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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귀에 말씀하시는 주님( 렘2:1-8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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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귀에 말씀하시는 주님( 렘2:1-8 )

주하인 2009. 9. 3. 10:17

제 2 장 ( Chapter 2, Jeremiah )

 

 

 

그래 얘야

그리 쉬거라

 너는

내 

사랑하는 자 란다

 

안심하라

내 안식 안에 거하거라

 

내 안에서

그 사랑을

흠뻑 한번 느껴 보거라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

     하노라 

 예레미야님께 말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셨다.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대고 외치라.

 소년 때의 우의- 청년 때의 우의(개역개정)-를 내가 기억한다.

 네 결혼 때의 사랑 -네 신혼 때의 사랑(개역개정)-을 내가 기억한다.

 즉, 광야에서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너를 위하여 기억하겠다. '라고..

 

 

 

3.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다시 말씀하신다.

' 이스라엘 백성들을 삼키는 자들은 다 벌을 받을 것이다. '

 

 

 오늘 묵상을 읽어가며 느껴지는 것은 그렇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도 사랑하신다.

그러기에 귀에 대고 말씀하라 하시지 않은가?

 그 귀에 대고 말씀하시라 함은

친밀함의 표시이고

잘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랑하는 자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듣게 지도하라시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하시는 말씀이다.

이후에 계속 나오지만 

신혼으로 표시되어 있는

결혼관계로 표시되어 있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시절 중

신혼시절 같은 주님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뜨거운 대견함이

절절히 나온다.

 그 신혼 시절의 사랑은

사랑하는 자로서의 이스라엘 백성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광야에서의 그 고통의 시간에서도

주님 만을 철저히 따르는 모습이 그렇지 않던가?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말씀 구절 내용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삼키려는 자들에 대하여

강한 보호의 의지를 나타내심을 보아서도 그렇다.

 

그렇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인 우리를 철저히 사랑하신다.

철저히 보호하신다.

긴밀히 사랑하신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뜨거우신지

신혼의 삶을 그리워 하는 애절한 연인의 마음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다.

힘이 된다.

 

 

 또한 무엇을 느끼게 되던가?

'청년의 우애.

신혼 때의 사랑.'

이러한 표현에서  나도 그러한 때를 거쳐왔던가 돌아본다.

 '청년의 우애. '

주님의 일방적 선택에 의하여 첫사랑을 체험함으로 이어지는

나의 열심.

돌아보면 나의 열심은 지금도 자랑스럽다.

그 열심이 나의 특성 상 외부를 향해 봉사나 구제 등의 행동으로 나오지는 못했어도

날 구원해주신 주님 앞에 죄 안지려는

자동적 습관적 죄인으로서의 몸부림이다.

그걸 주님은 기억하시는 말씀이시다.

청년의 우애.

그렇다.

난 주님을 생각함으로 비록 청년처럼 미숙했지만

주님 앞에 열심을 가진 마음을 주님은 기억하신 것이다.

 ' 신혼의 때 '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 개인의 하나님으로

동행하심을 깨닫기 시작한 후 부터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안에서 놀라운 체험을 해가던 시절.

 아직도 난 신혼의 때인지

더 성장하여 이제 본격적인 성숙의 결혼 생활로 들어간 시점인지는

그것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난 '신혼의 시간' 을 기억하고 날 추스려야 할 것 같다.

난 어느 시간에 있는가?
잘못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주님의 귀에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는가?

성장한다면 더욱 가까이 주님을 느껴야 한다.

 

 

 어제 '여성병원'에 통화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산모 중 하나가 인터넷에 여성병원을 싸잡아서  

반말을 하는 의사에 대하여 불평하는 말을 올렸다한다.

 그러면서 자체 조사를 해보니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가끔 내가 반말을 하는 것을 들은 것 같다 한다.

그래서 조심해 달라한다.

 순간 드는 생각.

'어이없다. '

정말 나는 맹세코 환자들에게 반말을 찍찍 - 그러기에 인터넷에 올랐을 것 아닌가? - 하는 의사는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어린 동료 들에게도 존칭을 쓰는 타입이다.

가끔  내 환우 분들에게 친해서거나

너무도 어린 아이들이 심한 병에 들어올 때

교육적 차원에서 장난섞인 친근한 반말을 한 적은 있지만

객관적인 장소에서 그런 적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성병원 의사들 은 모두 진심으로 친절하다.

난 그것을 안다.

