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우주의 창조주 주님께서 바이러스 주하인에게 (렘 3:1-18 ) 본문

구약 QT

우주의 창조주 주님께서 바이러스 주하인에게 (렘 3:1-18 )

주하인 2009. 9. 8. 09:16

제 3 장 ( Chapter 3, Jeremiah )

 

 

 

주님

머리 숙입니다.

말씀하소서.

 

주님

준비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소서.

 

바람만 불면

날아갈 듯

휘청이는 저이지만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네가 배역한 이스라엘의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주님이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이스라엘에게..

 


 

7.  그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오히려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 패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
 유다에게..

 
   
 
 
10.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

     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
여호와의 말이니라'가 다섯 번이나 나온다.

 그들의 잘못을 이야기 하시면서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회복을 말씀하시면서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주님은 스스로 긍휼이 있으신 분이시고

실수한 백성들에게 노를 품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라고 말씀하신다.

 

오래 참으시면서 아무 말씀도 안하고 계실 때,

그 때 죄악 속에 헤메는 그들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주님은 결코 편한 마음으로 계셨던 것이 아니시다.

가슴 조이며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러다가 형제 유다까지 죄악 속에 빠지자

주님은 안타까움을 견디시지 못하고 드디어 말씀을 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

 

  그 마음이 느껴진다.

 특별히 '아들 둘'가진 아버지로서

비록 주님의 선한 사랑의 마음과는 천양지차의 방법적 차이는 있을 지라도

그리 성공적이어 보이지 않는 - 물론 심성이나 도덕성...은 세상의 평범한 현대 아이들 보다는

몇 배 착하다..-현실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가슴 조렸던가?

주님의 그것과 전혀 다른  잘못된 생각과 방법론 - 인간 본연의 한계... 성격적 특질........-의 차이가 있었지만

어찌되었던 그 아이들을 쳐다보는 안타까운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그게 공감이 된다.

 아들들.

그 아이들을 어찌되었든 잘키워보려고

나름대로는 잔소리도 많이 하고 혼도 냈다.

하지만,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이제 나이가 둘 모두 20대를 들어 섰다.

더 이상 어찌 가르칠  - 과거의 방법은 모두 틀렸음이 이 미련한 주하인에게 이제야 깨달아져서...

아이들과 나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 ㅜ.ㅜ;;  -  수 없음을 깨닫고

그냥 쳐다만 보고 있는 중이다.

 그냥 쳐다보고 있지만 쳐다보고만 있는 게 아니긴 하다.

주님께서 인도하시길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쉽지 만은 않다.

죄책감.

이제는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시간이 지나간다는 데에 대한 실망감.

맡기면서도 맡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로서의 당혹감.

.........

다양한 마음들이 기도로서 잘 잡아 가는 마음에

순간순간 밀어치면 힘이 들기 그지 없다.

 

 아버지 하나님이 그러신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

그러시면서 장황하게 설명하신다.

'너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형, 너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이렇게 이렇게 하여라.

 난 절대로 혼내는 아버지가 아니다.

 난 긍휼이.................................' 

 

 아.

아버지 .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읽혀진다.

그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진다.

그 아버지가

온 우주를 만드시고

매일 같이 그 우주의 별들 몇개를 만드시고 또 없애시고

그 우주의 별들 하나하나까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조율하시고

그들의 자전과 공전을 조절하시어

계절이 있을 곳에 계절을

밤과 낮이 있을 곳에 밤과 낮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그 엄청난 위용을 내려놓으시고 

아니,

그 어마어마하신 일 중에서도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쳐다보시고

우리를 안타까와 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안달나신 것 조차

사랑으로 참으실 시간이 있으셨단 말이던가?

안타까이 여기실 긍휼의 여유가 남아 있으셨단 말인가?

그 추악하디 추악한 , 죄 덩어리  '주하인' 같은 자 마져 

이런 절절한 언어로 표현할 사랑이 있으셨단 말이던가?

 

  나,

아픈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나는

그 아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진다.

나.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고 - 이 지구 세상 뿐이던가.. 겨우? - 그보다 더 큰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들이 춘하추동 밤낮을 번갈아 나타나게 하시고

온 우주의 생기를 조율하시는  그 하나님이

이 먼지보다 적은 지구의

바이러스보다 적은 이 주하인 같은 인간 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고

우리들 속에 있는 이 아픔과 상처를 아시어서

더 이상 그냥 두시기에 한계라는 판단하에

그 대단하고 엄청나시고 어마어마하시고 무소불위하시고 전능하신.....

그 분 하나님이

당신의 권위마져 내려 놓으신채로

마치 주하인이 아들에게 매달리는 듯한

그러한 다소 낯 뜨거운 하소연을 보이시고 계시는 것이시다.

 

이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성경을 보면서 난 늘 당혹스러움을 금할길이 없다.

그 엄청난 분이

가끔은 이처럼..........

이 감정적 괴리를 무엇으로 이해할까?

