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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은 더 무서운 악이다(왕하17:1-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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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은 더 무서운 악이다(왕하17:1-12)

주하인 2006. 11. 6. 12:05

(열왕기하17:1-17:12)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여호와는 그때까지 보셨다.

악하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이전 이스라엘 왕같이 하지 않았다고 나와있다.

이게 뭔가 .. 자꾸만 걸렸다.

무슨 뜻인가?

 주님이 덜 악하다고 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

아니...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이전 왕들의 악함을 깨우쳐서 눈치를 보는 수준에서

악함을 덜행하는 수준인듯 싶다.

 

4 저가 애굽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6 호세아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하는 일을 보면

애굽사람들과 교통하여 앗수르를 왕따시키려 하다가

결국은 멸망이 되지 않는가?

 이건 그렇다.

기왕에 죄에서 떠나려면 완전한 떠남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겉으로만 주님 믿는 흉내 정도로는 덜악한 듯 보이지만 악한 것이라는 의미인 듯 싶다.

 

결과가 패망이고

그전에 나오는 행실이 '주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음'으로 나오는 증거이다.

 

 '이전과는 다르며 주님 보시기에도 역시 이전처럼 악하지 않다'는  판단을 위해서는

애굽에 조공을 보내기 전에

수일간의 금식기간을 통하여 ( 이것 만으로 죄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주님께 정성이라도 드릴 수 있지 않겠는가? ) 통회하고 자복한 후 깊이 깊이 무릎 꿇고 여쭈어 보아야 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 저희가 진심으로 잘못 행동했었나이다.

 이제라도 주님 앞에 여쭈려 합니다.

 제 생각에는 앗수르를 이길 현실적 대안이 애굽의 힘을 비는 것 밖에는... 주여.....'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은   주님의 출애굽 하신 그 노력에 대하여 전혀 올바르지 않은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에게 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을 가지고도 주님께서 어느 정도 용서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서서히 그의 신앙인격이 변하고

서서히 마음에 주님의 감동이 들어서고

그의 인격과 행실 조차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며

온전히 주님의 자손으로 대 변화가 일어나게 될때

비로소 축복이 돌아오고

그의 이스라엘은 유다의 대신하여 천대 만대 올바로 서는 왕국이 되지 않았을까?

 

 

9 이스라엘 자손이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그러나

덜 악하게 행한 결과가 이렇다.

 

백성들도 '가만히 불의를 행한다.

그래

자신들 보기에는 불의를 행하지 않은 것 같을 수 있다.

서로서로 우리는 이전보다 덜 악해.  그래도.... '라고 자위할 것이다.

그게 가만히 불의를 행하는 죄이다.

그러면서

결과가 말해준다.

온통 모든 곳에 산당이다.

모든 좋은 풍취와 절경의 곳에는 목상과 아세라 상 들이 득실 댄다.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지 않겠는가?

전국이 다 저리되니 그 나라는 망할 조이다.

 

 주님은 악함이 도를 더하여 가다가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기시작하며

그 죄가 회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자

드디어 칼을 뽑으신다.

 

  난 어떤가?

덜 악한 듯 보여도 속으로 파고들어가 더 악한 죄를 양산해내는 것은 없지 않은가?

겉으로 욕은 하지 않아도 이웃들에 대한 원망은 더 깊고

더 냉랭해져 가지는 않은가?

 

늘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권면하시고

가르치시고 아예 근원부터 막으신다.

약 이년가까이 주님의 이러하심을 아침마다 지도하고

가능하면 하루동안 지니려는 노력을 하는 동안

상당히 안팎이 많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기도

 

주님

괜히 분주해서인지 주님의 말씀을 깊게 묵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래서

이것이 과연 주님의 말씀인지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깨달음과 더불어 멋진 말로 엮어내는 것 만이 묵상의 목적이 아니고

늘 단 일분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려는 노력자체가 중요한 것임을 알고 나서 부터는

크게 형식에 구애 받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 고정 시키려는 노력만 가지고

주님이 덜 악하다고 하실 것 같기에 입니다.

주님

오늘은 늦었지만

악한 것을

외견과 사람들의 인정 만으로 덜 악한 것처럼 스스로 인지하고 행동하는 자의 말로,

위선자의 위험성에 대하여 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게 맞는지요?

혹시 제 안에는 저런 면은 없는지요?

깨닫지는 깊이 못했지만

주님을 놓치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인간의 고귀함을 파괴하는 자다.

 - 프란시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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