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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욥20:1-2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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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욥20:1-29]

주하인 2023. 11. 2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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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소발'은 정말 소...발..같은 사람이다. 

친구들 중에 제일

 

2 그러므로 내 초조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대답하게 하나니 이는 내 중심이 조급함이니라

수준이 낮은 느낌 ^^;

 

 본인도 고백한다

"내 초조한 마음'

'내 중심이 조급함'..

그 의도는 아니겠지만 이상히도 소발의 말을 들으면

'논리 부족'한 초도함과 조급함이 드러나 보인다. 

 

 그런데..

그 '초조함'과 '조급함'은 내 문제는 아닐런지..

오늘 들여다 보고 하루 붙들고 다니라시는 말씀이 

초조함과 조급함으로 너무오래된 습관이었던 것

들여다 보고 하루 살라시는 말씀은 아닐런지... 싶다. 

 

5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29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

그 소발..

내 초조함과 조급함의 발로로 인한 

첫번째 오류는 이거다. 

 

'욥'을 '악인'이라 단정해버린다는 거다. 

세상의 누구가 항상 악하고 항상 옳겠는가?
'악인'이라도 늘 악할까?
'의인'이라고 늘 옳을까?

 

그런데.. 그 악인으로 단정해버리는 상대가

'친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그것도 아주 절친으로 그리하였던 '욥'의 ..

심한 고난 앞에서 그런다 .

 의도는 아니다.. 네가 이래서 이랬다. .. 그냥 순순히 인정만 하였더라면... 하는

수없는 많은 변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그는 더 참아야 했다. 

입을 굳게 닫고 '긍휼'히 여겨야 했다. 

그의 '악한 부분'이 없지 않아 

그 마지막 부분을 해결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을 것.. 

그것을 인정해야 당연하고

그렇더라면 '질타'나 차가운 정죄 보다는

'가련히 ,불쌍히 , 안타까이 '여기면서 

눈물이 먼저 나왔어야 했다. 

 

 이 초조함과 조급함은

그로 하여금 어쨋든 옳게 나가게 하기 위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어도

그 내면 어디엔가 다른 동기,

질투,

그동안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한

반대급부적 초조함.. 이 같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요청하기 전에는 무조건 입을 닫아야 한다 .

가련히 여기고 긍휼한 마음으로 쳐다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한다. 

 나야.. 

주하인아.. 

특히 그러자.. 

 그렇다면 

그의 말에 '옳은 면'이 어디 있는가?

'악인'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옳게 바꾸실 것은 확실히 맞다. 

그것... 부인한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선악 구분 없는 자 된다 .

 

 시기와 정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그것을 알고 보고 확인 싶어 하는 것은

이 무지한 , 짐승(성경에 가끔 , 욥기에도 얼마 전... 18절 , 12절에 나오는 표현 ^^;) 인생들의 

어이없는 욕구일 뿐.......

우리가 반드시 ,모든 것을 다 알아야할 존재들인양 착각하는 것의 발로일 뿐.. 

그마져 하나님의 영역에 맞추어야 되지 않던가?

 나... 

심지어 그것마져 하나님을 '믿음'..의 영역으로 돌리길..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믿는

그러한 자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도 포함이 되어 있다 생각한다. 

 선한 자, 아가..들 조차 러우, 하이 전쟁에 희생되는 일.. 

악한 자들이 떵 떵 거리며 사는 일.........

곁에서 보면서 '하나님이 어디계시는가'.. 

과연 공의의...정의가.... 하는 의구심 들만하다. 

오늘 같은 '악인 심판' '선인축복'의 논리가 어이없게 들리기도 한다 .

 

그런데.........

그러함은 맞지만

그 시선이 이땅에 고정되어서 그런 거 아닌가?
유한한.. 

시간의 틀 안에서 

3차원에서 사는 우리들이 

겨우 이땅, 광야 사막 같은 '시간' 안에서 

광대 무변,기묘막측 하신 

시간과 공간과 온 우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예측하고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 성설.. 

정말 어리석고 미련하고 

조급하고 초조한 심성의 발로 아닌가?

 

시간의 틀안에서

그 차원을 넘어서시는 

시간의 지배자의 공의를??

 

다시한번 우리의 죽음, 소천이후

그리고 ''구원심판' '백보좌' 심판,'상급심판' 등의 존재가 

비록 우리 선조들의 '면죄부'사건으로 인하여

가려져서 그럴 뿐

필요 타당성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보는 부분이다. 

 

각설하고...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게 사실이고 

그것을 인정하지 안하는 것은 자유지만

하나님을  하나님 답지 못하게 만드는

'사단'의 장치,

조급함과 초조함과 더불어 '무지'의 한계의 기본일 뿐이라는 거다. 

 

 즉..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심판이 없으신게 아니다.

그러기에 더 열심히 잘 살아야 될 당위성이 있고

끝까지 악함.. 

악인으로의 '선택'만큼은 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그 '악인'이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 지신게 아닌가?

그 증거가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구원'이 아니신가?

"눈감고 다시 뜨면 네가 오늘 천국에... " 라시는 

'신음'참으시면서 우리를 안타까이 여기시며

이 땅,

이 3차원

이 시간의 굴레에 갇혀 

어이없이 '선악'심판을 판단하려는 ,

눈치보려는 조급함 덩어리들을 향하여 ... 말이다.  ㅜ.ㅜ;

 

 그리고 그렇다면

'권선징악'에 대하여 

나의 적용할 부분은 없는가?

