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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내게 유익이길 위하여[욥5:1-25]

주하인 2023. 11. 8. 06:57

(펌)고난은 십자가 앞으로 오게해 이 땅에서 주님의 임재감을 더 누리게 한다. 이게 고난이 유익인 비밀아니던가?

 

물론

욥님과 같은

기가막힌 고난은 아니었어도

내게 임한 내 개인의 고난들도

그냥 견딜만한 정도는

많이 넘었었다.

 

아.. 지금은 그렇지만

그때를 돌이키라면

억지로 기억해내려 노력하지 않고는

그 까맣고 어둡게 색칠한 듯

잘기억나지 않는게

아주 많이 힘들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게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지금껏 살아 있는 것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더

밝음을 예상하고

소망을 생각할 수 있는 것

 

내 그때

죽음의 쉼에 대하여 거절하고

십자가를 사모하여 허락되어진

그 절절하고 놀라운 은혜가 없었더라면

어찌 가능키나 할 일일까

 

그래서 나 이제 정말

솔직히 고백하고 외칠 수 있다. 

 

고난은 유익이다.

 

고난을 통하여

아니 그 고난이 없었더라면 

누리지 못할

지금의 이 자유로움

지금의 이 감사함

상황에 상관없이 

툭하고 찌르면 터지며 흐를듯한 

감사의 눈물은

전적으로 고난 중에 임하셨던

하나님의 존재의 경험 덕분이시라고.. 

 

이제 또다시

내게 밀려오려 

잠시잠시 저 근처 어디엔가 

우물대는 고난과 두려움들이 있는 듯하지만

그때마다 힘듦보다 더 큰 감사가

내 안에 자리잡았음을

내 영혼이 느끼고 있음은

 

고난이 진정

유익일수 있는 

유일한 길을 

난 이제 확실히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게 진정 나 

감사하다

다행이다

정말 행복하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 내가 '욥'이라면

'나로서' 

억울하겠다. 

 '친구'인 입장에서 .. '그로서'..

어쩌면 걱정되는 일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비단 그 시기의 그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자들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라면...........

꼭 틀린 말이지 않기는 하지 않은가?

 

 틀리고 

어리석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이란 면에서 

그는 '정말 잘못된' 자이지만

'걱정'이란 면에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또,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딱히 뭐라하기도 그런 말들이다 .

 

 그런데 저런 말들이 

가슴을 지민다. 

 아주 오래된 책, 

필립얀시의 '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 아주 심히 아픈 '고통'을 받고 있는 분에게 문병오셔서

'설교' 하고 

말씀을 전하며 이해시키시려는 분들을 통하여

부인할 수 없지만 더해지는 고통으로 더 심한 고난이 가중되는

예를 많이 써 놓으면서

'고통'에 대하여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고통'을 못느끼는 '한센'병 환우 들의 

'더큰 고통, 고난'에 대하여

그리고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 부위가 

몸의 부위에 따라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것.. 

결국 많은 논리적 제시를 통하여 

'고통'이야말로 '축복'된 선물의 일종임을 정확히 

의학적이고 생물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그런데.......

그러기에

오늘 '고난' 중에 있는 '욥'의 입장에 집어 넣고 

'나로서' 바라볼 때

나는 과연 내 고난만 집중하다보면

'친구'는 모조리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입장'.. 

'나'를 돌아보는 입장에서 바라보면

여지없이 틀린 부분과 

하나님 앞에서 돌이킬 부분이 없는가.. 하는 거다 .

 

그리고 과연 

저러한 '고통'을 통하여

그러하기를 주님이 바라시는 가?

그러하기를 바라신다면 

고치기만을 바라시는가?

 다른 이유로 '고난'이 옴, 

친구의 흑백논리처럼 반드시 '죄'로 인한 결과가 아님이 

너무도 뚜렷함을 아는 자로

주님께서 다 아시기에

그냥 회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난 온전했던 자인가?

그런 버퍼가 없는데도 그래야하는가?

 

 하나님의 입장이시라면 

'하나님으로서' 과연 어디까지

나에게 원하실까?

 

 난 정말 '죄'가 없는자인가?

주께서는 정말 '내 죄'를 밝히고 돌이킴을 원하실까?

이 고난을 기회로?

아니면 이 고난은 그냥 무시해도 될 고난인가?

 '위로' 대신 '충고'를 하는 저 친구의 잘못에 대하여

반발만 할까?

내 고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저 친구에 대한 원망으로 내가슴이 미어질 수도 있는데

저 어리석음을 고쳐야 하는가?

저주하고 픈 미움은 어찌 또 해결할까?

하나님에 대한  말씀은 구구절절히 옳은 듯한데

그에 따르지 못하는 '나'는 

내 잘못일까?

고통 탓일까?

 나는 회개하고 친구로서는 '위로' 하고 .. 끝까지 인내하여 주고

같이 기도하며 같이 눈물 흘리는 

하나님 안에서 진정 아름다운 '관계'는 

과연 이땅에서는 없는가?

 그런 하나님 앞에서의 '이땅의 부족함'에 대하여 

원망해야할까?

이 절망을 안고 이 아픔을 또 어찌 버텨나가야 하는가?

스물거리면서 밀려나오는 '분노'와 '좌절'과 '절망'의 예감.. 

온통 어두움, 회색의 시선은 또 어찌 해결할까?

 그래도 그런 고난을 홀로 마주하는 것 보다

친구가 옳지는 않아도 

잠시라도 옆에서 '떠드는..$%^&..' 이 시간 만이라도 

잠시라도 '분노'로 고난을 잊고 덜 외로웁고 그 절망을 이겨내는

아니.. 잊어먹는 시간이 될 것을 .. 

