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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님의 선하심은 계속 된다[왕상3:16-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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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주님의 선하심은 계속 된다[왕상3:16-28]

주하인 2023. 9. 10. 09:26

(펌)

이게 지혜일까

수천년을 넘어 지혜의 정수로 받아져 나오는

솔로몬의 하나님 앞 지혜가 맞는가?

정말?

 

잔인함과 욕심과

모성과 소유욕의 충돌

생명을 앞에둔 이기심

거기에 자비없는 판결의 충돌은 아닌가?

 

진정한 지혜라면

남을 배려하고 

온유하고 

더 깊이 사색하며 고뇌하는 흔적이 

먼저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결핍의 물질계를 살아오며

완전한 그 무엇을 기대함.....

그것이야말로 심한 착각 아닐까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보이시는 것.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지금의 나까지 흘러오게 하신것.....

 

그 모든 것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시며

또 나머지의 허락되어진 

이 지구의 시간동안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선한 이룸으로 인도하실 것이란 거다 

 

참으로 깨달음이 감사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더욱 기도

더욱 말씀

더욱 하나님 임재 안의 삶일 뿐이다.

 

 

 

16 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서 인가?

'창기' , 몸팔아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여인들.

 

 그 여인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대 , 여권(女權)이라고는 생각할 수 조차 없고

이스라엘의 법도로 근접하지도 못했을 여인들이

'그때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영으로 아직은 (^^;) 이글거릴 바로 그 즈음에

'왕에게 와서 ' 그 앞에 섰다.. 는 사실이 놀랍다 .

 솔로몬의 지혜가 바야흐로 세상에 기염을 토하기 시작하는 그 시작에

왜? .. 하필이면 

그럴 수 없을 여인들이 '매개체로 씌였을까?

 

 그리고, 또 드는 의문.. 

창기들이 '아이'를 낳고 

어느 여인이든 당연한 '모성애'가 있음은 맞기에 

모성애의 발휘와 그 안의 갈등과 ........

대상으로서의 '창기'가 옳은 '인물'선택이던가?

 아.. 굳이 뭐 창기는 '모성'이 있고 없고........라는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하여 따지는 것은 아니어도

굳이 '성경'에 올리는 대상으로 

더구나 그 시점의 시작에 

더 훌륭한 .. 감동을 유발할 케이스가 아니고 

굳이 왜.. 창기들, 그 창기들이 번연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더구나 '아기'를 낳고 기른다는 것

산욕기........라는 면에서 

몸팔아 먹고 살 여인들이 '모성'이라는 본연의 문제보다

하루 하루 먹고살 도구인 '성매매'가 

산욕기, 아기기르기위하여 소모되는 '시간'과 '육체의 고통'들을 들면

굳이 '모성'보다 더 실제적인 ,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대상들인데

이렇게 예화의 간증거리가 되게 하였는가.. 하는게 

의구심이란 것이다 .

 

 

22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그리고 또한 당연히 드는 의문 3번째는

저토록 '솔로몬의 재판정'에 나올정도로 

'아기'.. 특히 살아있는 아기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기 전에

'나쁜 어미 창기ㅜ.ㅜ;'의 입장에서는 

'죽은 아기'에 대한 

세상이 떠나갈듯한 울음과 몸부림이 우선이어야 겠지만

그보다는 '산 아이' 에 대한 '소유욕'이 저처럼 

모성을 가리울 정도,

세상에 창기로서의 부끄러움과 세상의 질타를 넘어서

재판정까지 나올 

인간의 본성 중 가장 강한 모성을 넘어서는 

어떤 '밀림'이 있던 말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 경우 '단 한가지'를 예상해 볼 수 있겠다. 

 

 나쁜 여인의 '정신착란' .. .

너무 심한 충격으로 

그 니의 가지고 있던 '창기'로서의 될대로 되라는 삶의 태도를 근거로

'영적 타락'에 더해져

순간 '정신의 혼란'.. 

'사단의 침범'.......으로 인한 혼란........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이 되어진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그리고 마지막 4번째 의구심.

 

 아무리 '지혜'도 좋지만

그리고 '지혜'가 넘치고 넘쳐 몇수앞을 내다보는 선견을 가지고 있기에

절대로 '죽임'을 당할 수 없을 것이라 믿고 있는 '솔로몬'일지라도

'살아있는 아이'를 반으로 쪼개라는 명령 만큼은

너무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그 판결'이 '지혜의 정수'처럼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 오고 있음...들이

이 구절을 지날 때 마다 

마음 한켠을 무겁게 하고 있다 

 

과연 하나님께서 

잔인하신 분이고 

빈 .......논리적 .........ㅠ.ㅠ...틈을 보이시는 분이시던가?

 

 아니지 않던가?

저 시대.......

우리의 가치와 다른 시대.

사람의 죽고 사는 것.......살인........죽음에 대한 개념이 

조금은 다른 비중으로 다가오는 시대.

 그러기에 '솔로몬'도 비정하지만 저러한 판단이 거침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여인'들의 흐르는 정서도 지금과 다르기에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영적'으로 혼탁해진 나쁜 여인(어쩌면 얼마나 심한 충격과 죄책감으로 정신을 잃고 자신을 사단에 빼앗기는 착란의 현상에 있게 되었을까.. 비록 그 바탕에 잔인함은 여전히 느껴지지만 한편으로 불쌍하기도 하다. .. ) 조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위한 매개체로 들어 쓰신다는 거를 생각하면

그래서 수천년을 넘는 동안

어쩌면 잔인하고 잔혹한 예화가 

마치 하나님의 지혜의 정수인양 들추어지게 만들어진 이유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

 

주님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선한 것만 들어서 표면에 내 세우지는 않으셨다 .

