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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있을 때 주가 허락하시었던 감사를 기억하라[욥3:1-2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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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있을 때 주가 허락하시었던 감사를 기억하라[욥3:1-26]

주하인 2023. 11. 6. 06:37

(펌)

우리에게

진정한 쉼이란

주님 품 안에 있을 때이고

그 쉼의 영원함은

주님 나라에 갈 때 뿐 아니던가

 

욥님을 바라보며

내게 진정 더 필요한 것은

항상 코람데오

조금더 주님 품 안에

매일 매시 더 가까이

머무는 것 아닐까

깨달아진다

 

할렐루야

다행이도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와

성령의 은혜가 있으시다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그 후에'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참다참다 못견뎌..

그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최소한 친구들이 일주일 같이 있으면서 침묵한 시간.. 그 후란 이야기 같다. )

드디어 '저주'하기 시작했다. 

 

 '원망'이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나님을 저주' 하지 않았다. 

'자기의 생일'을 저주 하였다...한다 .

 

 그 아픔, 견디기 힘든 고통의 강도가 느껴진다.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을 얻으며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냥 태안에서 죽었더라면 '쉼'을 얻었을 거란다. 

 

 그게.. 많은 인생의 고난을 겪는 순간들의 '유혹' 아니겠는가?

참 많은 시간을 거쳐왔다. 

'저 거짓 쉼'에 대한 유혹의 시간 들을 많이도 거쳐거쳐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저 분의 거 힘듦이 

지난 '부유'했던 시절은 

다 잊게 만든거 같다. 

 

 그 고통은 불쌍하고 

그의 숨쉬지도 못할 것 같은 고난은 

죽기보다 어려움임을 익히 알수 있을 것 같지만

정말.. '죽음'이 쉼이라 고백할 만한 시간들이었던가?

 

일주일 이전.. 에.. 말이다. 

 

엄청난 부와 명예와......모든 것 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누리지 않아왔던가?

 

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인간이 그렇다. 

그러함을 어찌 뭐라겠는가?

자신의 '부유'와 '감사'와 '축복'의 시간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함이 

좀 ......그렇다. 

바로 일주일 이전.. 그날... 이전까지 만해도 

그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던 자다.

그러한 그에게 '고난'이 닥치자

이리 단 한번도 그러한 기억이 없었던 것 같이 

태에서 나오지 않았어야 했음을 외친다 .

 

그러나.. 그의 25절 고백(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을 통하여

인생, 이 유한한 인생의 불완전함을 느끼게 한다 .

잘 살던 시절에도 

'두려워 하였고'

'무서워 하였었다' .. 

생길 거 같은 예기 불안이 찾아왔다는 거다. 

 

 어쩌면 그래서 그는 더 하나님에게 매달렸을 것이다. 

그의 물질적 축복과 부요가 

그의 영적 두려움과 허전함.. 

이 원죄적 '결핍'을 채울 수 없어 

그는 잘 나갈 때도 그렇게 주님에게 더 매달렸던 것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게 매달렸던 하나님 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불안이 현실이 되고

고난이 너무도 크자

그의 터져나오는 '괴로운 고백'이 이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한번 상기하게 된다 .

 

'인생 누구나' 고난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동방의 의인'였던 .. 대 부호 욥 마져 '불안'과 '두려워 '했음이다. 

 

그리고 또하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방향 성'이다. 

우선.. 두려움을 이유로 하나님 앞에 다가섬은

그는 '지혜로운' 선택이다. 

물질과 술의 망각으로 도망가거나

다른 '우상'의 선택대신 '온전하신 하나님'을 선택한 옳음이다. 

 

그리고 더.. 

'하나님을 믿는 방향'이 두려움의 회피, 불안으로 부터의 안전감........이 

그 시작점이 되었다면 '동방'의 의인.. 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신

그처럼 완전해보였던 '의인' 욥이 

완전 무결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였기에

 그냥 '의인'이라 하시거나

즉.. 온 지구의 의인 이나 동서방의 의인으로 표현하지 않고

동방의 의인...이라 하셨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어쩌면 이 부분.. 

욥기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 진실이 여기가 아닌가 싶다. 

시작은 자신의 안전감...보장을 위한

'이기적 발로(이기적이 아니던가?.. 드리고 받는 거래.. 이렇게 해야 안전해질 수 있다는 .. 조건적 믿음..ㅠ.ㅠ;)' 보다는

하나님이 진정 바라시는 믿음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주님과 교류하는 믿음'.......

