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옳은 의로움[창20:1-18] 본문

구약 QT

옳은 의로움[창20:1-18]

주하인 2020. 1. 29. 09:34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아. .. 비겁.. .추함... 벌써 두번 째...!!

애굽에서, 아말렉에서.. !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아내를, 애굽왕을, 아말렉 사람들(전부 태가 막혔지 않은가?)에게

해를 끼치게 됨을 불사하는 ..

어쩌면 몰라서 그럴 수 있기는 하기에 (적극적 죄라면 주께 용서 받지 못하겠지만.. )

불쌍하기도 하다.


 한편,

사라는 90세로 임신을 못할 상태임을

주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엎드려 웃은 상태의 나이인데

그 시절의 90이면 지금의 40 중후반 임을 감안해도(이즈음이면 임신을 대개 포기..ㅠ.ㅠ)

그랄 왕에게 잡혀갈 정도로 '매력'이 남아 있음은

참 이해하기 힘든 면이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들의  덜 늙음.. 인가?ㅎ

어쨋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일일이 따져 우리의 상식에 맞추는 것은

불가하기도 어렵기도 하다 .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그리고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경고하신다.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그러자, 그가

4절에서 여인을 범하지 않았음과

여인을 데려옴에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 이야기를 한다.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는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온전한 마음, 깨끗한 손을 이야기 하고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그 때 하나님께서

그의 그러함을 인정하시고는

여인, 사라에게 죄를 짓게 하지 못하게 하신 것 (가까이 못하게 한 것)은

그의 그러함 덕이고

그러함을 통해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하신다.


그렇다

세상에 내 혼자 되는 일은 없다 .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시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이 휘두르시지도 않으신다.

우리의 그러함을 통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게

원리임을 다시한번 나타내 보이심이시다.

 오늘 말씀이

특별히 '레마'로 확 꽂히는 부분이 없었지만

아마도 말씀을 이해하려고 전개하는

지금..

깨달아 지는 부분이다 .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거기에

믿는 의인,

아브라함이

너를 위하여 (그렇게 되기를 위하여 ,어쩌면 .. 범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

기도하여서 그렇게 되었고

그, 아비멜렉은 비록 그게 죄인줄도 알지 모르고 죄를 범하여

죽음에 빠질 위험에 거한 것을 구한 것임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기도는

모든 것을 넘어선다 .

인간의 판단,

아브라함의 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리도 사랑하심은

그가 완전히 옳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기도에는 완전히 옳을 가능성이 많은 자 (^^; , 내가 어찌 그리단정할 까? 추정일 뿐이지.ㅎ)이기에

하나님이 그리도 사랑하심이고

그의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손, 온전한 마음을 가진

왕 보다

더 귀히 여기심이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정말 그리 부족한 인간성을 가진

결핍한 자였을까?

정말, 약하면 다 부족한 것일까?

 어쩌면,

아브라함은 318명의 날랜 가신을 지녔지만

아비멜렉 왕과의 현실적 부딪침의 위험성을 너무도 잘알고 있고

그러기에 그를 피하기 위하여

사라를 잠시 (아.. 이 나이든 여인이 아름답게 보이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 아닐까?

더 젊고 더 싱싱한 여인들이 많은데 왜? .. ^^;) 

아비멜렉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 결정에는

본문에서 나오다시피

'기도'로

아비멜렉이 사라를 범하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할'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이전 애굽시절과는 달리

그 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경험이 있어

더 확실한 '기도'에 대한 확신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은 '비겁'이라기 보다

비겁하게 보임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하나님의 함께 하심..

자신의 기도에 대한 확신

믿음의 결과는 혹 ..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확신처럼 든다.


 그렇다 .

그렇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인생에서 그를 막아서는

어떠한 난점도 없으리라.

내적 갈등,

외부적 혼란 에 대하여

벌써

한걸음 물러서서 관조하여

바라볼 수 있는 '여유' .......

 마치

소돔 쪽에서 '불'이 난 (종말적 현상) 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하나님이 멀리 하게 하시는 자의 관조. .. 말이다

거기에 자신의 의로움

그 의로움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임을 아는 자의

능력... 말이다

그것은

그에게

깨끗한 손, 온전한 마음을

늘 허락하는 상황이 맞을 것이다.


감사하다.



주님.

인생에

아직도 장해물이 많습니다.

제게는.. .

순간.....순간...

어제도 .. 아침에도

원치 않는 생각들이

절 사로잡으려 했습니다

상념.

분............

죄송합니다.

주여.

깨끗한 손과 온전한 마음으로

매사

주님의 허락하신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함에 도 불구하고

아직은 갈길이 많이 남은 듯하여

가슴이 무거워 지려 하였습니다


주님.

그러나, 아브라함님을 통해

아비멜렉의 저 순간을 통해

죄를 묵상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나가야 할 지

방향 설정을 다시하며

내 현재의 잘 잘못에

과도히 매몰되지 않을 적절한 균형을 허락하시는 듯하였습니다.

주여.

교만하거나 나태히지지 않는

회개와 여유의 올바른 모습과

기도.........에 대하여 말입니다.

주여.

주님으로 인하여

이제는 더 깨끗한 사람, 온전한 의인으로 나올 개연성에 대하여

바라보게 됩니다.

나와 내 주변을

더 여유로운 눈으로 바라볼 기회가 생긴 듯하나이다 .

내 주여.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내 주여.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도 그러리라[창21:22-34]  (0) 2020.01.31
갈등에 대처하는 법[창21:1-21]  (0) 2020.01.30
마지막 시대를 대처하는 법[창19:12-23]  (0) 2020.01.27
[창19:1-11]  (0) 2020.01.26
이제 이렇게 살자[창17:1-27]  (0) 2020.01.2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