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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비밀 더 깊은 누림[욥21: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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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비밀 더 깊은 누림[욥21:1-16]

주하인 2023. 11. 26. 08:42

주여

주께서

십자가를 지면서 까지도

알려주시려 하신

그 놀라운 비밀

 

허락하신 고난의 과정을 겪으며

그 모든 것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진정한 배려이심을 잊지 않는 자에게 만

허락되어진 그 놀라운 비밀.

 

하나님 안에서의 거함

하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심

그 교류로 인한

우리 영혼의 어떠함은

 

오직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고

인내로 순종하는 자에게만 허락되어지는

엄청난 누림이실 것임이 

바야흐로 깨달아지는 아침입니다.

 

주여.

살아계신 내 하나님이시여

고난이 필연이시고

그 고난 중에 있음이 

내게 허락되어진 길이라면

오직 감사와 기대함으로 

오늘 또 하루 인내하게 하소서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욥'의 차례.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
(NIV; let this be the consolation you give me. 그리하여 이것이 당신들이 내게 주는 위로가 되도록 해주세요)

" 제발 끝까지 듣고서 이야기 하라. 

조금만 더 참아주라.

그러면 그것들이 '너희들이 내게 주고자 온 본 목적인 '위로'가 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

 

' 친구'들이 위로의 주 주체는 되지 못하지만

친구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땅에서 서로의 '위안' 내지

하나님 안에서의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

혹은 '매개체'로 허락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즉, 그 마땅한 존재가치...

친구로서의 '위안'을 주려 왔다면...........

'가만히 끝까지 듣는게 옳지 않은가..'라 항변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끝까지 들어주는 것.

정말 힘든 자에게는 

설령, 친구가 아니어도 ..

설교 내지 교훈 보다는

들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러함의 깊은 의미는

'위안'.. consolation을 주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위안자'의 '성품'을 개발하려 

오직 '예수님'을 통한 

'위안자'... 성령 .. 님을 보내신 것을 모본으로

온 '천국 백성'이 될 영혼 들이 마땅히 

이땅에 살면서 개발하면서 확장시켜야할 

옳은 품성, 

그를 위하여 이 땅에 살동안

'참고 끝까지 들어주는 ' 경청... 의 연습에 대하여 말씀하심이다. 

 

나를 용납하여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너희가 조롱할지니라
 보라..

소발들을 향한 '외침'이지만

말씀을 묵상하려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또 받아 

하루 살아가려 결심한 나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하인아.

오늘은 이렇게 하라

주변 사람을 용납하라.

그리고 그 사람이 다 말한 후에 판단하고

조롱하려 해도 그때에 하라"

 

 어찌 '조롱'이 주가 될까?
경청을 말하는 거 아니던가?

아주 절박한 '욥'님의 입을 통하여서

"이것봐라.. 이렇게 힘든 자들에게 '경청해주는 것 '.. 얼마나 귀한 일인가?" 하신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그리고 들어주길 원하는 그 내용.

'흑백논리'가 ,

'권선징악'의 논리가 맞지 않음을 보라.

 

"너희들 말대로가 아닌 악인도 부함을 보아서

너희의 말이 틀리지 않더냐?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음이 아니더냐?

 그건 나..

악인이 아닌 증거고

그렇다고 하나님이 안계시다는 것 말도 안되니

너희의 논리가 틀린거 아니더냐".. 하고 쟁변한다. 

 

그렇다면.. 경청에는

언제나 가슴을 찌르는 그 어떤 것도 받아 들일 마음의 버퍼가 있음이며

그러한 아픔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음,

즉, 타인의 아픔을 통하여

내 가슴이 찔리는 아픔을 감수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경청이 가능하다.

 

 '경청'은 하나님이 

내 부족한 내면의 버퍼를 키우는 

정말 훌륭한 이 땅의 연단 도구라 하시고 계시다 

 

 

 내 마음.

60년 넘게 살아왔지만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도 가슴 한구석에 '은은한 통증'을 유발하는게 

내 마음이다. 

 

 괜한 흔들림.

괜한 어려움.

괜한 불안.. .

오늘 말씀을 통하여 들여다 보았지만

마주하기 어려워 저렇게 '욥'친구의 말을 끊어대는

소발.. 같은 친구들의 내면 깊숙한 

버거움 .....들이 튀쳐나오려 함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게 눈치채어진다. 

 

아.. 

산다는 것.

고뇌와 고난의 연속이다. 

 

집중하기 힘들다. 

서재에 앉았다. 

찬양을 틀어 놓고 '잠시 말씀'을 놓고 집중을 하려 하자마자

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 차분함과 감동이 밀려온다. 

 

아... 

눈을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익숙한 논리와 무게로 내 가슴을 짖이길 듯하던 고민들이

주님을 연상하고 주님 앞에 앉으면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난 딴 사람이 된듯

괜한 두근거림... 감동으로 ...

아.. 이 마음을 어찌 표현할까?.. 설레인다.. 행복하다... 차분하다....

마음이 깊이 가라앉는 듯 차분해진다. 

그리고는 

계속 표현하지만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듯.. 좋을 듯'한 고백이 

슬그머니 입에서 나오며 

따스한 기운이 온 영혼을 채운다. 

 

 아.. 깨달음이다. 

...

'청색광' 때문인가?

노안 탓인가? ㅠ.ㅠ;..

컴화면을 오래 보다 보면

자꾸만 촛점이 잘 잡히지 않고 흐려지는 현상이 나와

'E book Reader'기를 얼마전에 구입했다. 

 

사고 나니 '밀리의 서재'라는 전자책 대여 프로그램 통해

자주 책을 접하게 된다. 

아주 몇분 안되지만.. 하여튼 ㅎ.. 