코람데오 믿음이 아닐런가?

인격적 믿음,

개인적 하나님.. 이란 표현이 맞는 지는 모르지만...

주님과 나만이 알 수 있는 깊은 영적 비밀.. 

그 안에서 누림.. 말이다. 

그것.. 이 욥에게는 부족했음이 맞는 거 같다. 

 

그 부족함을 넘어서 '완전한 믿음'까지의 과정.. 

그게.. 욥을 모델로 

완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좁은 길'.. 좁은 문을 선택한

선택받은 소수들.. 

영적 장성한 자, 

단단한 식물을 깨무는 자들에게 허락되어진 

'누구나의 고난' 가운데 마지막 과정이 아닐런가 싶다. 

 즉...

욥의 오늘의 고난은

모든 분이 다 거쳐야 할 극도의 고통이 아니라는 이야기시며

그러나 자신의 영적 성장에 따라

고난은 필연이심을 말씀하심이다. 

 

 또... 욥의 이 고난을 통하여 

아직은 나타내 보이기에는 너무 '급성기 상태^^;;' 이기에 

물론 성급하다 생각하지만

방금 며칠 전까지 세상에 드물게 많은 축복 가운데 살던 자다 .

아마.. 그가 비록 지금은 고통으로 인하여 잠깐,다 잊었겠지만

그의 일상에서 '감사'가 일상화 된것은 당연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고백..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고백은

그 동안의 감사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감사하였던 그 시절'.. 그 시간은

다 잘라먹어 휴지통에 버려진 것 같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고생'만 한 자의 고백 같이 들린다. 

 

그게.. 

당연하지만... 

고난의 시간에 어찌 '감사'..

저렇게 심한 고통의 경우 .. 감사를 입으로 발할 수 있는 자

몇이나 될까 싶지만

어쨋든 '아쉬운게 '사실이다. 

 

 아내가 어제.. 그랬다. 

'욥기'를 요새 묵상한다면서 (아내는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다른 스케쥴로 기도한다. ) 

정말 메마를 때.. '이전에 주신 것'들을 감사(추수감사절 예배 중 어제 '최'담임 목사님께서 감사'에 대하여 진하게 설교하셨다. ^^*)하며 되뇌어 보는게 좋다.. 고 느꼈다 한다. 

 

그렇다. 

미리 감사.. 

주신 것 되뇌어 보면 어땟을까 싶은 마음이 

저 욥님의 오늘의 고백,

'죽어서 쉼'...이 최선인 거 처럼

'태 중'에서 태어나 단 한번도 '힘들지 않아본 적이 없다'는 고백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그런자 맞는가...하는 의구심이 당연히 든다 .

세상에 보기드문 축복으로 떵떵거리던 게 며칠 전까지인데..ㅠ.ㅠ.

 

 아 또...깨닫게 하시는 것..  

'감사' 하는 자.......다. 

정말 힘들때 감사하는 것.. 

'주기철 목사'님이 지금도 '가장 뛰어나신 목사님' 중 한분으로 기억됨은

그의 아들을 죽인 '일제 앞잡이'들을 아들로 삼은 .. 

그 감사의 기도 이후의 변화....때문은 아니던가?

누구도 다시고백하지만 저리 될 수 없다 .

하지만  '모델링'이다. 

욥의 모델과 주 목사님의 모델을 통하여

우리도 '선택'할 폭을 넓혀주심이다. 

옳은 방향의 선택이다. 

미리 '두려움'에 대하여 '감사'함으로 대치하고 기도할 준비도 하라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래도 욥님이 대단한 것.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거다. 

 

 저리 '예기한 불안'이 있으면 

진즉 하나님에게 말씀드리고 

주여.. 날 이리 불안합니다. .. 나 도우소서.

만일 그리 고백을 하여온 일생이라면

주님.. 왜 나를...%^&*(*&^%$#... 하며 원망하지 않고

자신의 신세만 한탄했을까 하며

그의 '주님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느껴지며

그 등뒤에 안타까이 .. 하지만 희미한 미소로 눈물짓고 계실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려 한다 .

그리고 '사단'.. 

비록 ..위의 추정에 의거하여

'확인'을 통하여 '우리네 들에게 모델링'의 목적도 있으시고

아직 '동방의 의인'에 지나지 않은 '욥'님의 부족한 부분.. 

더 깊이 하나님과 감동을 나눌 .. 

