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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의 지친 자들에게 [요7: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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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상의 지친 자들에게 [요7:1-13]

주하인 2022. 1. 23. 10:40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5.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죽이려 함이러라. 

믿지 아니함이러라

 

다 알지만

예수님의 삶은 

녹록치 않다. 

꼭 십자가 뿐 아니라

공생애 전에도 

태어나실 때에도 

모든 것을 다 아실 ,

모든 우주의 영광을 다 누리시는 그 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순간

그 때부터 

모든 십자가의 미리 받으시는 고난을 겪고 계심이다. 

(부자가 가난해지면 자살하는 일이 많음을 

 비단 예로 들지 않더라도.........)

 

 공생애 시작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그분을 해 하려 하였고

형제들도 믿어주지 아니하는 .. 

인생의 십자가를 

벌써 부터 지고 사셨다는 것이다. 

 

 형제들.

마리아께서 

동정녀 잉태로 '예수님'을 낳으신후 

요셉과의 사이에서 '인간적, 육체적 '방법으로 얻어진 ^^;

그 형제들과의 사이에서 

성장과정에서는 얼마나 많은 버거움들이 있었을까?
 형제가 친하고 다정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신성으로 인하여 

어딘가 다른 형을 바라보는 '인간 형제'들의 갈등과

그들을 객관적이고 세상 모든 사람을 공평히 사랑하시려는

어린이 , 형.. 으로서의 '형 예수님'의 입장... 

 

도저히 상상되기 어려운 

갈등들이 

위 구절들을 보고 느껴진다. 

 

 오늘

무엇을 보이시는가?

 

 이 땅의 힘듦.

갈등의 덩어리들.

눈을 어디에 두고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며

의지하고 

의미로 

어디에 우리의 영혼이 향하는 지에 따라

이 삶의 살아야할 

유일한 이유가

오직 '하나님'이 될 수 밖에 없음.. 

그러기에 

지금 현재의 어떠한 어려움들.. .

그게 심지어 '우울'이든

현실적 재정적 , 건강적 환경적 어려움이든

예수님 조차 

그 '인간으로서의 인생'은 버거움이었고

그를 다 버텨 내시고 승리하심이

'하나님 만을 바라봄'에 있음을

오늘 깨닫게 하심이다. 

감사하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기 전에도 

그 모든 삶의 순간 순간이 

십자가 지는 일이었음을

오늘 몇구절을 보아서도 알게 됨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별 

삶에 재미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우한 것 같이 느껴지게 하는

모든 인생들의 다른 모델로

오늘 예수님의 상황을 보 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함에도 

예수께서 아무렇지 않게 

물흐르듯이 

안올라가신다시던 예루살렘에 

올라가심... 

형제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자연스럼이 자연스럽게 느껴짐은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가 이유가 됨을 

너무도 잘아나이다. 

 

부디 바라옵기는

주님을 믿고 살면서도 

세상의 시간들을 

육신의 껍질을 쓰고 살아가는 

이 순간 , 우리네들의 

주님과 비교하지도 못하는 미련함을 불쌍히 여기사

오직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는데 

모든 관심과 영혼의 집중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 처럼요.. .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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