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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믿음[약2:14-26]

주하인 2016. 7. 5. 09:59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 지상주의와

실천과 행함을 우선으로 함.


무엇이 우선일까?

둘중 하나로도 빠지면 온전치 못한데

시작을 행함으로 먼저할까

믿음으로 먼저할까?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믿음으로 먼져 하면 행함이 따라오게 될까?
우리 속에 욕심이 그득한데 유지가 가능할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나..예수님 믿어 예수님 믿어 ..소리낸다고 믿음이 온전히 생길까?
 

 아가들.

난...아가들이 좋다.

 얼마전이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가는데 계단 정면에 유모차에 실려져 링겔을 꼽고 있던 아이가

유모차와 함께 내 눈에 확뜨이는데

아이 엄마가 계단정면에서 대기실 안쪽에 잇던지라 보이진 안았지만

동시에 괴성을 질러가며 달려왔지만 아이는 결국 순간 유모차와 함께  넘어갔고

나도 몇계단 남지 않은 계단을 성큼 뛰어내려갔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불과 몇초 사이에 몇사람이 나와 같이 엄마랑 동시에..ㅎㅎ

다행이도 아기는 유모차에 누워있던터 전혀 다치지는 않았지만

몸도 안좋은데 얼마나 놀랐겟는가?
자지러지게 운다.

엄마는 아직도 놀랐는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어쩔줄 모르는데

내가 아기 얼굴을 양손으로 붙들고

"많이 놀랐어?

 엄마 나쁘지....널 그렇게...."하고 눈을 맞추고

그 마음을 읽어주니

아이 , 말도 못알아 듣는 어린 아가인데

눈에 눈물을 그렁이며 마치 내 말을 알아듣는듯

내 손바단 사이에서 그 작은 얼굴을 끄덕이며

눈은 온통 장화신은 고양이의 그 동공이 다 확대된 슬픈 눈으로 닐 바라본다.

순간...나와 아이는 깊은 교감이 일었고

내 가슴에는 아이가 이쁘고 사랑스럽고 긍휼한 마음이 들었고

아이는 내게 깊은 신뢰로 자신을 알아주는 존재의 눈에서

자신의 안전함을 읽고는 안심하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


난, 루릎의 힘을 주어 다시 퇴근하는 발길을 서둘면서

잠시 가던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 보니

아이는 그때까지 나를 돌아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그 앙증스러운 손으로

걱정하는 엄마는 도외시한체 ㅎㅎ

날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드는 거 아닌가?

아....이 믿음.

이 신뢰.

그 모습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렇다.

아주 특별한 경우,

특별히 아기같은 믿음을 가진 자와의 소통 만안에서만 가능하지만

저 믿음의 관계가 끝까지 유지가 될까?


 행동이 우선이 되어서 믿음이 이끌어질까?

아무리 열정적인 사랑도 뇌하수체에서 옥시토신 분비가 끝나는 1년을 넘어서기가 힘들다.

행동이 우선이 되는 신앙이 과연 유지가 될까?

천주교의 타락.

카톨릭은 행동이 우선이다.

그러니 사회에서 별 거부감이없다.

세상은 사람의 겉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소수가 믿음 지상주의를 앞세우기 때문인 반작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다원주의의 가장 앞서는 집단이 그들이다.

미안하다.

행동이 앞서는 원리는 인간의 본성 앞에서 바리새파, 율법화 되지 않을수 없다.


믿음을 우선시 하고 믿음으로 다 된다는 믿음 지상주의는

그 믿으려는 결심 앞에 믿는 노력이 앞서지 않을수 없다.

그것.

믿는 다지만 믿음의 근본대상이 하나님이 아니고 내가 될 수밖에 없다.

 믿음이나 행동이  모두 내가 앞서면 안된다.

난.. 주님 뒤에 서야 한다.

하나님이 우선이 되셔야 한다.


그러나 그게 어찌 가능한가?

말은쉽지만 믿음 생활에서 어찌 적용할까?

이 일상에서 어찌 그 믿음을 유지해갈까?

위의 설명에서처럼...인간의 힘으로는 어떻든 내가 앞서서

결국 내 행동이 우선이 되는...

그러다보니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 속에서 존재하지 못하는

불신의, 우상 집단이 되어버리기 쉽상이다.

교회 건물 만 커다란 이상한 사교집단, 하나님의 이름을 건......^*()%$#

그렇다면 어찌해야하는가?


 우선 믿어야 한다.

믿음 마져 믿어져야한다.

성령으로 믿어져야 한다.

첫사랑이 있어야 하고

첫사랑이 너무도 감사하고 사랑스러워 ^^;;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기도하고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신게 사실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결국은 천국이고 영생이며

이땅은 그분과 손잡고 가는 과정임이며

그리하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시며

그렇게 유지되게 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신

내 하나님 아버지를 어찌 믿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매일 기도하고 그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믿음의 선택의 당위성이

너무도 확실하지 않던가?


그렇다 ..이게 기본이다.

"믿음이 앞서는 결과로서의 행동의 변화"


그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매일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이 땅,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을 유지할 유일한 방법은

매일 말씀을 드든 것 분이다.