개인의 하나님이 되게 하시기 위한 .. 

그래서 '사단'의 목적이 여실히 틀렸음을

그의 '자신만의 한탄'에 머무는 것을 보게 하심임.. 말이다. 

 

 깨달아지는 바가 많다. 

 

 

주님.. 

날씨가 11월임에도 '잠시 제습기'를 틀어야 할 정도로 

묘한 날씨였습니다. 

반팔을 입고 선풍기를 틀어놨습니다. 

 

그러다가 걱정과 함께 잠이 들어

새벽에 꿈이 많아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선잠에서 깨어 '억지로 주님'을 연상하며 누워있다가

별.. 없던 '모기'가 3마리나 공격을 하는 바람에 

마치.. 사단의 공격' .. 같다는 느낌으로 일어나 잡았습니다. 

 

 옆에서 자던 아내도 힘들었던지 

본인의 시간보다는 늦은 시간에 일어나 

자신의 기도의 자리로 행했습니다. 

 

주여

여전히 '욥기' 묵상이 어렵게 했습니다 .

하지만.. 그의 어려움을 통하여 

'마지막 단계'.. 

이땅의 모든 사람이 거쳐야 할 수 밖에 없는 고난의 끝을 보게 하셨으며

그것은 역으로 

'주님께서 진정' 주시고자 하는 

그 끝너머의 진실을 눈치채게 하시는 듯 하여

그 분의 저 절대의 고통은 안타까우나

오히려 '소망'이 느껴지려 했습니다. 

 

고백드렸지만 저희에게도 또 예기 불안,

닥쳐올 고난에 대한 막연한 답답함으로 

엎치락 뒤.. 그랬습니다. 

주여.

하지만.. 주신 은혜, .. 거쳐온 간증거리.. 함께 하셨던 예수님의 증거들..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주님 원망하지 않을 방향성을 다시한번 확인하였습니다. 

 

지나온 제 삶.. 

정말 죽도록 힘들었습니다. 

욥님.. 저랑 스케일이 달라 저..엄청난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지만

그분의 죽을 것 같은 심사가

제게도 제 인생 내내 수차례.. 소름끼치게 닥쳐왔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제 작은 심장, 

제 새가슴 같은 심령을 짖치고 들어오는

그 수많은 고난의 기억들은

정말 '죽음'의 유혹에 얼마나 많은 몸부림을 쳐야 했으며

그때 찾아오셔서 강제로 ^^* 구원하여 주시고

그 이후에도 거부할 수 없던 

'성령의 은혜'로 인한 '간증'거리들로 

제 삶을 붙들어 주셨던 지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주여..

또 그리하소서.

미리 기도하오니.. 

제 안의 부족함이 있다면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절 고치시고 

제 주변을 고치시며

더 깊이 주님 앞으로 다가가는 시간 되게 하시사

그러한 고통... 더 이상 겪지 못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땅.. 

온전한 쉼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으로의 도피가 너무 쉬이 곁에서 유혹할 만큼

삶은 고난의 연속임을 압니다. 

그리고 이제 또 '전지구적'.. 만국의 심판의 시간이 도래하면

예기했던 불안한 고난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을 아오나

주여.......

더 기도하오니

피할 수 없으면 받아 들이고 

받아 들임으로 깨달아지고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무엇보다

이 땅의 고난을 넘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알고 있는

이땅 이후의 영원한 삶에 대하여

조금더 뚜렷한 부활의 믿음을 주소서.

확신을 주소서.

내 주여.

짧은 시간 두서없이 쓰지만

욥님을 묵상하며 

두려움 보다 '소망'으로 

거짓 쉼 보다 '진정한 쉼'.. 

주님 안에서 개인의 주님.. 내 주님과 교류하고 동행하는 믿음으로 세우소서.

더욱 굳건히 그리하소서.

 

저 뿐 아니라

제 아내.. 

제 큰아들....주여.. 더 가까이 부르시고 

제 작은 아들.. 주님.... 필요한 것 더 깨시고 채워주소서.

손녀.. 또 새로 태어날 둘째 손녀

며느리... 

그리고 제 가까운 모든 주변.. 

주님 강력히 붙드시어

주님을 더 붙드는 .. 

주님 허락하신 '부활의 신앙'.. 

이땅과 이땅을 넘어서는 삶의 온전한 확신으로 

진정한 쉼을 기대하는 자의 삶이 되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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