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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감사와 찬미(막14:22-31)

주하인 2015. 3. 29. 10:08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감사 기도를 하신다.

잔을 들고 그러신다.

누구나 그러해야 한다.

매사에 감사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뒤의 말씀이 '당신의 흘리시는 피',

그것도 자신의 이익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라 하시며

'감사' 기도를 말씀하신다.

 

 그게 나에겐 가능할까?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약함'과 궁핍과 ...를 기뻐하라고 하셔서

그리하려 노력하고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을 때는

내 속의 것들에 대하여도 가능하면 감사하려 하지만

진정...

예수님 처럼

저 궁극의 두려움,

십자가로 인한 뼈와 살의 찢어지는 아픔과

중동의 뙤약볕에서 피가 빠져나가면서 죽어가는

그 극도의 고통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예견 속에 확연히

내일로 다가오심을 아시는

그 절해의 '불안'에 대하여서

정말

우리,

나 주하인은 '감사' 할 수 있을까?

 

오늘 다시 나를 향해 자문해 본다 .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예수님의 두려운 이야기, 그리 밝지 않은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들' 제자들은 '찬미'하고 떠났다.

 

그것..

제자들이 성장해온 증거일 수도 있으나

아직 그 마음에는 '설마...'라는 전제가 있지는 않앗을까?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보라.

베드로가 아직은 '자신있고 힘이 있게' 말한다.

 

"내가 죽을 지언정.. '

정말인가?

다음날이면 도망가고 말 자들이..

 

이 속에는 무언가 있다.

위의 '설마' 가 동반된 현실 도피의 마음이 있었을 지 모른다.

거기에 '설령' 그리되어도 자신은... 하는 약간의 자신감과

그래도 영적으로 성장된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을 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예수님과 3년의 시간을 함께한

영적 진리에 대한 나름의 확신 같은 것도..

 

 

오늘 내게 무슨 말씀하시려는가?

 

매사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물으신다.

자주 생각해본다.

내가 과연 순교의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저들 베드로들 처럼 '설마 내가'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절박한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자문...

 

난.. 지금은 그럴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눈앞에 돌을 던질 사람들이 내 앞 수 미터 전방에서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인상을 쓰면서

나쁜 언어로 질타할 때도

감수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빛처럼 밝은 얼굴로 순교한

스데반 집사 같은 그 모습은 되어 갈 수 있을까?

그 날을 감하여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난 기대한다.

솔직히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내가 할수 없을 일에 대하여

예겨되는 불안에 대하여

직면하여서 이해할 수 없이 담대함으로 지나온

영적 체험들이 쌓여 있긴하다.

 

 

 어제도 그랬다.

지금 나를 포함하여 두명의 산부인과 의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병원의 인력 구조상 아직 한명이면 충분할 듯한 환경에서

'공공진료'를 이유로 한분 더 충원하면서

주로 내 쪽에 많은 환자가 밀리고

그 분께서는 '산과'를 전공하신 분에다가

나름 개인적 문제인지

조금은 환자 수가 많이 떨어지는게 사실이시다.

 

그런데 매주 화요일 만나는 찾산 직원이

그 분에게 ' 자궁외 임신'으로 입원하면서

조금 문제가 생겼다.

 내가 보기에는 '수술해야할 케이스'임에도

이분께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주사'로만 시행하시고

거의 일주일을 끌어 오시는데

어제부터 내가 당직에 걸리고

올라와야 함에도 그런 것이다.

 아주 아주 조심스러워 ( 의사는 서로의 영역침범에 아주 힘들어 하는 경향들이 있다)

오래 생각한 끝에

오후가까이 되어서야 그 방에 들어가 운을 떼니

반응이 놀랍다.

' 샘.. 자궁외 임신 치료 경험이 있어요? ( 이거.. 의사가 맞냐는 질문이나 똑같다.)

 주사를 쓰면 수치가 (임신 홀몬 )더 올라가는데 난 퇴원시키려 해요.. (듣도 보도 못한 ...^^;;;)

책은 최근 거 보시는 거 맞아요?

논문 찾아보세요..

자궁외 임신 수술은 이제 죄악예요.. 죄악...'

 

한마디로 날 ' 시골 무지렁뱅이 의사, 수술만 할 줄 알지 공부 안하는 의사'..로 취급하는 거 아닌가?

아...

위험할 환자 ( 주일, 응급 수술 가능성, 내 당직, 그 분은 자기 환자지만 수술 안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밥을 먹여서 응급 수술도 제대로 못할 상황...'으로 걱정되는 ')인데

그래서 조심스럽게 들어가

'토의'하려 들어갔다가

심한 멸시를 받고 나왔다.

일단 내가 아는 지식이 너무 그 분의 말과 달라서

'PubMed' 라는 논문 검색사이트에 들어가

내가 아는 지식과 다른 최신 지식이 있는 지 모조리 찾았다.

2015년 까지...

없었다.

 

다시 들어가 물었다.

' 어디에 그런 선생님의 논리가 있는지 가르쳐 주소..' 하니

 

'왜 .. 그렇게 내 일에 관심을...

 왜 내가 당신에게 가르쳐야할 이유가 있느냐' 면서 맹공을 한다.

다시 한번 '주일 당직'과 '수술에 한 대처' 미비를 이유로

조심스럽지만 이야기 시작하는 도중이며

지금 상황은 confirence 같은 의미이라니

'컨퍼런스 할 이유가 없다' 한다.