말씀에서 성령의 은헤,

로고스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여 이끌림 받고

결곡 그  은혜로 영혼이 녹아져 내리어

말씀에 있으시니....

어제 레마처럼...예수님을 믿게되니..다른 아무 논리도 필요없는 

말씀대로 살아지게 되는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

 쑥스럽고 정말 싫어서 해보지 않았던 일,

아까워서 주기 싫던 이웃을 향한 구제의 헌금조차도

아무 부담이나 망설임 없이

아니 오히려 기쁨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 일을 하고나면 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실것을 알기에...

그게 내 안에 은혜의 폭을 더욱 넓히고 확장시킬 것을 체험으로 알아

오히려 가슴떨리는기대로 행하게 되는 것...,..

 그게 진정한 믿음으로 행동이 완전해지는 ....

하나님을 앞서지 않는 온전한 믿음의시작이다.


 나...

이 블로그에 10년 넘는 기간동안 수도없이 고백하고  써놓았다.

점차로 크게...뚜렷하게 말이다

 내 삶속에서 변호된것들.

내 삶의 방편들조차 생각지도 못했던재돌 변화되어 온거.

이 더러운 성질을 말씀에서 하신 대로 아주 아주 약간씩이라도 말이다.

 100번에 1',2 번...10번......그러다가 조금씩 더 순종하게 되니

내 인생에 변화가 찭아오고

시선과 마음마져 변화되어버리고

지금 이곳 불신의 병원 에 오게되어

이 자리에 애런 삶의 행태를 꾸리게 까지 된 것은 (에벤에셀 하나님 !)

정말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그러면서도 자연스레이 이루어지는 결과다.

 그 안에서 그토록 걱정했던 내 신앙은 어찌유지할까의 문제도

 너무도 자연스레이 풀리고 이루어지고나니...

내 나중도 하나님 말씀대로 걱정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행복하다.


 나..

삶속에서 내 성질의 특별한 대로 ..

그리 옳게 살지는 못한거것 같다.

그건날 보는 세상의 기준으로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사는 습관 만은 정말 잘 선택한

결심이고 결정이다.

그것...

믿음으로 행동까지 온전하게 되어가는

진정으로 옳은 선택을

내가 해낸  것이다.

말씀 묵상과 로고스 하나님의 매일 만남.

그로 인하여 눈뜨고 바라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가운데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체험하고 확신하게 된것.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앞서는

옳은 믿음된것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믿음으로

내 행동의 변화가

더 빠르게 일어나길 결심하는 것이다.

아직도 나를 붙들려는 사단의 흔적들이

부지불식간에 날 붙들고 놓치 않으려 한다.

그래서 행동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이제 자꾸그렇게 결심이 되어간다.

말씀대로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으니

 더이상 무슨 논리가 필요한가.?

 말씀대로 하자..."라는

나도 모르는 결심...말이다.

그게 논리의 회로를 거쳐서 일어나지 않고

이제 습관화 되길 기대한다.

10년이 넘게 지났으니 말이다.



주여.

말씀을 또 길게 쓰게 됩니다.

주여.

떠오르는 대로 쓰는 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생각보다 훨씬 긴 글도 걸리지 않고 나오게 됩니다.

오늘은 믿음과 행동의 선후 관계에대하여 묵상하게 하십니다.

인간의 머리로 계란과 닭의 선후 문제 에 대한 것 처럼 어찌 이해가 가능하겠습니까?
주여...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매일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덕분에

제게는 큰 고민이 없습니다.

행함을 함도

행함을 못하는 미련한 믿음도...

덜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주님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 바로 살게 됨을 스스로 느낍니다.

제 모습에 아직 시험드는 분들이 주변에 있을 것 저 압니다.

제 특질....

그들의 문제...

인생에서 두루두루 엵여 가는 것...

제가 어찌 할수없는 문제...

이제 덜 고민합니다.


주님이 인도하시고 푸셔서 결국 해결시킬 것을

또 저 믿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려 합니다.

덜 고민하면서

더 크게 변화되어갈 내 운명.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 앞에 서 있어서

내 매일이 점차 행복하고 평화로와져가는 비율이 늘어남을

스스로 알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것이 성령 하나님의 허락하신

샬롬의 원인임을 알게 되어 그렇습니다..

이제 나머지 얼마 남지 않은 여생동안

지금보다 더욱 힘있는 삶이 행동으로 변화되어 나올 줄 믿기에 그렇습니다.

제 안의 평화가

타인과의 온유한 관계로 바뀔 것을 확신하기에 그렇습니다.


옳은 믿음...

믿음의 바로 방향 잡음으로 인한

행동까지 균형잡혀 변화되어 나올 것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주여.

제게 더욱힘을 주시사

조금은 더 빨리 온전한 믿음으로 변화가 이루어져

주님이 제게 원하시는 모습,

온전한 성화로 되게 하소서.

좌로나 우로나 막히지 않는 믿음의 사람,

올바른 행실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안에 저와 저의 화해....

타인과 저와의 관계가

주님과 저와의 관계와 비례하여 더욱 빨리 변화되어 일어나길 원합니다.

내주여....


힘을 주소서.

능력을 주소서.

만군의 여호와하나님.

엘샤다이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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