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 만큼은(막15:16-32) 본문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모멸.
받아 들이기에 따라서 정신적 고문.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이들의 횡포.
지나가는 사람, 구레네 시몬 까지 억지로 십자가에 다는
인간성 파멸.
권세가진 자들의 횡포.
인간의 본성의 근본까지 볼 수 있는 기회
동물과 다름없는
인간의 '원죄적 성품'들.
그러나 당한 시몬은
오히려 '축복'이지만..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보라.
사람을 십자가에 달고
그 옷을 나누는
이 인간보편의 악마적 성품들.
이 원죄적 악함.
그럼에도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런 그들을 인내하시고 참으셨다.
아침에 괜히 나오는데
''금식'을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집 현관문을 닫고 숙소 계단을 내려 오는데 그랬다.
금식..
흉악의 결박을 끊기 위한 수단...으로
이사야서에 나오지 않던가?
오랫동안 잊었던 금식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마자
왜 그럴까 자문해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예수님 고난 주간이다.
나.
그리 절박하게 그런 절기나 풍습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초기에 뜨거울 때는
무엇이든 내가 해내고 싶은 갈급증에 밀려
열렬하게 새벽기도 , 금식.. 하고 했었다.
그러나, 이게 무뎌진 거인지 모르지만
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자유로
결박의 풀어야 할 당위성이 조금씩 줄어서인지
금식에 대한 절절한 필요성은 잊고 있었으며
예수님 십자가의 감사함이나 은혜도
덩달아 상대적으로 잔잔한 인정, 이해.. 로 줄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그런 것이다.
그런데 금식을 생각하자마자
심하게 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커피..
나.
드립커피를 맛들이고 나서
아메리카노나 ..남들이 좋아하는 커피는 입에 맞지 않아서 안먹고
오히려 간식하는 개념으로 일회용 봉지 커피를 마시는 스타일였다.
솔직히 커피 맛보다는 달짝지근한 커피냄새 물을
뭐든지 허겁거리며 먹는 내 탐식의 개념으로 마셔왔다 .
거기에 드립커피는 '문화적 ' 상품으로
그 잔향의 개운함을 즐기기에 그리해왔다 .
그런데 그 일회용커피가 강력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배가 고프지 않은데 심히 허전한 느낌이 몰려오며
금식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런 느낌들은 많은 금식을 원하는 분들에게 다가오는
도전이 아닐까?
그래서 금식 기도하고픈 마음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하는 원인인듯하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그럴까?
생전 한끼 굶는다고 큰 어려움 없고
간식 끊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
그거..
영적 문제가 맞는다 싶다.
깨달음이 있자마자 순간 더 강력한 욕구가 밀려오더니
아.. 정말이구나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밀려 가버렸다.
그래...
예수님 십자가.. 같이 지는 것...
그리 거창할 필요는 없다..란 깨달음이
번뜩하고 인사이트로 다가온다.
그렇다.
"예수님은 금식을 기뻐하시는구나.
금식은 금식의 양이나 기간보다
금식을 하려는 의지 자체가 중요한 것이구나.
금식을 두려워하는 사단의 세력이
그 금식을 의도하는 마음에 두려움과 강력한 육신적 포만감의 상실을 이유로
우리를 겁박하는 거구나.
금식은 사단의 사슬을 끊는 길이고
지금은 사순절이기에
금식을 하면 기쁨이 있겠구나..
그 느낌 자체를 즐겨보자.
십자가 고난이 넘치는 것 같이 주님으로 부터 위로도 넘친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
..
오늘 만큼은
사순절 만큼은 오전 금식 해보기로 했다.
그 때 다가오는 절절한 '식욕'과
그로 인한 허전함을 십자가로 지며
하나님이 그 두려워함의 실체가 한낮 엉터리 임을 깨닫게 하심을 체험해아야 겠다 .
먹어도 먹지 않아도 자유로운,
그래서 허겁거림으로 부터 자유로운,
육신의 끈을 하나 더 끊는 영적 근육의 힘을 길러보아 야 겠다 .
그래서 주님 예수님과 같이 동참하는 십자가 사역을 이루어 보아야 겠다.
주님.
오늘은 또 금요일입니다.
생각해보니 이전에는 며칠 씩 금식도 하며
어려운 수술도 하는 등
열정이 넘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주님,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 같고
그리하면 살것 같은 절박함 탓이었던 거 같습니다.
주여.
그러함이 쌓여 지금의 저,
이제는 덜 흔들리고 내적 고요를 유지하는
그런 지금의 제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러한 금식에의 열정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다시 회복되고 싶은 생각이
이 아침 불현듯 들었습니다.
다행이도 예수님 십자가 지실때
같이 금식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절묘한 이어짐으로 또 말씀처럼 살 기회를
오늘 하루 더 허락하심을 감사드리나이다.
내주여.
늘 그러하셧듯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깨달은 것
제 영혼에 더 깊이 든든히 담기어
이전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으로
금식을 이루어 내고
그 안에 숨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같이 동참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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