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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지막 기회의 시기다[왕상2:36-4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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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지막 기회의 시기다[왕상2:36-46]

주하인 2023. 9. 8. 06:47

(펌) 시므이의 탈출 ^^;;;;

저 좁은 곳에라도 살게 하신게

전적인 은혜다

사랑의 끝이신 하나님께서

내 시므이의 추악함마져

한번 또

눈감아 주신거다

 

당장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시므이의 남은 죄들을

한번 더 눈감아 살게 하신...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의 

  바야흐로 카운트 되기 시작하는

공의의 심판을 앞두고도

아직도 정신 못차린

이 어리석은 죄들을 

오늘 깊이 묵상해보아야 한다.

 

그래도 참아주시고

그래도 또 인내해주시는 이 시간이

주님의 안타까우신 사랑으로 인함임을 

잊지 말고

분명코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내 회개가 얼마나 귀중한 지

그로 인하여 또하루

숨쉬고 살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말이다. 

 

36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분명코

다윗 왕은 아들 솔로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반드시 죽이라'고만 했는데

왜 이런 번거로운 시간을 주었을까?

지혜로운 아들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유언으로 죽이라고만 했지

반드시 금방죽이라고는 안했음은 맞지만... 왜일까?

 

 왜 ..이런 조건을 그럴 자격이 없을 듯한 '시므이'에게 걸어야만 했을까? 

멋지고 싶은 ,

지혜가 폭죽 끓듯이 끓는 젊은 치기의 왕의 순간적 아이디어였을까?
 
그리고 분명히 '어디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건적이 없는데

42절과 43절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 했다고 한 것을 어겼다고 나온다. 

 무엇인가?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서 붙히는 

어쩌면 후에 변질되는 솔로몬의 특질,

아직은 하나님의 영으로 이글거리는 신앙이고 

뛰어난 지혜로 사뭇 이곳 저곳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프고

'또 그것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기는 하지만

자꾸 자신의 '치기'와 '젊은 자아'가 끼어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보이는...ㅜ.ㅜ

 

 어찌 되었든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신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죄가 아닌 이상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것도 용인하시면서

"그러면서도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말씀하셨듯이 말이다.  

 

 

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그런데 '너는 분명히 알라'는 말은 

잠깐 부정적인 뉘앙스로만 마음이 쏠리어 사뭇 비평하고픈 

주하인의 특질에 

정신을 퍼뜩 들게 하시며 

다시한번 "그 마져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 

그 안에 숨겨진

그 부족한 결핍 속에서도

아직은 장점이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그래서 사랑하시는 주님 백성들, 이스라엘을 부강케 하시는 증거를 보이고자 하는

매개체로서의 '솔로몬' 만한 재질이 없으니

허락하신 이유로 

그 입술을 통하여

'나, 영적 이스라엘'을 깨우치게 하시는 거다 

 

"너, 주하인들은 분명코 알아라"..

그래야지요.

주님.. 말씀하소서.

 

 

 그리고는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던

'왜? 

무엇때문에......란 의문을 들게 하는 결단을 한다. 

즉시 죽여도 

하등의 죄가 아니고 오히려 순종인데... 

다윗의 평생을 가슴에 담아온 부담인 줄 알만한데도

'시므이'를 즉각 죽이지 않고

조건을 걸어 살려둔 것 ........말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혜가 넘치는 '솔로몬'이기에

 

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 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비록 그, 시므이가 생명 보존을 위해서 

즉각 '가택구금'에 호응은 했을지라도 

그의 인간성과 인간 본연의 한계로

언젠가 반드시...........어길 때가 있을거란 것을

이미 깨달아 앎으로 

그리 허락한 거란 추정이다. 

 즉.. 반드시 죽을 시므이를 통하여

무엇인가 보여주고싶은 것.. 말이다.

