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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서 모든 혼돈을 하나님으로 온전하게 정리하자[왕상4:1-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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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서 모든 혼돈을 하나님으로 온전하게 정리하자[왕상4:1-19]

주하인 2023. 9. 1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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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지혜'를 풍성히 받은 자(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세상적 지혜 ㅜ.ㅜ;), 솔로몬이

'다윗'에 의하여 왕으로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온 이스라엘의 왕'

즉 완전한 왕의 자격이 되었음을 설명함은

그 어떠한 자격의 부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추인,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고는

완전한 자격은 있을 수 없음,

즉... 아무리 스스로 옳고 자랑스럽고 두근거리는 성취를 이루었어도

모든 것을 잠시 뒤로 미루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인정을 받는

그런 마음자세.. 

시작과 끝 모두를 하나님으로 무장된 자세를 갖는 것.. 이 진정 필요함을 말하고자 함이 아닐런가?

 

 오늘 월요일.

시작이다. 

또 한주.. 

나머지 내 여명의 삶동안의 '시작'.

또 하나님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사령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 관장의 두령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니 왕의 벗이요
 약간 혼란 스러운 부분이 몇개 있다. 

주님이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 보이시고자 하는 부분.. 

 

1.

신하들에는 '제사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게 '솔로몬'의 세상에 치중되어 있는 기본 마음이 아닐까..싶다. 

왕권을 너무 강화하는... 

물론 아직 하나님의 영에 신경쓰기에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세상의 치리, 

그를 통하여 그 자신의 상급보단

'이스라엘 백성'.. 영적 이스라엘을 위한 도구의 역할로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허락하신 이유가 없지 않고 

물론, 그 허락되어진 자신의 선택을 통하여

개전의 정. ㅎ.. 회개를 통하여 

주님 앞에 

더 주님이 우선되는 선택을 하는 돌이킴이 있으며

그의 영육혼의 온전한 '성숙'을 통하여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인생드라마가 펼쳐질 것을 

아마도 기대(보려고 하시면 그 끝을 어찌모르실까.. 잠시 선택에 의하여 다변화되는 그 인생 드라마가 재미있어 보류ㅏㅎ시는 거겠지.. 솔로몬의 위태한 시작도 어쩌면 그래서 그냥 잠시 원하는 대로 더 부어주심이 맞으시리라.. )하며

기다리시고 계시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간섭하시면 

초친다고 투덜댈까 두려워...ㅎ

 

 

2.

  제사장으로서 우선불리워지는 이름이

 2절에서 사독의 아들.. 이름이 먼저 나오고나서야

 4절에서 아버지 '사독'의 이름이 거론된다. 

 (사독이 중요인물인데.. 아버지이고... 나중에 이름이 불리우는 불편함.. 말이다.  나이든자로서.. 더... ^^;)

  물론, 새술은 새부대에.. 

새로운 정권의 구성은 전적으로 '솔로몬 왕'의 권한에 있지만

중요시 하는 부분에서 너무 젊은 이들을 우선하는 경향이 보임이다. 

 

 . 받아 들이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세월의 흐름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이치가 그렇다면 (대단한 솔로몬조차 자신의 측근들을 먼저 챙기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당연한거 아니겠는가?.. 새술은 새부대에..도 맞고.. .) 그리 따르는게

개인적 '성숙'에 필요한 품성이고

그러한 세상의 원리에 맞추어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고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아쉬움'편은 아니시라는 거다 .

 세상의 흐름이 그렇다면 그게 맞다 .

 거기에 아무리 자신의 위세가 '다윗'시대에 뛰어난 행공을 했고 

아직도 세상에 '뛰어난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는 거 같아도

'받아 들일 것은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 힘을 행사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측근도 중요하고 젊은 피로 수혈함도 중요하지만

 '역전의 용사들의 경험과 지혜' 

 거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인물로 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우선 그 분들이 우선이 되어 배려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지만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지혜'가 너무 뛰어나

그들의 도움이 필요없어설 일 수도 있다. 

 하여튼 말씀을 보면서 드는

솔로몬의 아쉬움 부분이다. 

 

 

3.

 '아비아달'이라는 이름..에 대한 의구심이다. 

분명코 '요압'의 처형과 더불어 '제사장'으로서의 아비아달은 봉고파직 당했는데

이 아비아달이라는 이름은 성경을 검색해보니

다윗 시절 수도없이 많은 이름이 나오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바

'아도니야'편에 잠시 잘못 선 이유로 그리 된자 맞는데.. 

과연 오늘 '아비아달'이란 이름하고 

'동일한 인물'이었던가...........가 궁금하다. 

 

 그래서 'chat GTP'에게 물어 보았다. 

'엉뚱한 소리'들.. 거짓..들...ㅠ.ㅠ

 하지만...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비아달'이 '아히멜렉'의 아들이라는 구절이 있으며

또 '아히멜렉'이라는 아들이 '아비아달'에게는 있었고 

수없이 많은 동명이인들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음을 

성경에서 살펴 불 수 있던 바

'아비아달'이 4절에서 나옴은 

동명이인으로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 맞는 듯하다 .