 성경이 엉터리던가?

아니다.

난 살아계신 그 분의 증거를 여럿 가지고 있다.

나뿐이던가?

얼마나 많은 분들이 주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던가?

 살아계신 그 분은 진리다.

그렇다면 그 분은 무엇때문에 이러한 괴리를 보이시던가?

'엄청남과 세심함'

' 상상하기 힘들 멋진 분과 우리와 비슷한 감성을 가지신 분'

..............

 

 이 괴리.

이 괴리가 있어서

성경은 살아 있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우리는 행운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예수님.

하나님이신 그 분이

우주의 궁극에 계시면서

우주를 움직이시는 거대한 일을 하시면도

우주의 먼지보다 못한 지구의 바이러스 껍질을 입고 내려오셔서

이 주하인 바이러스의 모든 고통,

외로움, 두려움, 갈증, 갈등 , 미움, 회한, 기쁨, 사랑. 행복............모두 다 경험하시고

내 모든 세세한 마음의 흔들림까지

십자가에 못박히시며 독종 바이러스에게 죽어가심을 경험하시는

그러한 논리적 괴리는

주님,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의 그 놀라운 비밀, 역설의 비밀이 아니던가?

 

 오늘

그 주님이

당황하는 내 아버지의 심사를 가지시고

이 곳 우주의 변방 지구에 내려오셨다.

그곳

안양에서

나를 보고 말씀하신다.

'주하인아.

 나 여호와가 말한다.

 넌 무엇을 회개할 것인가?

 왜 회개하지 않는가?

 왜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는가?''

   또 말씀하신다

' 내가 하듯

 너도 네 자식에 대하여

더욱 낮아지고 진솔한 사랑으로 다가가거라.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가진 긍휼함으로 네자식을 더 긍휼히 여겨라.

좋은 점만 사랑하려 하지 마라.

 나를 보라.

 저 추악한 이스라엘 마져 사랑하지 않느냐?

 나를 보라  

 너처럼 두 아들이 속상하게 하는 그 속상함을 똑같이 맛보지 않더냐?

 그럼에도 무엇이냐?

 난 그들을 위하여 이렇게 가슴아파한다. '

 

이러신다.

 

 

 

적용

1.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은 수면을 운행하시는 분이시다.

  온 우주의 생기를 운행하시는 분이시고 질서를 유지하시는 분이시다.

 

2.  보잘 것 없는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감사한다.

 매사에 감사하자.  

 구원 받은 것 이외에 더 감사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할 것이 무엇인가?

 

3. 기다리자

 주님도 기다리셨다.

 가슴 조이면서 기다리셨다.

 오래 기다리셨다.

 그분의 이스라엘과 유다 자식들도 말썽을 부렸다.

 인내하자.    이해못할 것이 무엇이던가.?

 더구나 내 아들들은 착하고 믿음은 좋다.

 그들이 주님의 인도하심에 의하여 성공한 삶을 살 것이다.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5. 회개한다.

 무엇이든 못한 것 회개하고

 기억나지 못한 것 기억나게 하시길 기도한다.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온 우주를 운행하시는 것만도 기적이신데

이 주하인의 속속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

아니

이제는 내 자식들의 그것까지

하나하나 가슴아프게 쳐다보고 아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견디지 못하시곤

저에게 이리 말씀하심을 듣고 있습니다.

주하인아.

어서 어서 회개하라.

난 긍휼이 많은 자다.

안되는 것은 내가 도우마....

주님.

주님의 가만히 계셨음은

그냥 저희를 버려두심이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이 좁은 소견은

주님은 바쁘시니.. 라 하며 홀로 외로워하고 고난하는 것이

어쩌면 양심처럼 착각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날 지켜보시고 인내하셨음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어디에나 계시고

무엇이나 아시고

어떤 것이든 하실 수 있고

단 하나도 빠드리심이 없는

긍휼과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제 자체가 너무 귀한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비록 귀가 적어 똑바로 듣지 못하고

비록 두뇌 적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록 가슴 적어 주님 말씀 올바로 실행 못하고

비록 상처 많아 주여.. 두려움 많지만

제가 듣겠나이다.

 주님의 그 말씀을 듣겠나이다.

주여.

숨죽이신 그 기다리신 인내의 참으심을 깨닫겠나이다.

오늘 하루.

저로 주님의 뜻 가운데 살게 하소서.

주여.

내 자식들을 주님의 그 사랑으로 받아들이겠나이다.

잘못된 것 마져 받아 들이겠나이다.

잘된것은 칭찬하겠나이다.

주여.

그런 마음으로 오늘 준비하겠나이다.

주여.

회개하겠습니다.

주여

회개할 것을 깨닫게 하소서.

주여.

회개할 능력이 없으면 주여 당신이 시키소서.

오직 은혜로

오직 은혜로

오직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하심으로

절 변하게 하소서.

오늘 하루 그리하소서.

주님 닮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