 개혁'의 도화선이 되어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한 개신교가 이땅에 오게 하셔서

이 '주하인'이 있게 한 원인이 되었으니 ㅜ.ㅜ;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 이 아닌 것도 없음이 아니던가?

 

천장의 화려함을 찍기 위해

아내 아래에 드러 누워 사진을 찍다가

경비하시는 분들에 의하여 제재 당했다..

당연히도 한국인임을 밝히지는 않았다.ㅎㅎ

 

 

 베드로 성당은 가이드의 설명을 필요로할 미술 작품은 없었고

그 자체가 굉장한 예술 작품이었고

화려의 극치였다.

 

모든 투어를 마치고 바티칸 광장으로 내려 왔다.

좌측에보이는 문을 통해 한블록 내려가서 좌측으로

 그 유명한 젤라토 집이있다.

 

 

 5시 반 정도가 되니 모든 투어가 끝났다.

자전거 나라'라는 투어와는 달리 30여분 일찍 끝난다.

 가이드랑 헤어지려니 섭섭했다.

그 열심과 유머와 해박함이 고마와서 '젤라토'라도 같이 나누길 권했으나

8시 부터 스페인 광장에 있는 '무료 야간 로마투어'의 가이드를 해야 해서

옷갈아 입고 저녁 먹고 가야해서 시간없다고 사양한다.

 

OLD BRIDGE 젤라또

워낙 맛있고 싼 가격으로 유명해 한국인으로 북새통이다..

  1.5유로짜리를 시켜먹으면 되는데 특히 과일 젤라또가 맛나다

이 가게 점원들은 이탈리아의 전형적 미남들로

그들의 호색적 기질 탓으로

여자들에겐 '고~봉'으로

남자들에겐 '뚝 ' 깍아서 준다하더니

그게 사실인지 아주 그득그득들 퍼준다.

 

 

 A조 조장으로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과일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젤라토를 쏜다고 하니 대학교 2학년동기생들 3명과 3학년 여학생 한명으로 구성된

 A조 팀원 모두 탄성을 지른다.

 

 

그득 채운 젤라토를 하나씩 집어들고 모두 인증샷 한장.

(내 것도 여학생들이 대신 받았기에 저리 많다.ㅎㅎ)

또 인생의 한 구석의 기억으로 고이 묻혀 가리라..^^*

 

 

 대학생 배낭여행자들..

그 젊음의 거침없음이 얼마나 부러운지..

시험이 끝나자 마자 계획했던 유럽여행을 한달 계획으로 나왔다하는 데

한 학생은 하루를 19,000원 씩으로 버틴다 하고

다른 한 학생은 카드를 잃어버려 10,000원 씩 밖에 쓸수 없다하며

집에 국제 전화를 하니 아버지께서 ' 알아서 하라' 셨다며

아버지는 자식들을 '소처럼' 키운다고 투덜대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들의 거침없는 도전이 참으로 이뻐보였고

그럴 수 있는 이 시대가 있기 까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힘써 살아왔던가.. 참으로 뿌듯하기도 했다.

 

민박에서 아침 점심을 주니 그외의 것은 19000원으로 가능하단다.

 

 

짧은 하루 반나절의 인연을 뒤로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서둘러 트레비 분수를 향했다.

근처의 Metro 역으로 가서 'Spagna'역에 내려 걸어갔다.

원래 바티칸 광장 앞에서 62번 버스를 타고 근처에서 내리려 예정 했으나

다시 걸어 올라가 버스 정류장을 찾는 거리나

전철 타고가는 것이나 거리상 진배 없을 것 같아서 그랬다.

 

계획안)

  62번 ** 버스 타고 trevi 분수(Fontan di Trevi)행 - piazza San Pietro광장 앞에서 좌측으로 가다가 우회전 - via dei corridori 정류장에서 승차 (borgo s. angelo로 더 걸어 한정거장 전이 종점) -10번 째 정거장 (종점부터 11번째) - Tritone/ Fontana Trevi ( via del tritone 거리) 정류장에서 내려라 ( 안되면 운전사에게 트레비 간다고 얘기 ) - 하차 하여 오던 방향 조금 내려 via della stamperia나 via Poli로 좌회전하여 조금 걸어가면 된다 ; Trevi 분수 부터 역전까지 - '175번(Deviata Temporanea)' 버스 타고 - 6번째 정류장이 Roma Termini

 

 

 

수학여행 온 영어권 나라 중학생 정도의 무리...

전철을 타고 오는 길은 검색해본 일 없어서 헷갈리던 중

인솔 교사에게 물었더니 자신들도 거기 간다고 따라오란다.

어디가나 여학생들은 시끄러운게 ..귀여웠다.

헤어지려니 모두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다.

원래 길치가 아니던가?

 늦게 돌아가면 '기차 역' 앞의 소매치기들이 걱정이 되려한다.

한참을 헤메다가 '수학여행'온 여학생들 팀에 끼어서

발랄한 그들 속에서 같이 걸어가니 마음이 옛날로 돌아간듯 재미가 있다. 

 

트레비 분수.

한국 사람들이 꼭 들리는 곳

저 분수에 동전을 넣으면 다시 돌아온다한다던가?

그래서

안 넣었다.ㅎ

 

 

 로마는 하루에 여행하기에는 불가능한 곳이다.

그만큼 유적이 많고 재미있는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지 못해 '바티칸' 이외에 '트레비 분수'는꼭 인증샷에 넣고 싶었다.

막상 가는 길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져 방사선 형태로 '분수' 앞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그리 감흥스럽지는 못하다.

 

야간 투어는 걸어서 진행이 된다하여

스페인 광장까지 가서 기다리지는 못하겠다.

아내랑 다시 전철을 타고

테르미니 역으로 귀환하여 '기차역' 앞 피자점에서

피자 시켜 나왔으나 정말 맛없었다.

 

여행기에 보면 근처에 꽤 괜찮은 음식점들이 나왔는데

역시 음식에 주안점을 둔 여행은 아니어서

그리 실망스럽지는 않다.

 

마지막 밤 역시.. 잘 잔듯 했다......ㅜ.ㅜ;

방문 앞에 다음날 아침 9시경에 '단전'이 된다는 안내 팻말이 걸려 있는 것 빼고는..

그래서 생전 처음 겪는 어이없는 호텔의 비상 전원없음으로 인한

단전 사태를 염두에 두면서..^^;;

일찍 체크아웃하리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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