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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롬7:14-25]

주하인 2014. 5. 14. 10:26

상황이 그리 밝지 못함에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음은

주님으로 인한

소망 때문입니다

 

나 비록

곤고하기가

죽을 만큼 힘든 자 맞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영의 역사로 인해

오호라 외칠 수 있는

 

하나님 생명의 법

그 놀라우신 원리를

깨달아 앎으로 인함입니다

 

주여

 

 

 

 14.05.05 어른날? ㅎ  

대학로 소극장 연극, 시작 직전 ^^*

한참 뒤로 물러나서 찍으니

그제야 아내랑 얼굴크기가 비슷하네..ㅎ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

    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오호라."

잘쓰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친근한 감탄사.

오호라..라는 단어만 떼놓고 보면 무슨 외국어 같지만

그 감탄 사의 의미는

너무 잘 알수 있었지만 흔적이 잡히지 않던

무의식 속의 생각들이 정체가 드러나며

극명하게 Insight로 뇌리에 떠오를 때 외치는 단어...

이때 '손뼉'이라도 한번 치면서 '아.. '소리와 더불어

오호라......하고 외치면 더욱 이해가 될 만한 단어다.

 

 이 구절들.

너무 유명한 구절들이고

인간이 영적인 존재임을 너무도 잘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구절들이다.

 

나.

성질이 급하여

한번 '화'가 올라오면

막기가 어려울 때가 자주 있어왔다. ㅜ.ㅜ;;

내 의식은 '어 이건 아닌 데. .. '하면서도

그 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무의식의 소리들이

계속 몰려오면 마치 쓰나미 때의 물결처럼 나를 사로잡으며

안절 부절 못하는 ..

그러다가 쓰나미의 물결이 몰려가고 나면 남는

참혹한 폐허 같은 내속의 심령은

'죄책감'의 소리들,

자책의 소리들이 가만히 있질 않고

그 공허한 마음들을 휘집어 갈기고 간다.

 

또 어떤 욕망에 사로잡힐 때는 또 어떤가?

 

이거....

비단 내 문제 뿐일런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적 성찰이란 면에서

조금 둔감한 것이 사실이기에

 나처럼 그러함을 조금 더 뚜렷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개인차로 외부로 표현되지 못하거나

스스로 인식을 못하지만

누구나 다 있을 것이 사실일 것이다.

아니라면 그 분은 영혼이 없는 분이거나 ㅠ^^;;;

성화되신 분이거나

성경에 몇번 등장하지 않는

선천적으로 '성인'의 경지에 이른 분일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 '죄' 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문제다.

 

오늘 사도 바울님의 반응을 보라.

이 분처럼 대단한 영적 능력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고백하지 않는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오호라.. 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죄의 물결 속에서 견딜수 없이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인간 사도 바울 자신을 보며

'곤고한 자' ,

고단하고 피곤한 자

결핍 투성이 , 경멸하고만 싶은 자.. .라고 처절히 외치고 있지 않은가?

오죽 했으면 ' 이 사망의 몸'.. 이라고 외치고 있는가?

 

그런데 그는

'건져낸다.'

'내 속'

'함께 거하는 것'

'죄'

....등의 표현을 쓴다.

그것..

무엇인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그 분은 '육신의 장막'이란 표현도 쓴다.

육신을 Tent에 비교하고 그 안에서 거하는 것이 '자기'라 하셨다.

 

우리는 이 땅에 육신을 빌려 입고 나온 존재들이다.

육신의 껍질을 쓴 영적 존재라는 이야기다.

이 육신은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 즉 사단의 유혹에 약한

'사망'의 성질을 가진 것이다 .

그리고 오늘 구절에서 계속 '건져내여질 나, 불쌍한 나, 힘없이 당하는 나'로 표현되는

그 나의 본질은 '영적'인 존재가

나의 본질이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육신은 무시하고 영혼 만 중시하면 되는가?

아니다.

그것.. 니골라당의 이원론적 사고다.

육신의 껍질을 씌워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다 .

이 약하고 부자연 스러운 존재,

디스크가 네 곳이 있고

퇴행성 관절이 있는 허리를 가지고

나이드니 자꾸만 안 아픈데 없는 이 육신,

거기에 자꾸만 드느니 짜증이요,

불러지니 아랫배고

눈은 흘러내려 점차로 뜨기 힘들어져도

아직도 젊은 이성을 향하는 마음은 꺼질 줄 모르고

성공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은 그대로며

태산 만한 걱정과 불안을 초래하는

이 육신..

