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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움(막14:43-5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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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움(막14:43-52)

주하인 2015. 3. 31. 13:07

날은 흐리고

황사의 공습은 쉬지 않아

봄은 왔되

봄이 왔는지

잊고 살았었습니다

 

버거울 즈음

이곳에 와서

그럼에도 피는

봄 꽃눈을 보며

 

흐릿했던

내 정체를

다시한번

확인했습니다

 

주여

버거움 마져

하나님의 뜻이었고

나를 마주하는

또다른 기회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지혜의 원천이시고

주님은 기쁨의 이유이시며

주님은 행복의 기원이십니다

 

사랑합니다

내 주님이시여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님.

말씀.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하시는 말씀.

 

 

하나님이신 말씀.

 

 하나님이 계시고 ,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성령님이 운행하는 곳에서도

사단의 무리들이 횡행하기도 한다.

 

나.

기도하고 믿는 자들.

당연히도 그래야 겠지만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 곳이라 생각되어지고

나름의 응답이라 생각하는 곳에서

버거운 일을 당할 때 있다.

 그럴때도

과연 하나님이 계시던가..

의혹이 드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아니면

정말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 했고

마음이 정결하여 이만하면 .. 하던 순간에

마음에서 폭악이 쏟아져 나오고

그럴 때 메마르고 차가운 빈정의 소리들이

내 안에서 밀려나와

기도조차 할 힘이 없지는 않던가?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더구나 그 행동한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 예수님을 위한 일, 혹은 '의분'이라 생각되어

그리 행동을 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믿지 않는 자 보다 더욱 거친 행동이었음을 깨닫고는

자괴하지는 않던가?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치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아무 것도 속에 안입고 헐렁한 바지를 주춤주춤 흘러내릴 것 같아

붙들고 있는 그 불안함에 사로잡힐 때는 없던가?

 

그래서 어떡해야 하는가?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하나?

 

 

 그 분, 찾산 직원 S씨를 두고

미묘한 입장에 처한 후

예견되는 응급 상황에 대처 및 향후 의견을 물으러 갔다가

2과장에게 심한 모멸적 이야기를 들은 후

그 이야기가 학술적으로 옳은 지

정말 내가 생각한 것이 옳은지에 대하여

밤새 논문을 검색하고 찾아보았다 .

 결국 둘 모두 ' 옳을수 ' 있지만

상황에 의거하면 그 분의 방법이

'적응증 Indication'이 아님을 알아 냈고

난.. 이 문제가 결국

치료의 옳고 그름이 아니고

금요일 내 당직시 생길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 문제에 대한

상의를 그 분께서 과도한 반응 ( 미리 얘기했지만 민감하기는 하지만 )으로

제자에게도 그러면 안될 날카로운 지적으로 나를 자극하였고

그것은 아마도 그 분의 어떤 내부적 문제,

열등감과 반응적 교만함으로 ( SCI 등재 논문 을 많이 쓴..부교수 출신 )튀어나온

미성숙한 대꾸이었으나

그게 그 분의 반응 만큼

이론적으로나 실제 S환자에 대하여 도움이 되지 않을 수 도 있는

아주 위험한 도박 같은 이야기가 된 꼴이었다 .

 

그래서 그 후 난 더 그 분에게

내 잘못이 아님을 증거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억울함에 대한 해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식이 되었다.

 

 어제인 월요일 출근하고 아침에 조용하게 찾아갔다 .

나름 '화살기도'는 하고 들어갔다.

제발 금요일 같은 속상함은 겪지 않도록..

먼저 ' 미안' 하고 ' 같이 오래 근무하기 위하여' 사과를 하러 왔다니

얼굴이 풀리는 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자 마자

그 분의 역한 반응이 다시 ...

야.. 이건..

나.

급한 성질.

그 분의 잘못함에 대하여

나를 지적한 잘못의 오류에 대하여 조목조목 따졌다.

결국.. 환자 분의 상황이 응급이 아니고

추후 생길 여러 나쁜 결과에 대하여

그것이 옳든 아니든

나에게 정리되지 않은 지식으로 공격한 것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려던 것은

한낮 성질 나쁜 자의 횡포처럼 취급 받고 나오는데 그쳤다.

.....

참 많은 시간을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소요했다.

 

솔직히

전에 근무하던 안양 S 병원,

미션을 표방하는 리더들의 어리석음에 나름의 저항을 하다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

 그러나, 이곳 불신자들의 버거움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마치 뭐를 피하다 뭘 만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어이없음이 힘들었다.

