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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과 분노를 넘어서 긍휼과 겸손함으로[욥15:17-3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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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과 분노를 넘어서 긍휼과 겸손함으로[욥15:17-35]

주하인 2023. 11. 20. 06:33

(펌)

자만과 분노의 시선은

이러한 삶 아닐까?

 

편협하고 답답한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을 어렵게 하는....

(펌)

그 안에 예수 십자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함이 들어가야 한다

 

그제야 체험되어진

그 놀라운 사랑으로

타인을 볼 수 있다.

(펌)

또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그제야 세상이 온통

따사로움으로 보이게 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오직 하나님의 사랑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 만이

우리를

비로소

제대로 살게 하실수 있다.

 

17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내게서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내가"

"내게서"

"내가".. 한다. 

 

엘리바스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다. 

율법으로, 친구라는 명분으로 ,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잘 단속하며 참아오며 

나름의 주장을 하던 그가.. 드디어

마구 거친 이야기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생각, 자신의 위신, 자신... 에 만 사로 잡혀 마구 쏟아내는 이야기 ㅠ.ㅠ;;;

 

25 이는 그의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에게 힘을 과시하였음이니라

그러면서 '욥'.. 

그 불쌍하며 처절한 나락에 떨어져 있는 

잘 친하여 오던 '그'에게 

이제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에게 힘을 과시하는 자'로 단정을 해버린다. 

 

처음에 조심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며 

나름의 조심.. 위에서 '율법'적 시선, 선배의 시선... 으로 말하려던 처음의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뱉어낸다. 

 

거기에는 '의분'...이라는 명분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게다. 

너무 엉터리 같으니 '혼내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분노를 쉬이 하게 하는 

말도 안되는 '버튼'이 눌렸음이 분명하다. 

 

그 증거가 17절이다 .

내가 .. 내가.. 내가.. 한다. 

'내'가 , 자아가 철저히 앞을 가로 막아

그의 영혼을 사로 잡은 거다. 

 

그런거다 .

정리되지 않은 세상의 훈련, 율법, 도덕, 양심....들...

분명코 어느 정도 세상의 중심을 잡기엔 필요불가결한 가치이고

우리.. 아무 거도 모르는 깡통같은 인간의 영혼에

'몽학선생'... 초등학교,유치원 때 가르치는 기본 원리 같은 

가치 기준이 되지만

거기에서 멈추면 '왜곡'된 어른... 

무지한 어른이 되는 게 사실이고

자아 등등 기세등등하여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바라보게하는 이유가 되는 것 처럼... (일반적인 이야기다. ㅜ.ㅜ;)..

그는 드디어 숨겨져 있던 본색이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그의 위로보다는 정죄,

이해보다는 결투

인도보다는 짓누름의 분위기를 띠고

그를 '정죄'해버린다. 

틀에 가두어 버린다. 

'나쁜 자의 프레임'을 씌워 버린다. 

 

무서운 이야기지 않은가?

때로 '가까운 자'..

'신앙으로 한 공동체에 있어온 자'.. 

믿는 다는 분들에게 서 

더 깊은 상처가 가차없이 가해지고

더 큰 실망이 여지 없이 밀려오는 경우들을

우리는 지나온 시간 동안 

너무도 자주 보아 왔다. 

 

그 무서운 실제를 

엘리바스를 통해 보고 있다. 

 

그렇다면... .

내게는...

내게는 저러한 면이 없는가다. 

 

 

 '긍휼'이나 '역지사지' .. 

입장 바꿔 생각해봄...보다는

내 기준이 우선이 되어 타인을 차갑게 정죄하고 

그를 통하여 '인도'해 간다는 강박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여지없이 '의분'으로 가장된 '분노'가 올라오는 것... 

그리하여 아픈 자의 상처에 고춧가루 뿌리는 일은 없게 되는지.....

돌아보고 회개해야 겠다. 

더 조심해야한다. 

 

더 하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한다. 

그냥... 잘못했다..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내 내면의 어쩌면 깊이 잠재하고 있을 

저러한 어이없는 '죄'.. 

'자아'의 푸르둥둥함을 

오늘... 

말씀을 레마로 허락하신

버겁지만 확실한 저 죄악들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 내내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타인을 정죄하지 말자 .

어떤 상황이라도 '내' 기준으로 해석하지 말자. 

하나님 안이 아닌 것은 버리자 .

하나님 안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가만히 지켜보자. 

속에서 욱욱하고올라오는 그 어떤 것도

오늘 엘리바스의 어리석음임을 깨닫자.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그 '의분'을 내려 놓자 .

정죄하고 싶은 의욕은 무조건 죄다. 

가르치고 싶을 때 

우선 그를.. 그의 상황을 불쌍하고 가련히 여길 수 있는

자주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이 기뻐하실 성품을 주시라 기도하자.

더 넘어 긍휼을 옷입고 

겸손으로 내 입을닫을 수 있도록 

더 침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감사하다. 

 

 

주님.

구약 말씀,

그중에서도 '공의의 하나님'.. ' 제사'.. 욥기 등은 

참으로 묵상하기에 버겁습니다. 

어떤 땐 도덕책 같이 너무 뚜렷한 이야기들이라서

유치한 생각이 들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제 모습을 

오늘 엘리바스의 입에서 또 발견하게 하십니다. 

 

어쩌면 제 분노의 뇌리에 스치고 지나가는논리들과

그리도 똑같으며

어쩌면 그때 드러나고 싶은 '자아의 존재 확인 욕구'가 

저리도 닮아 있는가 

깜짝 놀라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나름 훈련되었던 차이.. 

저는 아직도 거침없이 ..*&^%$ㅓ.... 그런 차이 밖에 없음을 보지만

인간의 영혼 깊숙이 자리잡은 깊은 분노.. 와 자아의 욕구가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이 안계신다면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무서운 죄..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성령의 철저하신 은혜가 아니시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없었음을 

다시한번 절감합니다. 

 

주여.

감사하나이다. 

주님을 알게 하시고

주님 , 선택해주시고

십자가 보혈, 성령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심이 

진정 그러합니다. 

 

제게는 닮았지만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다시 드러내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리고

예수 보혈로 씻어 주시고

성령의 은혜로 에너지와 위로 삼아 

주님 앞.. 

더욱 정결한.. . 

엘리바스 죄들을 내어 놓고 

새로운 성품, 

긍휼과 사랑으로 더 채울수 있는 개연성을 주심으로 

주님 나라에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접하게 되게 하셨으니.. 

정말 감사하고 감읍 할 따름입니다. 

 

주여.

이 '불같은 사단의 뜨거운 죄'에서 벗어나

평온과 온유의 주님의 나라에 갈 기회를 

또다시 허락하심을 감사하나이다. 

 

타인에 대하여 '긍휼'하게 여길 기회를 주시고

제 안에 스스로 겸허하게 할 버퍼를 주시어

제 삶이 훨 풍성하고 고요하며

결국 초연한 자 되게 하실 것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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