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정리된 눈으로 바라보기[욥27:1-23] 본문
.
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분명코
'풍자'라 하였다.
비아냥이 아니다. ㅜ.ㅜ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그래도 하나님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더 매달리며
자신의 심사를 쓴 풍자로 알려드리는 거다.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보라.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
그 분이 '사심'.......
'풍자'라는 말을 듣지 않곤 얼마나 불경한 단어들인가?
사실..
그래 ...사실이 아닌가?
그 사람 '욥'이 느끼기엔 말이다.
아.. 심한 고난 중의 우리.. 가 느끼기엔... ㅠ.ㅠ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모든 일..
심지어는 '정당하지 않아 보이시고 ' ,
차갑게 '물리치시'는 거 같으시며
'내 영혼'을 괴롭게 하시는것 같으시며
'살아계시지만' ,
괴롭게 하시려고 ㅠ.ㅠ;; 살아계신 것 같아도...
그 모든 게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감히 짐작하기 조차 힘든
엄청난 사랑,
그 분의 시간, 그분의 선, 그분의 계획 안에서
실제 하신 옳으신 '살아계심' 안에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지만
반드시 실제하신 분이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믿음으로 갈무리 하는 것...
그것을 '훈련'하고 연단시키기 위한
정말 마지막 '성화'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단지 . .훈련이 아닌
우리가 짐작 불가능한 진정한 '사랑'의 완성을 받아들이게 하시기 위한
허락되어진 마지막 과정.. 말이다.
그것을 아는 '동방의 의인(완전함에 1% 부족한.. ^^;;)'인 욥이
'풍자'로 외치는 거다.
알듯 말듯하면서
견디기 힘든 그의 심사를
저리 약간은 비아냥 대는(심지어는 그 비아냥 마져.. 왜곡이나 저항이 아님을 다 아시고 , 하나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한 최후의 , 최고의 몸부림이심을 주님께서는 분명코 알아서 허락하신 ...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의 증거... 어찌 부족한 우리들이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 말로 비아냥, 저항이고 불신앙이지... .욥의 차원은 다르다. 분명코.. ) 표현을
그냥 두시고 계신다.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고 그의 신음소리 같은 외침은 이어진다.
"분명코 너희는 틀린다.
나는 결코.. 한다. " 하며
"나의 온전함을 죽기 전까지 버리지 않는다"한다.
그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하나님 앞의 의인' 의식 (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마음을 주셨고 그래서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그리 일상 기도, 일상제사를 드려 왔는데.. 그래서 허락되어지 하나님의 허락하신 의로움인데.... 이거야 말로 반드시 배워야 할 우리의 태도 아닌가? 내가 옳다.. 가 아닌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니 나는 옳다'는 개념.. 진정한 자존감..그러기 위하여 얼마나 주님 앞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가? 깨달아지는 바다.)과 더불어
저들 '부족한 믿음'의 친구들을 통하여
옳지 않은 '믿음'의 방향에 대하여
그는 확실히 깨닫고 있는 거다.
타인을 통하여
자신을 들여다 보고
그 모든 게 '하나님 앞'이라 가능한 거...
그것이 '의인'이 마땅히 유지되어야하고
'이 세상 살아가며 견지되어야할 (견지해야할 ..이 아니다. 결코.. ) 가치관
삶의 올곶은 태도 아니던가?
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보라..
그는 '공의' 차원에서
그런 태도를 흔들리지 않고 붙들 것이라
그 '모진 고난'의 상황에서 선언한다.
확신하고
스스로 다시한번 확인하는 거다.
그리고 그러할 수 있는 이유를
다시한번 '확신'에 차,
아니다.. .
더 정확히는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감동'(힘듦 중에 감동이란 표현이 세상적으로는 맞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자.. 기도하는 중 자주 느끼는 그 180도 다른 감동, 전혀 생각할 수 조차 없던 심정의 변화 , 감동이 이런 느낌 아닐런가 싶어서 공감되어진다. ^^*)에 겨워 다짐하는 거다.
"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공의를 잊지 않을 거다.
그것은 그래야 내 죽을 때 되어도
내가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라 하는 소리다.
8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
보라.
하나님의 안에 있는 자..
하나님의 허락하신 평강을 체험하는 자...
'하나님 앞' 삶을 사는 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게 ' 내가 '기뻐하는 방향'임을 체험한 자..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마주한 자... 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다면
절대로 관심을 두지 않게 될거라는 거...
그 이유야 말로
그 불경건한 이익이야말로
소천될 때
하나님께서 영혼을 거두실 때
하나님 앞에서 드려질 '희망'이 없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렇다는 거다.
10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
즉, 그는
하나님 안에 사는 자들의 온통 관심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 있는 거'란 거다 .
오늘 말씀의 포인트는 그것이다.
우선 '욥'의 고통이 너무 심함이 다시한번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고난 중에도
절대로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음이다.
또한 그러한 중에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이 옳으심'을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삶의 동기,
유일한 관심의 이유가 '하나님이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옳고'
즉 '의인'이 맞고
흔들릴 일이 없다는 거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삶의 소망'이고 '이유'가 되기 때문이며
그러함을 떠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영혼으로 서게 될 때,
희망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절망 그자체이다.
그래서 이땅의 그 어떤 유한한 유혹이나.
죽을 거 같은 절망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
아니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진정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땅의 그 어떤 것도
그를 흔들수 없는 확고 부동한 삶의 방향...
옳은 인생관, 우주관, 세상관, ......가치관이 세워지게 되는 거다 .
그거.......
한마디로 '하나님의 기쁨'이다.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한 자의 영혼 깊숙이에
진리와 진실을
허상과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아 버림이다.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완전하신 , 무죄하고 순결하신 무결점의 '예수님' 같은 수준에는
불가능하겠지만
오늘도 또.. 그러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리 추구하다보면 허락하고 도우실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곧 뵈옵게 될
온전한 나라의 완전한 '부활'체의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 도 또 주님 만을 소망하는 하루 되어야 하리라.
주님.
저러함의 수준에 가기까지
얼마나 먼 길인가
욥님의 신음 소리 같고 '풍자'같은
약간은 어두운 외침에
실은 더 깊은 기쁨과 감사와 완전한 주님 안의 평강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
주님 안에서 허락되어지는 온전한 '평강'의 기쁨으로 인하여
이땅, 이 '죄악된 세상'을 또 살아갈 이유가 다시한번 더 생깁니다.
주여.
주님의 기쁨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주님 뵈올 그날,
영혼을 거두시는 그날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하여서라도
'죄'를 더 멀리 해야 겠습니다.
주님..
저는 분명코 '부활'의 존재임이 믿어집니다
의인이고
의인으로 자격이 충분함을 믿습니다.
제게 .. 달라 붙어 살던
그 수없이 많은 자책의 사단들을 떼어 버립니다
네가.. 네까짓게.. 손가락질하는
저 '열등'의 귀신들을 벗어 버립니다.
주께서.. 너는 옳다.. 하시니 그렇습니다.
주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신....
주님의 온전하신 뜻이 아닌 왜곡되거나 편향된 타인들을
불쌍히 여기겠습니다.
비록 .. 사는 동안.,
주님 앞에 가는 동안.. .
이 부족한 3차원 세상,
세상의 권세잡은 자의 달라 붙는 소리가
끝없고 되풀이 되겠으며
어쩌면 어제와 유다른 강도의 소리가 붙들려 달려들지 모르지만
주님..
주님 안에서 그게 옳지 않으면
그냥 벗어버리겠습니다.
도우소서.
오직 주님 기쁨을 놓치게 하면 절대로 수긍하지 않겠습니다.
도우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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