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서 그런가요 주님(렘 3:1-5) 본문
한글개역개정 (예레미야 - 3)
그래서 그런가요
주님?
이처럼 간절히 손을 들고
주님을 기다리는 데도
마치
단 비가 그치고
늦은 비가 없어진 것 처럼
주님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듯
주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는
이 메마른 감성이
그래서 그런가요?
주여.
아직도 제 영혼은
주님의 함께 하셨던
그 사랑의 은혜의 추억으로
아련한데
주님
이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듯
멍 뚫린 듯한
이 허무한 가슴이
정말
제 죄 때문
맞는지요?
정말
그래서 그런지요?
주여.
1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월요일 아침 .
허리가 아프고
마음이 안좋아
거실 딱딱한 바닥에 이불펴고 누워 자다가 일어난 아침에
둘째 아들이 6시 부터 일어나 공부를 하고 있다가
기쁜 얼굴로 날 맞이한다.
그래.
무거웠지만 아이, 엉터리 같았지만
자신과 싸움을 이겨내고 있는 이 아이의 귀에 대고
'그래.
난 네가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서 정말 기쁘다.
난 네가 성공한 것 보다 성공을 위해 게을리 하지 않으려
네 자신을 도닥이는 모습이 좋다.
오늘 하루도 .. 이러..이러하게 해라.
알지? '
아이는 흐뭇해 한다.
2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아침의 묵상은 쉽지 않다.
죄악에 대하여 질타하시는 듯한 하나님의 모습이
그 반대편에서 당황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듯 해서일까?
그 분의 말씀이 아래로 계속 이어지는 대로
마치 잔소리 하는 듯한 뉘앙스라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잠시 관점을 바꾸어 하나님의 입장에서 돌아 보았다.
그 분이 '예레미야'의 귀에 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이러하게 되면 내 마음이 좋겠냐?
헐벗은 산 같은 그들이 아니냐?
행음하고 돌아온 부인처럼 그런 사람이 내게 돌아오면
과연 남편 입장으로 받아 주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신다.
제 3자에게 속내를 말씀하시며 그에게 전해주란다.
그 마음이 과연 무엇일까?
걱정하는 마음이 아닌가?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가?
아직도 사랑하는 자녀에게 돌아오길 바라면서
애타는 가슴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닌가?
아들 귀에 대고 축복 기도를 하고
난 위에서 쓴 것처럼 이야기 했다.
그 마음을 천배 만배 확대한 것이 주님의 마음일 듯 싶어
순간 감동의 마음이 올라온다.
정말 볼것 없는 죄인 ,
이 주하인...
그 주하인에게
아들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내 사랑의 심사를 느끼게 하시고
그것이 오늘 묵상 시의 이스라엘 같은 내 추한 영혼에 이야기 하시는 것이다.
3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자꾸만 답답해지려한다.
참 많이 버렸고 다져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옛 감정들이 슬슬 밀려 오려 한다.
어쩌면 늘 평안한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음일 수도 있기는 하다.
아내가 중년 우울증인가?
갑자기 힘들어 한다.
나름, 아내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여 잘 버틴다 생각하기는 했지만
불현듯 터져 나오는 아내의 호소는
잘 참아오던 나의 머리 속까지 헝크러 버리는 듯.
가만히 그 이유를 들여다 보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나이가 들어가며
누구들처럼 더 열심히 관계를 맺고 더 잘했더라면
외롭지는 않았을 것을
아내와 난 타협을 잘 모르는 꼬장꼬장한 면이 없지 않다.
그게 주님 보시기에는 더 이뻐보이시는 영적인 면일 수는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연단의 원리 중
성화를 위한 허락된 외로움이란 면이라 생각은 하지만
잘나가다가 이렇듯 힘들어 할 때가 있다.
아내의 외적인 조건을 보면
정확히 말하면 영적인 면을 배제한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 폐경기의 우울증상' 일 수도
둥지에 있던 새들이 날아감으로 오는 빈둥지 증후군일 수 도 있고
나로 말하면
내 정겹지 못한 성격 탓으로 자초한
인간 관계 부족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뜻이 아닐수가 없다는 생각 하에서
내 부족한 면마져 들어서
가장 선한 방면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이제 여기까지 이끌어져 온 인생의 방향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불가능할 것에 헛된 노력을 경주하기 보다는
나에게 허락된 이 상황에서
말씀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뜻안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그동안의 내 인생을 끌어오는 영적 동력이 되었었다.
그래서 외롭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아니, 오히려 주님과의 고즈넉한 동행의 데이트를 즐기는 마음이 없지 않았었다 .
그러면서 내가 펼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는 매일의 노력은 오히려
차분하고 놀라운 영적 감응과 더불어
인격적 성숙을 가져온다는 나름의 기쁨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요 며칠 사이처럼
메마른 듯한 외로움이 엄습을 할 때가 있다.
이전은 물론, 훨씬 강하고 컸지만..
그럴 땐 '단비가 그치고 늦은 비가 없어진 듯'한
오늘 묵상의 저 표현이 그대로다.
헛 살아 온듯한 느낌.
아무 가치가 없는 듯한..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올 듯 자꾸만 압력을 가해온다.
묵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허락하시던
주님의 은혜가
눈을 감는 순간 '잡 생각'으로 빙글 빙글 돌려한다.
그래서 어제 저녁은 얼른 일어나 기도원에 올랐다.
우리 집은 이게 좋다.
기도원이 10분 거리다.