 

그러면서 자꾸만 내 속에 파고들려 하는 자괴감은

아팠던 허리 , 다리 (조금 접찔렸다. ㅜ.ㅜ;;)가 더 아파오려 했고

눈 앞에 aura도 보이는 듯 힘들었다.

 

이럴 때 기도하고

주님앞에 침잠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

이곳 ' 영적 고센' 지방으로 피한 후

자극이 적은 반면

오히려 큰 영적 평안을 얻고 있었다고 기뻐했고

말씀에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는 내가 기뻤는데

말씀과 성령의 보혜 안에서 죽을 때까지

소천할 때까지 거하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을 것 만 같았다.

 내내 힘이 없었다 .

어제 저녁.

그냥 또 ... 기도도 못하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사진 처럼 날이 흐리다.

날과 상관없는 뿌연 먼지가 상공을 가리고 있다 .

'찾산' 가는 버스 속에서까지

마음이 그렇게 좋지 않다.

말씀묵상을 들여다 보았으나

그리 깊이 감동적인 것 없는 듯하다.

 '홑이 불 '헐렁하게 두른

거칠한 헐렁함의 불안 같은

내 얕은 영적 상태가

어찌 그리 답답한가..

 도담삼봉을 거쳐 단양시내로 들어서는

차창에 빗줄기가 부딪쳐 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난.. 완전히 도망갈 수 없다.

아니 난 도망갈 생각도 못한다 .

옛날 , 어린 영적 상태처럼 마구 나를 허틀어 버리고 싶은

욕구는 전혀없다.

그럭 저럭 예수님 뒤를 좇아는 가고 있다 .

 

그게 나다.

지금..

4시 반 조금 넘어 돌아 온 진료실 안에 앉아

의무감 처럼 말씀 묵상을 블로그에 정리하려 앉으니

그게 나 같은 느낌이 들었었구나 싶다.

 

다행이도 찾산 진료 내내 환우가 많이 오신다 .

많이들 좋아하신 다는 보건소 직원의 칭찬이

마음을 조금 풀리게 한다.

아직.. ..난 말씀과

그에 따른 세상에서의 현상의 괴리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는 모양이다.

 

하나님이 그러신다.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강력한 이끎과

성령의 운행을 내가 느끼는 중에도

세상은 무지하게 공격해 들어올 수 있고

그건 때로

막바지에 이른 듯한 제자들의 영적 상황에서도

견딜 수 없는 당혹감을 줄수도 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좇다가

옷 벗고 도망치는 제자 같은

그런 혼란이 올 수도 있다.

당연하다. ... 라는 것.

 

위안.

나를 맞추어 봄에 따른

예수님의 말씀을 통한 위로시다.

그것을 성령께서 느끼게 하시고

하나님이 사랑으로 만져 주신다.

그래서 내 맘이 한결 가볍다.

가벼워 졌다.

두려울 상황이

혼란스러울 상황이

말씀을 붙드니 다시 이해가 되고

다시 서서

기쁨으로 평안해질 수 있다.

 

이제 내가 하여야 할 일이 있다.

벗은 옷.. 발견하여야 한다.

내가 벗은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정신차리고 다시 추스리고

예수님 근처로 가 보아야 한다.

그 분의 십자가를 비록 지금의 나는 질 수는 없겠지만

그 분은 그래도 그 새벽 깊은 곳의 눈으로

날 만지실 것이다.

그 보혈을 느껴야 한다.

그 분의 속죄의 현장을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그 앞에 내모든 생각을 가져가야 한다.

부끄러움,

원망,

속상함,

우월감

미움......모두 그래야 한다.

 

그리고

버거움 마져 인도하시는

오늘의 하나님의 역사를

또 내 영혼이 나이테에 쌓아야 한다.

내 영적 방패를 단단히 해야 한다.

감사하다.

 

 주여

화요일.

또 하루가 마감되어 갑니다.

또 한달이 마감되어 갑니다.

자칫 흔들릴 수 있고

미워할 수 있고

무시할 수 있고

자괴할 수 있던

이 내적 버거움을

주님은 또 말씀으로 이리 잡으시는 군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찾산에서 찍어온 식지 않은 온기의 사진을

주께 올립니다.

저 사진 뒤에 흐릿하게 보이던

내 본분이

주님이 보이신 꽃눈의 생명력으로

뜨겁게 타오르며

이 꺼져가는 환경을 밝히시었습니다.

그래서 버거움을 이기고

그 안에서도 행복이 있음을

마음으로

깨달음으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주여.

 

주님은 모든 이해의 원천입니다.

주님은 모든 버거움의 해결자이시고

주님은 그래서 모든 행복의 기원입니다.

주님은 기쁨이고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주여.

 

놀라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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