그래서 그랬다.

그렇다면 낫는 상황이라면 검사수치가 15% 이상 떨어져야 하는데

'샘께선 오히려 올라가는 게 정상이라 했는데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그거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러니 '옛날 책 보아서 그렇다' 한다.

내가 옛날 책본다는 단정은 어디서?

하여튼 걱정이 너무 많이 되었지만

심한 질책을 뒤로 하고

환우 분 진찰 때문에 내 방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곧 그 분께서 '구글에서 찾았다' 면서

자료를 툭 던져 놓고 자기 방으로 간다.

보니.. 어디에도 그 분이 옳다는 근거가 없다.

그래서 다시 방에 가서 이야기를 시도했다.

그제야 자신이 틀렸는지 깨달았는지 얼굴이 헬쓱해져 있었다.

 

나..

내가 처음 '무례' 일 상황을 무릅쓰고 그방에 들어간 이유를

다시한번 상기 시켰다.

' 그 분... 우리 찾산 직원입니다.

일주일 째 입원시켜 놓아서 궁금함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수술하지 않고 주사를 쓰는 것은 나도 동감이다.

님의 질책보다는 훨씬 더 경험이 그쪽으로도 있는게 사실이고..

하지만 수치가 나아지지 않고 오늘 오히려 악화되어 있지 않은가?
어디에도 그게 님의 이야기처럼

나아지기전 일시적 반등이고 퇴원시키면 위험할 수 있다.

내 당직인 주말에 수술 걸리면 위험하기에

조심스럽게 수술의 주체를 상의하려 왔는데...

이토록.....^&*()_@#$%^& ,,, !...'

하니

'그럼 그게 Mal practice (잘못된 치료)라는 말이냐.."라 한다.

그래서 그랬다.

' 그렇다.

 내 생각에는... '했다.

그리고 '  주말 당직이지만 그 분 혹여 수술 하게 되면 (실패해서 수술 할 확률 90%)

샘이 책임지세요.. ' 하고 돌아 나와서

오전 근무시간이 끝나서 집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라오면서

난.. 나름대로 직원이 걱정되어서

조심스레이 치료 방향을 같이 의논하고

미리 자궁외 임신 터져서 수혈하고 수술하기 전에

수술하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을까,

그리고 당직을 서로 잊고 있다가 사고로 이어질 두려움도 있고 해서

상의하러 갔다가

특별한 논리를 들었고 (전혀 다른 질환과 착각한 듯.. 매독환자 주사치료할 때 좋아질 때 명현현상...)

그게 옳지 않음에도 퇴원시키려 하는 무모함과

자기 의견이 옳음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며

내게 심한 무시를 하는 경우를 당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더 참고 기다려야 했던가?

그냥 기다리는 게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관심을 가지는게 옳지 않았던가?
그 분, 카톨릭이면서 불교 법회 다니는 불신자같은 분에게

더 참아야 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는 마음으로

기뻐하라 하시었는데 오히려 내 자아를 드러내기 위하여

직원을 위하는 의분으로 착각하지 않았을까?

난.. 또 사이 좋지 않은 관계를 또 만드는 자이던가?....

수많은 생각이 날 잡으며

기도가 잘 되지 않았다.

......

 

감사하라.

감사기도.

오늘 축도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진정 편안한 감사의 시간이었을까?

예수님은 없는 마음으로 감사하셧을까?

죽을 고통을 앞두고 계신 분이

마지막까지 살과 피에 대하여 가르치시고

'감사'를 할 영적 여유가 있으셨을까?
여유는 어디에서 유래하셨을까?

당연히도 '성령'이시다.

성령으로 익숙해진 삶.

그게 예수님이시다.

매일 기도하고

매일 처절히 기도하는 예수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극도의 곤란과 혼란에도

당신이 하실 일을 하셧다.

감사함으로 하셨다.

 

나.

안되지만 '감사기도 '해야 하는 연습을 하여야 했다.

지금이라도 그래야 한다.

성령께 내 마음을 내려 놓고 그래야 한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그래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더 차분해져 있다.

말씀이 있으시니 덜 속상하다.

그래서 하루종일 오히려 감사할 노력을 하지 않아도

덜 흔들린다.

 

이제 더 바랄 것은

더 진정한 감사와 찬미를

내 마음 속에서 이루어야 한다.

 

설교 중 목사님께서

이사야서 설교를 하시며

억울한 일을 당하면 말을 아끼라..신다.

그렇다.

그래야 한다.

 

 

주님.

예배 중 메시지가 왔습니다.

고향친구 아버님의 소천.

들렀다가 충주로 돌아왔습니다.

오면서 날이 참 쾌청하고 맑았습니다.

내 마음도 그렇듯 맑아지는듯합니다.

주여.

그는 나보다 불쌍한 자 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세상에 이룬 수많은 SCI등재 논문을 빌미로

제게 '무시'하는 소리 한 것...

그의 교만함,

그의 상대적 열등에 의하여 흔들리는

세상의 가치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주님.

성령으로 그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더 그리하소서.

감사함으로 주님께 기도하렵니다.

주여.

제게 아무렇지 않은 마음을 주소서.

미워하기 보다 이해하는 가벼움으로 절 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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