유투브.. 에 빼앗기던 시간들이 훨 많이 책 쪽으로 가는게 사실이다. 

각설하고.. 

'필립얀시'님 책을 오랫만에 자주 돌아본다. 

 

어제는 잠깐 읽은 부분에 

'고난은  소득'을 동반한다... 던가.. 그런 내용이 있어 

끄덕인 부분이 있다 .

 예화로 들은 엄청난 고난을 받은 분들.. 

그 들의 고난 속에서 어찌 하나님을 찾는게 쉬울까 마는.. 

결국 하나님 안에서 있게 되는 결과는 

'소득'.. 

그게 깨달음이든 현실의 어떤 것이든.... 그렇다는 이야기다. 

 

고난은 유익.. 이라는 이야기와 상통하는 이야기 아닌가?
고난이 유익이라는 성경내용이 

심한 고난 안에서 깨달아 짐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 시간, 하나님 안에서 집중하다 보면

반드시 ........그럴거라는 거........

어쩌면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아닌가?

 

 아직도 여전한... 

비록 강도와 수준은 현저히 ^^* 낮아 졌지만

아직도 남은 내면의 불타는 듯한 고민,

이땅의 삶에 대하여 그리 이해가 가지 않는 

어두운 판단들.. 

그리하여 파생되어지는 '무기력' 무료.. 지루.. 무게........뭐 .. 어떤 표현이든

힘들게 살아온것 사실이고

그러한 무게가 '방금 전' ..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묵상' 전의 현상이 아니었던가.. .

 

그런데........

잠시의 기도 ...

내 맘은 전혀 다른 상황에 있다. 

물론 눈을 뜨고 또 달라 질 것이라는 현실을 알고는 있지만

이제 점점 그 평안과 기쁨이 커지고 오래 감은

내 영혼에 

이 깨달음,

하나님 안에서 거하게 하시려는 

하나님과의 교통.........

욥에게 그렇게나 더 크게 채워.. 

우리네들에게 보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이땅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진정한 본질에 대하여

체득하게 하려 하심이 맞은 것 같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러함이 

고통을 통하여 

진정 크게 얻는 '소득'이 아닐까?

하나님으로 얻는 기쁨 , 평강을 가지고 

점점 커지는 삶의 생기와

그에의하여 삶속에서 일에 대한 능력의 효과가 배가 되고 ..

뭐.. 그런 원리.

 

 거기에 그 소득의 기준이 

겨우 '이 땅..' 

이 3차원, 시간의 굴레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까지 확장되고 

그것이 내 안에 

실제로 

사실로 인정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 .

그게 .. 믿음의 본질.. 

믿음의 실체... 가 되며

그것을 위하여 

이 모든 얽힘과 섥힘.. 

이땅의 모든 '광야 연단'의 이유가 깨달아지는 것이며

그게..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결정체가 되는 것이고............^^*

 

 말이 길어졌다.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의 비밀이 내 눈뜨고 살아가는 동안

실체화되고 

내 이 일상 속에서 의미가 되고 힘이 되기 위하여는

깨달음.. 

그 깨달음으로 인한 놀라우신 하나님의 평강이 

정말 눈뜨고 일어나고도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현상이 일어날 때까지

난.. 조금 더 기도하고 

더 기대하고

더 기다려야 하겠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은 욥님의 고난속 외침,

조금 만 더 들어달라... 그래서 내 위안이 되어달라... 

그게 너희들에게도 유익이 아니더냐... ..하고 외치는 소리 속에서

제게 부족한 '경청'의 능력.. 

경청 하던 중에 자꾸만 부딪치는 내 내면의 부족함.. 

그게 들킬까 두려워 

자꾸만 단속함으로 

그 대상들에게 무게를 더하고 

하나님의 평강이 더 이상 깊이 

제 영혼 속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임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주여

고난.. 

제 고난만 아주 큰 고난이고 

몸부림 쳐서 떨구어야 말 할 존재로 대해왔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유익이고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 안에서 있으면 

반드시 '소득'이 있을 것을 

타인의 글에서 읽게 하시어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하십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제게 하나님 만으로 

하나님 안에서 허락되어진 고난임을 인식하고 

더 기도하고 

그러함으로 오늘 허락하신 은혜와 깨달음이 

제 영혼에 깊이 들어오게 되면

그 들을 대하고

그들의 아픔과 힘듦 조차 경청하고 들어주는 버퍼가 커져

결국 영혼이

내 어떠하였음..

이전에 내게 어떠한 나쁜 영향이 있었던 없었던...간에.. 

아무런 관계없이 

제 영혼의 버퍼는 커질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누림 안에서 

이땅을 살다가 

주님 부르실 그날에 

주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소천할 수 있음이 기대됩니다. 

 

주여.

제 속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에는 

이 공적인 cyber 공간..의 한계로 인하여 

그렇게 못하지만

주님..오늘 제게 허락하신

이 가슴 깊은 기쁨...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말씀이나 상황에서 

진정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막연하지만 깨달았습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오래 붙들고 주님을 바라보려니

깨닫게 하시는 기쁨.. 

그 주님과의 교류의 현상.. ..

앞으로 훨씬 커지고 확장되어질 때의 결국.. 

천국의 느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문제.. 

이 내.. 인생의 문제들.. 

앞으로의 그러함들.. 

관계.. 주변의 문제... 

그 모든 것이 작아져 보입니다. 

 

주님. 감사하나이다. 

날이 갈 수록 더 욱 뚜렷해지시는 주님의 살아계심이 그렇습니다

주여

욥님에게 그렇게도 보이시길 원하시는 

'주님과의 교류'하는 삶... 

주여.. 

눈 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감사하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감동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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