언제든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오면 운동도 되고 좋다.
올라가 앉아도 머리가 복잡하다.
'왜인가?'
내 죄악 탓인가?
회개하지 못한 죄 탓인가?
내 어린 영적 상황과 상처를 빌미로 마치 이해 받은 듯
회개하지 꽁꽁 묻어 두었던 '죄 ' 탓인가?
그렇다면 회개하려고 하여도 답답하게 밀려오던 억울함은 어쩌던가?
모두 권선징악 탓 만이 아니면
회개와 상관없이 허락된 '외로움'은 어찌 해결하는가?
아직도 가슴깊이 사람들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느껴진다.
'왜 인가?'
왜 이처럼 단비가 멈추고 늦은비가 없어진 듯' 이리 답답한가?
억지로 억지로 참았다.
마침 올라간 시간이 기도회가 끝나가는 시간이다.
올라올 때 기도회 생각은 않하고 반바지 입고 올라왔다.
지갑에서 손을 넣어 넣어온 돈이 11,000원이다.
감사 헌금 봉투에 1,000원만 집어 넣어 들어 왔었다.
원래 계획에 없던 상태이고 끝날 시간 아니던가?
가끔.. 은혜 없을 때 3,000원도 넣고 그랬었다.
그래서 그냥 그랬다.
그런데 헌금 수거함이 가까이 오자 마자
마음 속에 서 '주님이 1000원 밖에 안되는가?' 생각이 든다.
속도 상한데 '1,000원어치 밖에 안들었으니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 주님과 거래하는가?' 하는 느낌이 들어
얼른 호주머니의 10,000원을 더 집어 넣었다.
아까운 마음이 불현듯 들고 메마른 마음이 스친다.
하지만 얼른 집어 넣었다.
' 메마를 때 순종함.'
실은 이것을 훈련시키기 위하심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맞다.
그래서 그런가?
마치 메마름이 딱 잘라진듯 마음이 통쾌해진다.
자주 이러함을 경험한다.
오랫만에 힘이들어서 올라오며
도저히 앉기 싫은 채 앉은 기도원 성전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통쾌함을 자주 본다.
성경말씀 구절이 살아 있음을 느낄 때다.
어제 저녁에 비교해서는 많이 개운하고
걱정이나 불안함은 사라졌지만
속이 상함이나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은
비교적 맑게 떠오른다.
주님이 단 비를 주시고
주님이 늦은비를 주시면 가능할 것을
지금의 내 영혼은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 속의 이해 이외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주여.
도우소서.
주님의 이른비와 늦은 비 같은 성령의 은혜로 날 채우소서.
적용
1. 외로움을 해결해 주시길 기도한다.
2. 그 외로움 뒤에 있는 타인에 대한 믿음과 사랑 결핍을 해결 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난 오랜 마음고생이 있어서인지 당위성을 알면서도
긍휼함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주여. 긍휼함 주소서.
3. 나 자신에 대하여서도 스스로 용인하고 받아 들이고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주님이 돌아가신 '나'를 받아 들이지 못함은
내가 주님 앞에 선다는 불신앙이다.
내 고생의 대부분은 내가 날 깊이 받아 들이지 못함이 첫번째 원인이다.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5. 당직 .
최선을 다해 친절하겠다.
주님의 긍휼을 연습하는 기회로 삼겠다.
자다가 일어나도 짜증 안낸다.
연습은 잘 하고 있다.
TV 안켜겠다.
6. 회개할 것은 회개한다.
안되는 것은 주여 해결하소서.
7. 주님은 희망이시고 사랑이심을 잊지 않는다.
아이의 귀에 대고 말하는 나의 사랑을
주님이 나에게 주신다.
기도
주여.
놀라우신 하나님
당신의 그 긍휼한 사랑을 잊어 버렸습니다.
마치 나 홀로 버려진 듯
외로운 마음이 날 사로 잡습니다.
메마르고 답답합니다.
아내가 불쌍하려 합니다.
자식들이 안타깝습니다.
오쪼면 이러한 날 가장으로 ...
이렇게 헛된 생각이 또 날 누르려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던
그 단비의 시간 동안
그토록 편안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산듯 담대하던 제가
약간의 흔들림에 이렇게 여지없이
메마릅니다.
주여.
제가 지은 죄 탓인지요?
제가 지은 죄 탓이면 절 가르치시어서 회개 깊게 하게 하소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한 탓이면
주여 저로 절절히 회개하게 하시사
나와 상대로 하여금 맺힌 사단의 사슬이 끊어지게 하시고
주여
제가 할 수 없었던 것이면 주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소서.
자주 그러신 것처럼
저로 통쾌하게 하시사 날아갈듯 변하게 하시옵소서.
주여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저의 막힌 마음 풀어주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사
이제 제 속에서 벗어나
제 아내의 영적 안녕을 같이 기도하고 어루 만지게 하시고
제 자식들 ,
가련했던 고난을 위로하게 하소서.
난 혼자되지 않사오니
주여 당신이 도와 주소서.
단비와 늦은비의 은혜로 저와 제 가정을 채우소서.
불같은 성령의 은혜로 저희를 태우소서.
주님
이곳에 오는 모든 자들을 그리하소서.
제 블로그에 들리는 순간
주님의 불같은 성령의 은혜로 저들을 모두채우소서.
예수님의 향기로 모두의 영혼을 감격케 하소서.
일생을 주님께 맡길 수 있도록 변케하소서.
제 블로그를 통해 받는 단비의 은혜이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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