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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에 대처하는 법[창21:1-21] 본문

구약 QT

갈등에 대처하는 법[창21:1-21]

주하인 2020. 1. 30. 10:14



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갈등의 시작



10.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조선, 궁궐내 여인의 암투를 보는 듯.

드디어 후궁의 멸시를 벗어난

아들 낳은 왕비의 힘,

그 안의 악... 을 보는 것 같다.

당연히 그녀 사라의 가슴조였음과 그로 인한 반발성 '악감'을 보아

한편으로 불쌍하고 이해도 되지만

그녀의 선택은 '잔인'했다.

  


 

11.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그냥 근심도 아니다.

'매우' 근심이다.

인생은 지금이나 수백년전이나

아브라함 들의 수천년 전이나

똑같다.

 이 갈등.

더더구나 하나님의 절절한 임재 가운데 이끌려 가는

'아브라함' 등에게서도 있음은

이 인생의 갈등.

아담의 원죄로 인한 고통,

그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묵상케 하신다.


 아.

갈등.

이 인간 간의 너무도 뜨겁고 아픈 고통.

참.. 싫다.

그러나

그게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된,

정말 따끈 따끈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아브라함 등 조차

겪을 수 밖에 없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면

받아 들여서 들여다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갈등을 대하는 시선'

'갈등을 대처하는 법'...

그에 대하여

이 아침.. 묵상하길 원하심이시다.



12.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아..

아브라함님은

근심이 클 수록 '하나님'께 매달렸고

하나님이 말씀하심을 통하여

그 '갈등'을 해결하였으며

비록 인간적으로 자신의 '자식'과 애첩을 떼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갈등을 깨끗하게 정리하였다.


 아..

어쩌면

내가 겪는 갈등의 한 면에

반드시 떼어내야할 '악한 면', 악한 생각이

마치 너무 오래되어 '소경의 지팡이'처럼

떼어내면 넘어질 것 만 같은 두려움으로

그리고 그 연민 속의 속삭임이

너무 달콤하여 떼어내지 못하지만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잘못된 생각, 상념, 어쩌면 망상.. 이 있을지 모른다.

그것.. 으로 인하여

내 삶은 그토록 어려웠고 아팠으며

한편으로 그로 인하여 내가 지금까지 살아올 '동력'이 되었다고

착각되어지는 생각.. 말이다.

 그 것..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내려 놓아야 할 것 이다.

 '미움' ., 원망... 그로 인한 연민.........

자꾸만 용서해야 할 대상이

어쩌면 그를 내려 놓으면 내 삶이 더 이상 살 방향을 잃을 것 같아

내려 놓지 못하고 부여 잡는

그러한 '생각',. 대상.. 말이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16.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어쩌면

그 반드시 버려야 할 생각, 대상을 내려 놓지 못함이

위의 깨달음 처럼,

상실의 두려움도 있지만

그에 투영되는 '내 자신'을 나도 모르게 상상하며

그 '외로움'과 '무서움'이 무서운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두려워함.

 

그러나, 보라.

하나님께 의지하고 결단을 내려

떠나보내야할 것을 떠나 보내고 나니

그 버리지 못하게 붙들던 모든 상상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내 어떠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하갈의 아들로 인하여 또 한민족이 이루어지고

오늘날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가 이루어져 내려와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처럼

내 , 걱정하는 모든 두려움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알고 내려 놓으라는 이야기다.

기도하였으면..  말이다.


 그리고

하갈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라'에 대한 감정을 들여다 본다 .


 그녀, 사라.

하나님의 저런 절절한 사랑으로 ,약속으로

아들을 얻을 만큼 대단한 존재이지만

그녀의 마음 씀씀이는

'하갈'을

잔인하게 내칠 만큼

무서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그녀를 미워하고

내 의식 속에 나쁜 사람의 꼬리 Tag를 부쳐서

나쁜 사람의 범위에 그,혹은 그 녀를 분류하여

만날 때마다 미움을 키우고

그녀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

제대로 믿지 못한다 생각되는 '기독교인.'........ㅠ.ㅠ;;....을

비슷한 방향으로

백안시(白眼視) 하는

비록 아주 엷어졌다 생각하지만

이 오래된 나쁜 습관에 대하여 ^^;;

오늘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신다.

 그녀,

의인 범주에 선 '사라' 조차도

'아브라함' 조차도

갈등을 마주 해야 했고

그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가 이어져 오는 방향이 되었으며

그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으니.. 말이다 .


그리고 ..

갈등 안에 있는

스스로를

그리 자책할 일은 아니며

기도하고 회개하고

아브라함처럼

잊어 버리고 살아도 될 개연성에 대하여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신다.


 감사하다.

많이 가볍다.

더 가볍다.




 아브라함 님의 창세기 이후의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의 시간 중에도

원죄를 쓰게 된 인간은 어쩔 수 없음을

그들의 갈등, 아브라함님의 단점을 보면서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살아 있게 느끼게 됩니다.


주여.


제가 갈등하는 것..

더 이상 고민할 것은 아님을

살짝 더 깨닫고 있습니다.

그 어리석은 아브라함님도

잔악한 사라도

미련한 하갈도

천둥벌거숭이 하갈 아들도......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

지금껏 이리 이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


주여.

그들과 너무도 닮은 우리,

그 안의 나의 갈등을 마주하여왔던

내 삶의 모습을 다시한번 돌아보며

깨달음을 영혼에 각인되길 간구하며

기도하는 한

절대 절망하거나

더 이상 하나로 묶어 절망하거나 원망하거나 할 일도 아님을

그러함으로

사람에 대하여 긍휼한 마음이 커지고

내 자신에 대하여 더 너그러워지는

자유로움의 시간을 더 크게 할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


 주여.

갈등,

피할 수 없다면 받아 들이게 하시고

받아 들이기 어렵다면 더더욱 기도하게 하시며

그 결과에 대하여 너무 부정적이고 어둡게 보게 하지 않게 되길 원합니다.

내 잘못된 태도에 대하여 회개하고

돌이키고 바른 갈등 대처,

성숙한 인격으로의 한걸음을 더 내딛기를 원하나이다.

 

 주여.

갈등의 상황,

가능하면 피하게 하여 주시되

마주하게 되면

오늘 말씀 기억나게 하소서.

주여.

힘주소서.


모든 것 다 주께 맡기오니

이전에 그려셨듯

또 이기게 하소서.

변하게 하시고

튼튼하게 하소서.

더 기뻐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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