 

 서두에 추정을 했듯

다 아는 자의 '파워'로 그냥 참아내며 

자신의 예견대로 그 틀에 들어오는

마치 손안에 들어온 '쥐'같은 '시므이'를 지켜보는 

힘가진 자의 잔인한 쾌감을 

하나님의 뜻으로 (분명코 어디에도 여호와 이름을 드러낸 게 없는데 42절 이후에는 그랬다 한다) 포장한 것일 수 있다는 가정.....

 그렇지 않고는 무슨 이유로...그를 즉각 처단하지 않고 남겨두었을까?

 

 두번째 추정으로는

당연하지만 어쩌면 필요없어 축약은 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케 한 후 

반드시 시므이의 인간성 상 자신의 죽음을 향하여 발을 디딜 것을 알기에

그냥 언제 죽여도 되지만

그 기다리는 동안 겪을 인간적 갈등, 구금에 대한 두려움, 방에만 있을 지루함.......등을 통하여

더 깊은 고통,

마치 사형수들이 언제일지 모를 죽음의 날을 대하면서 

초조하고

살아있되 살아있는 자의 소망이 전혀 없이 

할 수 있는 그 육신과 심리의 고통을 풀데가 없는 구금의 상태의 고통을

끝없이 누리게 하는 '벌'을 허락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맞을 지라도

그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 온유에는...조금...그렇다. 

비록 그 시므이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자 일지라도

그게 '하나님이 내게 주시고자 하는 '레마이셨을까?

 

 그렇다면 무엇이라 추정하는게 맞을까?

 

 끝까지 참아주심.

모세의 말을 통하여서 인내하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수차례의 애원을 통하여 '소돔' 안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려 주신 것.

..

그런 개념을 '솔로몬'의 젊은 특질을 통하여 이루게 하신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님의 뜻이라 보는게 

가장 합당할까?
내게 레마로 주시고자 하시는 근거..말이다. 

 

 '분명히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

 

'공의'까지 

인내하고 인내 하고 또 인내 하셔주신다는 것.

 

 비록 내 죄.. 

내 잊어 먹고 있던 '예수님 구원 이후'의 죄.

주님께서 분명코 십자가 구원으로 잊어져 주시고  ^^* 

천국백성의 자격으로 삼아 주셨지만

내 ..하나님을 위한 반드시 고쳐야 하는 이전의 죄들........

천국의 영생의 시간을 위하여

반드시 빼놓고 가야할 '광야의 시간'이 길어지게 하는

깊고 질긴 죄들(마치 다윗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잊어버려 한구석에 밀어 놓았지만 드디어는 마지막에 끄집어 올린 '시므이의 죄'처럼...)...을

한번 더 회개하고 자중하고 돌이킬 만한

그래서 '아브라함'들의 매달림처럼 매달려 기도하고 애원하면

진정한 용서를 받을 

또 한번의 기회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작금의 시간은 어떤가?

분명코 이제 시대의 마지막 현상들이 

바야흐로 주변에서 , 전지구적으로 번연히 일어남에도

또 우리는 '시므이의 고요'처럼

시므이의 독방의 죄처럼

용서 받은 듯............

잊혀져 가며 그대로 사는 것..

특별히 믿는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그 시간이 아니던가?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령하매 그가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과연 , 시므이의 죽음이 

'나라'가 견고해질 ......

어떤 개연성이 있을까?

시므이가 죽어야 나라가 견고할 정도로 

그가 중요한 인물이던가?

하나님의 일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반드시 시므이가 죽어야할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이던가? 

그가?

 

저... 추악한 .. 기회주의자이고

자신의 내면의 폭죽끓듯하는 미움을 견디지 못하고

시대상황을 파악하지도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 하지도 않고

하룻강아지처럼 아둥거리다가

결국 죽음의 지경에 몰렸으면서도

또 여지없이 망각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겨우 하인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치졸한 심성의그가......

왜 이리 중요하게 취급되어 이름이 드러났을까?