성경에는 '딸들'이 '룻' 아버지를.. *ㅕ&ㅛ^%$#...

다말 며느리가 '유다' 시아버지와.......*&^%$#.......

요셉 동생을 구덩이에 집어넣어 죽이려는 형제들.. 

동생 야곱을 죽이려는 '에서'형........등...

인간 말종들의 예화가 거침없이 드러나고

기생 라합과

남편 죽고 '이방 시어미'와 이방으로 돌아와 

'보아스' 친척의 부인이 됨으로 

'예수 그리스도'까지.. 

그래서 지금의 오늘..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정말 하나도 꾸밈없이.......드러내어 보여진다. 

그리고 그 부족한 자, 결핍된 자들.. 

정말 우리의 '도덕적'가치로는 '상종'도 하기 힘든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또 ...........그렇게 쓰신다 .

 

무엇이신가?

왜 갑자가

저 솔로몬의 '시대적 (^^;) 명판결'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 ^^;;'하게 만들어오는 

저 지혜로울 (지혜 자체만을 보면 그렇다. . 잔인한거만 빼면.. ㅠ.ㅠ;) 판결을 보며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무엇을 보기를 기대하시는가?
이 너무도 유명한 구절을 통하여 

다 아는 것 같아 하나도 은혜가 안될 거 같은 내게 

무슨 레마를 주시려는가?

  다시금.. 돌이키시는 것.

상기시키는 것.

지루하고 새롭지 않은 것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역시 또 다른 레마를 건네셔야 

살아계신 하나님 아니시던가?..........

그런데........하는 것은 '사단'의 소리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위의 의문을 통해서 또 내게 건네시는 말씀이 있으시다. 

당연히.........

 

 내 판단.

내 옳고 그름의 기준.

어쩌면 내 '자아'의 눈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님임을 직시하게 하심이다. 

그 어떤 부족함도 '주님'이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내 자아가 형성되고 내 정체성으로 굳혀가는 

그 모든 상황을 '넘어선다'심이시다. 

 

 그렇지 않은가?

위의 의문을 통해

내가 옳고 그르다 판단하는 것은

내 살고 있는 시대의 보편적 가치 기준이고

그 가치는 '수없이 많은 이 세상의 사람'들끼리 부딪치고 얻어지는

갈등과 조율과 그런게 좋을 듯한 

무언의 '기준'이다. 

 

'창기'는 나쁘다.

창기는 부끄러운.. 

창기는... 

 죽임.. 죽게함은 무조건 용서할 수 없는 대죄다.

모정은 어떠해야한다. 

.........등등..................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당연함이 

시대에 따라 경중이 다를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너무 심한 충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신적으로 잠시의 혼돈이 있을 수 있음........이고 

사람의 생명이 현대만큼 중시 되는 시대가 과연 역사에서 몇년되었을까?... 그러기에

솔로몬의 저 판단은 그 시대는 지혜지만.. 

지금 시대에는 잔인하고 있을 수 없는 판단이 맞아야 하는거 아닌가... 등등.... 

정말..........

옳음.. 

그 가치 기준은

절대로 '우리'가 되어서는 안됨을 보게 하심이시다 .

 

그리고 .............

무엇보다 

그러한 부족한 '창기'들이 

거룩한 재판정.. 에 나와 심기를 흔들게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함을 통하여 오히려 '솔로몬의 영광'으로 영영히 기억되게 하는것............

그 모든 것.........

그 어떠한 '세상의 가치 기준'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렇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면 

들어 쓰실 수 있음이고

그러기에 

자꾸만 내 앞을 앞서려 하는 

어이없는 가치 기준.........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

 

그 어떤것도

하나님이 절대로.......라고 하신 가치기준 이외에 

사람을 판단하고 

스스로 좌절하고 흥분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정말.. 힘들다 .

 

난.. 특히 그렇다 .

너무 오랜시간 동안

내 '원가족'의 '심리적 역동'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시간과 

그를 벗어나고자 하는 '내적 싸움'으로 

강한 '나름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함은 

때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습관적으로 먼저 선을 긋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었다 .

 

하지만..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근거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시고 

틀리는 것이 습관으로 인하여 쉬이 바뀌어 지지 않음을 

성령의 은혜 가운데 하나하나 교정하고 바꾸어

이제 '성품'으로 서서히 자리잡게 되어가게 하시고 있다 .

 

내 삶..

주님 부르실 그날을 위하여 

깎고 또 깎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품성으로 교정시켜 아름답게 바꾸어 가는 시간이 맞다 .

 

남은 부족함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직도 버거이 다가오는 내 가치들이 

심지어는 그 마져도 하나님이 쓰시고

당연히 솔로몬을 세우게 하시는 매개체 되게 하신 것처럼

그 어느 것도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없으며

그 어떤 것도

하나님안에서 '선'으로 들어쓰시게 됨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신다. 

정말 감사하다. 

 

 

 

주님.

말씀이 너무 유명하여 더 힘들었습니다 .

그러나 또 다른 깨달음 주십니다 

내.. 알지만 자꾸 되풀이 되는 오래된 진득한 왜곡을 

드러내어 보게하시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 

그마져 들어서 하나님의 선함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들어쓰게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

 

주여.

그렇습니다 .

주변의 모든 버거움들.. 

그마져 주님이 허락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들이 조금은 더 긍휼히 보이는 계기가 됩니다. 

주여

또한 제 인생의 그 어떤 다가오는 

스스로의 버거움 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

굳이 몸부림치고 

자괴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

제가...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인식하는 한.........

주님의 선함은 계속됨을 

마음 깊이 감사함으로 깨닫게 됩니다 

주여 .. 

홀로 영광 받으소서.

 

거룩하고 귀하고 감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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