저들이 '잠시'...후 내곁을 떠나면

이 절망을 어찌할까?

 이 땅,

이 고난의 연속이고

이 절망덩어리며

하나님마져 날 버리신 것 같은 

상고난 ㅠ.ㅠ에 얹혀진 또하나의 무게.. 

이 '부족한 세상'... 이 '원죄로 파생된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나가는게 

희망 한톨 없는것 같은데... 

이 혼란과 혼돈을 짊어지고 사는게 인생이라면

과감히 '죽음의 쉼'을 선택하고 싶은

이 절망을 어찌 이겨낼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살려 

그 처절히 몸부림쳐왔는데

결국 '실망'과 '끝이 없는 절망' 같으며

살만한 가치가 하나도 없는게 

이 삶인거  같은데

과연 그게........................)(*&^%$#@^%#..ㅠ.ㅠ;; .. 가 

말씀을 묵상하며 '욥'의 입장에 대치한 

나... 일듯하다. 

 

아.. 내가 욥님이라면

소리 '꽥'하고 쳤을 거다. 

아니.. 어쩌면 힘하나도 없어 '기절'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고난에 더해지는 '분노'와 그 후폭퐁의 절망으로 .. ㅠ.ㅠ

 

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8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22 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5 네 자손이 많아지며 네 후손이 땅의 풀과 같이 될 줄을 네가 알 것이라
그런데.. 

정말 '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그처럼,

나처럼,

하나님도?............

 

 아님을 너무도 잘알고 있다. 

알면서 '혼란'스러운 거..

알면서 고난 가운데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거..

알면서 그러면 안되는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좀 상스러운 표현으로 '입을 털게 되는 거... ' 

나.. 

많이도 '죄송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내가 욥이라면

내가 '엘리바스'라면

내가 '하나님이시라면'.........

온통 혼란스러우면서도 

깨달아지는 바가 있다. 

 

 힘듦은 정말 힘든거 맞다. 

힘듦 때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 맞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이 중요하다. 

아니다.

한편으로 중요하지 않다. 

내용자체.. 말이다. 

'기도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고난일테니... '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거 .. 중요하다 .

더 '발전'과 '유익'을 위하여 기도하는 거.. 

고난이 유익임을 알기에 기도하는 거 중요하다 .

그런데.........그러함을 밀고 들어오는

저 위의 저러한 생각들의 꼬임이 더 크게 '고난'을 가중 시킬텐데

어찌 ..이상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 거던가?

 '고난'의 회복으로만 기도함이 주 내용이라면

고난 없을 때는 '난.. 완전한 자'이고

'고난없는 자는 기도할 필요없는 온전한 분들'이시라는 이야기이던가?

 

수년전.. 

'전인치유'라는 찬양과 기도와 병원치료와 마음 달래기 프로그램.. 

영육혼 세가지 다 치료해야 완전하다는 개념으로 

이전 병원에서 '의사'지만 '찬양리더'로서 몇년 ..

본의 아니게 ^^; 서 있을 때

많은 깨달음이 었었다. 

그때.. 그들 중에서 기도하다가 

불현듯 그들의 고난 중에서 '안아픈 나'를 바라보며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안아프고 다시 돌아가는 불완전한 나'......가 

기도의 제목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그냥 기도하는 것 만으로 '은혜'.. .

정말 '아픈 중에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것.. 

그것을 깨달아가며

최근에 '기도하다 은혜 받을 때' ... 

아 ..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그 마음과 일치하던

그 혼란한 내 마음의 상태의 시절에

그 '환우'로서의 나의 어둠 속에서 기도할 때

확실히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그냥... '기도하게 하시는 거.. ' 그게 목적이고 이유였다 .

기도가 더욱 깊어지는 거.. 

고난은 '하나님과 만나는 절호의 기회'임을

그냥 머리 속이 아니고 

'깊은 임재'를 더불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하는' 기회.. 임을 깨달음을 통하여

고난이 유익임은

고난을 통하여 

그 어떤 길.. 

인생이 살아가는 길이 다다르기에 

어떤 형태의 고난이든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하시는' 게 

고난의 진정한 이유고

그 고난을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붙듦을 조금 더 손 놓게 하시며

영적인 나라.. 

하나님 계시는 그 나라를 향하는 관심을 더 크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시는 게.. 

결국 그 고난의 크기가 커질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커져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 

결국 내 갈 본향을 향하여 기쁘게 하루하루 행진해 가는 것을

확신하여

그 어떤 고통이나 고난도

더이상 하나님과의 동행을 흔들지 못하고 

날이 살 수록 더 깊어지는 

하나님 안의 삶........이 되게 하시기 위한 도구가

'고난의 진정한 이유와 목적'임을 

그때 불현듯 깨닳게 되었다 .

 

 그리고 그 후의 이어지는 지금까지의 고난의 삶.. .

훨씬... 더 맑아지고 밝아지고 뚜렷해졌다. 

하나님 안에서.. 

아직은 조금 부족하지만...

 

 친구님.. 

친구 같은 내 안의 정제되지 못한 흐름아... 

남을 판단하려 할 때

상황에 맞는 그러함이 필요할 듯하다 .

정신차리자. 

 

욥같은 나야..

잊지 말자.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 

너무 힘들어 견디기 힘든 고난은

조금 더 성장할 때

하나님께서 '감해주실'만한 상황까지 기다리실 거다 .

난.. 오늘 그냥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허락하신 만큼만 하루 더 살아내자.

내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과 동행했던가...가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회개하며

감사하는 근거가 되자.. 

나머지......모든 근거.. 

다 하나님의 영역이시다. .. 하십니다. 

 

주님. 감사하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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