 

분명하게.....

정말 분명하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는

그 누구에게도 치우침이 없으시고

반드시 이루어진 다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인간의 크고 작음이 어떤의미도 없을 것이기에

어쩌면 

스스로 자랑할 이유도 잘난체 할 개연성도 하나님 앞에 없으며

반대로 

자신의 가치없음, 부족함 , 비교하여 얻는 좌절등...

이땅의 가치에......하등 구애 받을 이유가 없음을 

보이시기 위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시므이가 예를 들어져 그렇지만

이 어이없는 자도 이렇게 귀중하게 다루신다. 

그에게 마지막까지 다시한번 더 '회개'의 기회,

비록 하나님의 격렬하신 공의의 시작점까지 오게 되는 죄지만

한번 더 , 또 한번 더 참아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여 

또 '죄'로 잊어 버리는

이 망각을 되풀이 하지말라고

이 아침...경고하시는 거 같다. 

 

구원은 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사는 자들..

기회를 끝까지 걷어차는 이 시대의 회개 못하는 믿는 자들.........에 대한

준엄하신 깨닫게 하심이 

시므이의 진실을 통하여 보이시려 하심 같이 느껴져 온다. 

 

감사하다. 

또 돌이킬 기회를 

내게 '분명히' 알게 하심 말이다. 

그게.......너무 감사하다. 

 

 

 그러하십니다. 

주님.

주님의 사랑은 

비록 내가...

비록 우리가 .. 시므이 같은 치졸하고 어이없고 추악한 자일듯한

자괴감과 열등감과 죄책감들이 넘치는 자이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으면

마치 이제 바로 왕이 된 젊은 솔로몬처럼

도저히 바늘하나 들어갈 거 같지 않은 분을 통해서도

다시한번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다는...

그 공의 속의 하나님 사랑...

무엇보다 '회개'의 기회를 다시한번 허락하심입니다.

 

그것을 분명코 보이십니다. 

그리고.........그 모든 것..

내스스로.. 아니면

세상의 거대한 기준... 에 비추어

하등 가치 없을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 뜻'이 지체되고 

나, 우리로 인하여 

시간을 끄시면서 까지도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한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다가서기를 

기대하고 기다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여.

그게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시므이같은 우리 내면의 부족함마져 

그를 통하여 

또다시 기다려주고 딜레이시키시는 

내 하나님이시라니요...

 

그러나...진정 더 감사한 것은

내 그러한 시므이 같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한

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에

지금도 붙들려 있음...

주님의 날개아래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제 길이 반드시 옳지는 않았지만

또 더 옳은 길로 자꾸만 방향을 틀어

결국 승리의 길로 가게 될 거란

선하고 옳은 예상을 말입니다. 

 

주여.

살아계신 하나님.

공의이시지만

사랑의 정화이신 하나님

끝없이 참아 주시지만

속히 돌이키길 기다려 주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들어 찬송하고 찬양합니다.

아멘

 

 

 

 

깨달음)

 

1. 그래도 하나님은 또 참아 주신다

  

2. 지금은 회개하고 돌이킬 시간이다. 

   시므이는 끝난 자라 생각했지만 또, 솔로몬을 통해서 참회의 기회를 얻었다. 

 

3. 지금 시대가 바야흐로 공의의 시간을 목전에 둔 시간이다 .

  그래도 적응하고 그래도 괜찮을 듯 한것은 

  시므이의 방심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 

 

4. 절대 불가할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

 그 어떤 죄도 , 

 그 어떠한 절망도 

 그 어떠한 마지막 예상도 

 주님 안에서는 합당하지 않다. 

 주님 만이 결정하신다. 

 기도를 기다리신다. 

 

5. 지금 시대의 고요는 '시므이의 가택구금시간'이다. 

 더 회개하고 

 더 눈물 흘려야 하고

 더 자중해야 한다. 

 깨어 있으라.

 기독교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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