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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곧아지면 (왕하17:13-23)

주하인 2006. 11. 7. 13:59

 (열왕기하17:13-17:23)  


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14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19 유다도~이스라엘 사람의 세운 율례를 행하였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의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떠나지 아니하므로

( 목에 기브스하면 지가 ’호랑이’인 줄 착각할라...ㅎㅎ ) 

 

 눈을 잠시 감고 묵상을 하다가

목을 굳게 하는 장면에 잠시 그림이 그려졌다.

 

 아주 익숙한 장면.

목을 꼿꼿이 하고

머리 후두개 - 뒷머리 뽈록한곳-를 약간 아래 방향으로 내리면

시선이 자연스레이 위로 향하게 된다.

그 상태에서 정면을 바라보려면

눈을 내리깔 수 밖에 없다.

하악관절- 쉽게 말하면 턱뼈관절-이 중력에 의해 조금 아래로 떨어지면서

아래입술이 아래로 조금 삐죽 나오게 되고

턱을 지탱하는 근육-스트레스 잘받는 근육 중 하나이다. .- 이 힘이 주어져서

전체 얼굴표정이 교만하게 되거나 화 나는 것 처럼 보이게 된다.

이렇게 상황이 지속이 되면

경추2번 관절쪽에 무리가 가게 되어 - ^^;;;-  아마 청력 신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영혼에 좋은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전자오락의 굉음이나

음란한 소음

’술~먹자~’등의 유혹적 소리에만 선택적으로 신경이 자극을 전도하게 되게 된다 .

목소리를 다스리는 후두 신경을 눌러

음이 깊어지며 갈라진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그들에게서 받는 것은 ’볼멘소리’라는 느낌이 되게 되는 것이다. ㅎㅎ

 

 예전에 이런 표정에 아주 익숙할 때

내 속에서 자주 횡행하는 소리 들 중 하나가 이것이다.

’흥~’

그러면서 수많은 비판적 생각들이 쏟아지면서

결국은 상대를 무시할 하나의 논리를 만들어 내곤 하였었다.

 

이런 익숙한 습관이 주님의 말씀을 들어가며 하나하나 무너져 나가면서

많은 시간 얼굴 근육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갑자기 지금도 그런 경우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유지하였던 것을 생각하며

속으로 ’아차’ 싶었다 .

주님은 날 또한번 깨닫게 해서

참으로 오랫동안 딱딱하였던 내 심령에 절차탁마(切磋拓摩)하시려 하시는 것 같았다.

 얼마간 여러 루트를 통하여 많은 생각의 깨달음이 있어왔다.

그러면서 큐티를 오랜기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립된 확고 부동한 신앙관이 생겼다고 자고(自高)하게 된것 같다.

 특별히 좀 부족하신 언변의 설교라든가...

집사람의 경고성 얘기라든가(실은 그게 옳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특별히.. )

논리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얘기는

나도 모르게 우선 ’흥~’ 하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위에 묘사한 그 태도가 나도 모르게 - 그래서 쉽게 묘사된 것이다. ㅎㅎ- 지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이런 것이다.

난 ’사람이 세운 율례’를 나 자신도 모르게 너무 신봉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나의 이런 일 뿐인가?

사람들이 저런 콧 방귀 뀌며 목을 크게 세우는 일은 다양하다.

우선 메스미디어의 발달로 필요없는 인간 지식이 폭팔적으로 돌아다니기에 하나님 얘기는 가소롭게 들리는 것이다.

또한 육신의 향락을 쫓다보니 하나님의 얘기는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아니 귀찮은 것이다.

그 얘기가 옳고 그름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조차 못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세상의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국한 될까?

아니다.

수도 없는 많은 훌륭한 분들도 속절없이 목이 굳어가고 있다.

역사에서도 나온다.

현실에서도 나온다.

잘사는 선진국들이 무슬림화되어가고 교회는 공동화된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인간은 어차피 불완전한 존재이다.

육신의 장막을 입고 다니는 마음과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로서

그 영 부위에 입은 원죄의 상처가 있는 자들이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비록 깨끗이 되어 있지만 상처는 수술해도 시간이 지나고 깨끗이 드레싱을 매일 같이 해주지 않으면 또다시 더 심한 염증으로 발병되기 일쑤다.

그런 존재다.

 

날마다.

정말 날마다 주님과 악의 세력들 사이에 우리의 ’선택’ 의 결과로 영혼이 정화되는 정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그 선택과 그 선택 후에 부어주시는 강한 천국의 평강도 주님 성령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지만....

 말씀으로 우리 속에 집어넣는 강제적인 선택을 매일 같이 우리가 하지 않는 한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이 세상의 율례들이 우리 상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흥’하는 빈도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우리는 강팍해진다.

 그게 여로보암의 죄를 행하는 지름길이 된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회개하는 삶이 생활화 되어야 한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적용

1. 회개한다.

2. 성경 읽는다.

 

 

기도

 

주님.

목이 곧았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도 잘 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그게 제 모습인줄 알았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래도 알았으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잊지 않도록 하여 주세요

늘 깨어 있도록 도우세요.

목이 굳기 전에

뒷골이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나도 모르게 눈이 내려깔리기 전에

입술이 부어오르기 전에

주여

막아주소서.

항상 그래오셨듯이

불현듯

느낌으로 깨닫게 해 주소서.

아니시면

오늘처럼 말씀으로 막아주소서.

눈앞에 안개가 걷힌 듯 밝게 보이는 지금처럼

주여

그리하여

제 눈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맑고 깨끗하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세요.

아름 다운 것은 더 아름 답게

귀한 것은 더 귀하게

귀여운 것은 조금 더 귀엽게

그리 보도록 하여 주소서.

 들리려는 턱을 막으시어서

큰 눈과 맑은 눈망울과 밝은 시선으로 그들을 봄을

그들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서

아...

이 분이 예수님 믿는 분이구나.. 알려주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런 주님의 사람이 되도록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자기 내면의 악을 보지 못하는 자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절대 깨달을 수 없다.

 - 세바스찬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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