그리고 위의 고백처럼 나의 의도한 친근한 반말을 인정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쪽 본원인 샘안양 병원의 환우 구성 빈도상

' 혹'이나 부인과 질환으로 오는 연세드신 분들이 많기에

그들은 아주 가끔하는 '친근한 반말'을 이해할 연령대이지만

산모 위주인 그쪽 여성 병원에는 젊은 이들이 다수이기에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었다.

 그러고 개중에는 예민하신 산모들이 자주 있다.

이것은 '황체 호르몬'의 영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정해 버렸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게 그렇담 내가 고쳐야지요.'

그렇게 부드럽게 진행되었지만

내 속에는 생각이 스친다.

'속상한데...'

한편으로는

' 내가 조금은 성장했구나.'

두가지 생각은

억울한 마음으로 나오려고도

대견한 마음으로 나오려고도 한다.

 솔직히 이전에는 급한 마음이 내 감정의 거의 대부분의 흐름이었다.

아마 억지로 눈치 보기 위해서 - 눈치가 많았다...이 가련한 주하인의 어려운 삶은....^^;; -  말은

인정을 했을 지 모르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성장은 조금 한 듯하다.

억울한 마음은 말씀 앞에 자꾸만 위축되어 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기뻐한다. .. 약할때 강함이다.'

대견한 것은  최소한 청년의 우애의 때는 벗어 난 듯 싶다는 느낌 때문이다. ㅎㅎ 

주님과의 동행.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이 내 일상을 간섭하기를 느끼기 시작한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변화를 보임이 틀림이 없다.

 아침이 되니 어제 잠시 내 하소연을 들은 외래 간호사가 다가와서 이야기 한다.

그 쪽 여성 병원 - 참 샘의료원은 본원인 샘병원, 샘한방병원, 샘여성병원으로 되어 있다.

산부인과는 본원에서는 주하인이 '부인과 질환' 위주로 진료를 하는 반면

분만 등의 산과는 주로 여성병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난 한달에 서너번 당직을 그 병원에서 서고 있다. - 간호사에게 이야기 했더니

여러군데 물어보아도 내가 반말 잘하는 의사는 아니다..란 이야기를 했고

아마도 의심되는 환우 분 중에서 민감하셨던 분이 있었더란다.

 그렇다면 의혹은 풀리기는 한다.

하지만 밝혀서 해명할 마음은 눌렀다.

'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약한게 강한 거라신다. '

 

오늘도 흔들릴 것을 아시고

주님은 이렇게 귀에 대고 말씀하신다.

'주하인아.

 난 너의 힘듦을 안다.

 너의 실수도 실패도 안다.

 하지만

 난 널 사랑한다.

 널 건드리려는 사단의 획책은 내가 그만 두지 않으리라.

 난, 너의 청년의 우의를 알고

 너의 나와 동행하려는 신혼의 사랑을 기억한다.

 이제 조금 더 성숙한 동행의 시간을 갖자꾸나.

 불같이 뜨겁고 얼음 같이 차가운 희비의 곡선 보다는

 가만히 있어도 서로 이해되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 날듯 고요한 평안의 삶을 누리자.

 평강의 삶을 살아라.'

라시는 것 같다.

 

 

 

적용

1.  내 귀에 말씀하시는 주님을 묵상한다.

 

2. 여성병원 당직이다.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으로 삼겠다.

   TV를 안 키겠다.

   

3. 아침에 보니 인도네시아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들의 고통을 통하여 대 환란의 시기에 임하게 되면.. 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신다.

  이처럼 자제 못하는 식탐의 습관으로 과연 얼마나 순종할 수 있을까?

  과연 나의 신혼의 시간 이후의 시간이 계속 온전할 수 있을까?

  긍휼한 마음을 기도한다.

   인내의 습관을 기르도록 노력하자.

   식사량을 줄이겠다.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말씀은 생명이다.

 

5. 회개할 것은 회개한다.

 주님의 동행을 잊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도

 

주여.

오늘도 생각이 많습니다.

주여

이제 제가 신혼의 때를 넘어 고난이 와도

주님께 열심히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지 생각케 됩니다.

주여.

지난날 돌아보면

늘 감사한 일 뿐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굴곡 굴곡에 서 계시던

우애의 때의 하나님

신혼 때의 하나님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내 귀에 속삭이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느낍니다.

주여

이제 바라옵기는

저에게 그런 하나님을 확실히 느끼게 하시사

주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소서.

오늘 당직입니다.

또 하루 그냥 흘려 보내지 않게 하소서.

참..

간절히 비올 것은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들을 기억하소서.

그들에 대하여 긍휼의 마음을 가지게 하시고

저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저로 스스로 비하하지 않게 하시고

눈치 살피지 않게 하시어서

맡겨진 직책을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주님 뜻대로 이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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