이 육신의 따르는 부조화한 마음.

그 것이 바로 '사망의 몸'인데

그안에 사는 것을

왜 주님께서 허락하셨단 말인가?

 

산다는 것.

아담의 잘못으로 인하여 들어온 '죄'성을 매개체로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통한 '나'의 영혼을 연단하는 도구로 삼기 위함이시다.

인생의 고난,

격정의 고통은

거기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들어온 우리의 감사함에 따른 의무감'은

더 무게를 더하여

삶의 한걸음 한걸음 옮기기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느껴지게 하고

어깨에 얹혀진 힘듦은 마치 용광로 속에 들어와

불에 달구어지고 데쳐지는 고통과 같을 때가 많음을 허락 받음은,

더구나, 하나님의 그 사랑을 체험한 자로서

위의 고백한

아직도 내 꺽이지 않는 '성급한 성품', 안절부절 못하는 심성 속에

소용돌이 치고 있을 때는

'죽고만 싶을 때'가 많아

그럴 때 누가 곁에 있으면 .

'아................죽을 것만 같다.

 제발 나좀 도와줘...........'

이리 외치고 싶음을 허락 받음은...

그 어려움을 통하여

그 육신의 장애를 매개로 허락받은 어려움을 통하여

영혼의 존재를 깨닫고

그 영혼의 원죄로 상처입은 자리를

육적 유혹을 이겨냄을 통하여

영혼의 성결함을 이루는 과정이

인생임을 깨닫게 하심이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인생인 것이다 .

 

 

 인생 후반전을 돌아 한참을 지나온 시기

이제는 조금은 고요한 눈으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

아...

내 속의 그런 강한 죄성,

그 견디기 힘든 죄의 유혹들은

내속에 나와 다른 '존재'들이 나를 끌어당겨

불가항력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망의 존재가 바로 '나'구나..; 함을 ..

그때 사도 바울님의

'오호라'...............가 깨달아 지며 무릎을 치게 된다.

 

이게 나 뿐이 아니구나.

인간 모두의 숙명이구나........

그렇다면 예수 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이유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그 강력한 인생의 유혹과 불같은 고난들이

그 분의 그 '십자가 제사'로만 끊어질 수 있구나.. 함을 느끼며

우리가 살면서

매일매일을 그 십자가 예수께서 대신 보내신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시면

살 수 없는 존재구나..

천국에 간다는 것은

십자가의 자격으로

성령의 보혜사 도우심을 통하여

이 고난을 헤쳐나감으로

'연단'을 이루어내

정금같이, 순금같이 나오게 되는 것.

그리하여 그리 성장한

내 강하고 더러운 육신의 탈을 벗고

드디어는 '천국' , 내 본향에서 영생을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

 

아.

하나님의 생명의 법.

내 속에 또다른 죄의 존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내 속에서 점차로 물러나게 되어 결국 내 속에서 손을 끊고야 말때

우리는 온전한 태생의 아담 ,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순전한 영혼이 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죽을 것 만 같은

'쓰나 미 후의 폐허' 같은

죄 후의 심령도

오히려 '소망'의 증거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구나..

그게.. 오호라'.. 의 진정한 의미구나.. 라는 것을

수천년 전, 말씀을 하시는 사도 바울님의 그 입을 통하여

아주 공감하며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주님.

오늘..

주님의 생명의 법이 허락하신 상태에서

차분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님.

상황은 점차 어두워져 가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체험하고 깊이 아는 자로서

제 눈은 이전의 패턴과는 다른 차분한 은혜 가운데 있습니다.

아. .

생명의 성령의 법.. 그 안에서 있습니다.

주여.

오늘은 그런 마음으로

내 속의 내가 어쩔 수없는 죄된 존재에 잡혀 있을 때의

그 사망의 몸을 느낄 때를 관조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는 그러함이 점점 줄게 하시어

속히 성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더 빨리 정금이 이루어지게 하시어

그 사망의 몸에서 '내가 아닌 나 같이 가장한 ' 죄를 뽑아 버리게 하소서.

내주님이시여.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자로다.

그 고백이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님은 소망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 이해가 되게하는

주님은 살아계신 내 하나님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

내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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