 정확히는 chat GPT도 모르겠다 실토했다. ㅎ

 

 그런데 왜 뜬금없이 '사독'과 '아비아달' 이름이

또 동일하게 거론 되었을까?

 

 다윗시절에 쌍두마차 역할을 하는 제사장들이었던 것처럼... .

그러함에도 일절 설명하나 없이 진행한다. 

무슨 뜻이 있으실까?

 동일인인 '아비아달'이었다면 

다시 복직 시켰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아비아달' 봉고파직 하고 나서

동명이인의 '아비아달'을 사독 옆 제사장,

그것도 사독의 아들 제사장을 우선 드러내고는 

그 밑에 거론했을까?

역시.. 혼란 투성이다.

솔로몬의 시작은...

그 혼란투성이의 영적 상태를 보이시고자하는 

하나님의 의도셨을까?

 

 오늘 아침.. 

조금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지금까지.. 

늦잠자고

환우 밀려서 12시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말씀 묵상을 다 완성 못시켰다. ㅠ.ㅠ

 

 

4. 

 나단 선지자는 '노쇠'해서인가

아들들만 잔뜩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

.......

 

 

 

 하여튼 솔로몬의 등장은 

세상적 기준,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의 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독교인의 상징일 이스라엘의 번영을 위한 기틀을 위해

선택되어진 '세상적 지혜'로 충만한 

그러나 아직은 하나님 앞에 '열심히 서려'하지만

영적으로 개운치 않은 상태의 인물이며

그의 '왕'으로서의 시작과 완성은 

오직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함을 

1절 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 역시 '인간관계' 속 

갈등 속에서 조차 모두 존중하고 허용하며 진행되는

'하나님의 역사'

인생광야의 시험과정을 통하여

그 수없이 많은 개개인들의 다른 '손익'을 통하여

역사는 이루어져 가며

그 안에서 '선택'되어지는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간순간 결단과 결심을 어찌하는 가에 따라

추후.. 

우리가 아는 바 처럼 

수없이 많은 다른 결과 (솔로몬의 결국은 영적타락... 아니던가?..사후에 나라의 분열.. ㅠ.ㅠ) 가 빚어질 수 있고

그러기에 그 상황, 이 원죄의 결과로 허락되어진 

인생광야의 세상에서 

그나마 가장 옳은 삶이 되기 위하여서는

단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오늘 말씀,

월요일 시작하는 시점에서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인듯하다. 

 

 

 주님.

지난 주일.. 저녁 일~~찍 잠이 들어

월요일 아침.. 늦게야.. 겨우 눈을 떴습니다 .

참으로 많이 잤습니다 .

그리고는 기억 뚜렷하지 않지만

검은 옷을 입은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알지 못하는 여인이 

꿈 속에서 내내 저를 '위로'.. 

그렇습니다. . 위로 하여서 마음 한구석이 풀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아쉬움이 그득하고 

복잡한 심사로 일어났습니다. 

 

그리 오래 잤음에보 불구하고 

늦잠자서 7시가 갓 넘어서 겨우 일어났습니다. 

몸은 개운한듯한데 눈이 떠지지 않고 

머리가 잠이 덜깨어난 상태에서 

'레마'를 받지 못하고 출근하여

지금 이시간 12시가 다되어까지도 

정신이 이상히도 집중되지 않는 아침을 보내고나서야

겨우 묵상을 완성하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여.

그 '어머니 같은 어두운 분위기'의 여인과 위로자로서의 존재,

솔로몬의 '헷갈리며 맑지 않은 영혼'의 상태와 '하나님 앞에 인정 받는 왕'..

그리고 

제 오전 내내의 상태가 

편안함과 순간순간 불안정함과 

멍함과 개운함이 왔다갔다 하는게 

일맥상통하는 무엇인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바쁜 환자분들과 작은 소수술을 마치고 오며 걷는 동안

잠시 주님을 묵상했습니다. 

아.. 

이 잠시의 틈을 주님을 잊고 사는 잘못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며

멍한 머리를 다잡아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했습니다. 

얼른 말씀 묵상을 다시 잡았습니다. 

이런 멍한 상태때 

습관처럼 동영상이나  머리를 놓을 수 있는 '쇼핑' 앱이나.............

자꾸만 시간을 빼앗아가며 여기 이 나이까지 오게하던

그 오랜 버릇들을 자르고 

담배 끊으려던 허전함처럼 밀려오려는 그 허탈함을 

말씀으로 채우려 하였습니다. 

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지.. 

그 선택을 귀히 보시는 지

또 정신이 맑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위로를 어디에서 받으려 했던지요?
 이 시급한 마지막 시대에

더 .. 

좀더 깊이

좀더 열심히 

좀더 진실히 

주님 만을 바라보아야 겠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시작부터 주님..

끝까지 주님.. 만.. 

주님으로만 살아갈 수 있게 하소서.

 

솔로몬의 저 .. 흐릿하고 모호한 열정을

과감히 제하게하소서.

 

위로처럼

포근함처럼 다가오는 

검은 여인의 치맛폭을 그리워 하지 못하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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