 

나..

악인이 아니다 .

절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의로울 자격'을 주셨다 .

'악인'은 예수님 영접하지 않은 불신자들이다. 

불신자들은 '영멸'에 들어간다 .

그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선교'하여야 하고

매사 '예수님'을 영접시키기 위한 결심을 하고 

언제든지 전도하여야 '선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거다. 

 

 그런데... 

'의인'의 자격이 항상 의로운 ..

온전한 의인... 을 의미하던가?
욥도 보라. 

그 시대에 맞는 구원의 방법으로 (제사..매사 제사.. ) 거의 의인(동방의 의인 ^^;)이지만

그런 그에게 허락되어진 '고난'이 있지 않던가?

'의인'에게도 '악한 부분'.. 아니면 '부족한 부분(욥의 해당부분)'이 있어 

허락되어지는 고난이고 

그를 통하여 '영원'까지 연결되는 

그 상급의 결정을 위하여 허락되어지는 '시험'과 '연단'일 뿐이지

악함 탓은 아니지 않던가?

 

그렇다면 '난'... '우리'는...?

 

 고난..

나... 

아직도 '번연한 아픔'.. 

완전해결 되지 않은 깊은 어려움.. .

평생을 괴롭혀온.. 그러함.. 들이 있다. 

그런데.. 그게 가끔.. 힘이 들게 한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알수 없을 나 혼자만의 어려움... 

그거에 '하나님을 깊이 앎에도 불구하고 ' 여전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은 (엘리야님 ㅠ.ㅠ....) 그러함도

과연 '내가 악인'이기 때문일까?
 엘리야님 포함, 잘나가는 신앙인들의 

혼자만 아는 어려움들이 없지 않아 있을 그 고난들이

전부 '죄인'이고 '악인'이어서 받을(분명코 '말씀' 통해  예수님 구원, 성령은혜를 통해 깊이  '의인'의 자격을 받았음에도 ) 고난이란 말이던가?

 

그냥.. 

정말 그냥.. 그러면 안되지만.. .그냥.. 

'악한 선택'을 또 ...했음으로 그러함이고

'의인'으로서 '하얀 옷'에 묻힌 '오류'이고 '오물'이기에 

어쩌면... 내게.. 

우리, 좁은 길의 의미를 아는 자들에게 

허락되어진 '고난'일 수도 있을 거란 말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 내지 '부족함'을 위한 보충의 의미 말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 

내게 오늘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뚜렷하다. 

 

'의인'의 자격인 난 주하인이지만

'오물'이 튀어 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더 .. .그렇다.. 더 깨끗하게 하기 위한 

허락되어진 고난이거나

정말... 세상에 보기드문 '옳은 신앙인' .. 

성화를위하여 더 적극적으로 허락되어진... 

아니면 하나님과 그,혹은 나 만이 알수 있을 

크고 놀라우신 비밀을 완성하기 위한 '고난'일 게고

그 끝은 

당연히 '하나님 안에서의 샬롬'.. 

'하나님과의 완전 무결한 교통'... 흐름.. 

생명의 교류가 아닐까 싶다. 

 

그를 위하여

오늘도 내게.. 우리에게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 초조하고 조급한 심령을 가진 우리,

거기에 '죄'로 얼룩질 위험성 가진 '의로울 우리'를 위하여

허락되어진 '심판'일 수 도 있다는 이야기다. 

 

 

할렐루야 주님.

평생을 질기게도 쫓아다니는 고통...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오늘까지 말씀을 붙들수 밖에 없게 하시는 

하나님의 

나.. 주하인을 너무도 잘아시는 배려와 

그로 인한 비교할 수 없는 축복임을 앎에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도 

여전한 듯한... 

제 괴로움과 그 실체.. 

그 안의 '조급함과 초조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느끼면서

아.. 아직도 이러함은 

전적으로 내가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난.. 아직도 '악인'인가...라는 혼돈이 들려 했습니다 .

 

주님 .. 길게썼지만

간단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

 

 나.. 

'의인'을 향해 치달리는 '자격자'이고

하지만 아직 어두운 부분들.. 

하나님과의 교류,

주님의 임재를 위하여 '원할하지 못하게 하는' 결점들이 남아 있어서

허락하신 어려움들이니

힘내고 

더 기도하고 

더 기대하며 

오늘도 살아내자.. 라 다짐케 하십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완전한 '의인'이 될 '의로운 자' 주하인이라 도장찍으십니다. 

그게 감사하나이다. 

 

그리고 그 온전한 의로움을 위하여

더 힘써 주님 앞에 나가야 할 당위성을 깨닫게 하셔서 기쁩니다 .

 

주님.. .

주님의 '선함에 대한 확고 부동한 심판'을 이해하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시간 장소 정도는 

모두 하나님의 영역이시며

겨우 이땅에 시선을 두고 

선악을 구분하고 

정의를 말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유지 못하게 하소서.

 

설령 그러셔도

그리 아니 하실 지라도

주님은 살아계시고 

주님의 선은 지속되시며

공의와 사랑은 우리의 시선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주님의 영역임을 믿게 하소서.

이해하게 하소서.

믿어지게 하소서.

 그러하신 '하나님' 앞에서 

더욱 '의'롭게 살게 하소서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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