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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도피성을 묵상하다[수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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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도피성을 묵상하다[수20:1-9]

주하인 2019. 10. 4. 08:20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도피성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다. 

이 원죄적, 결핍 덩어리 '인간'들이 

언제 , 어디서 , 어떻게 무슨일을 당하고, 하고 , 해치우게 될지 어찌 알랴? ^^;



4.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도피성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장로들에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백. 

살려달라 비는 철저한.. 용기 말이다.


 도피성의 주민들은

여러 조건들이 구비 되어야 한다. 

몰려드는 '살인자'들, 죄인들을 매일 매시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한다. 

그들을 받아들일 (설령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 

포용이 있어야 한다 .

무조거 받아 들이지 않을 '판단력'도 있어야한다. 

그게.. 그들의 선택이 아니고

주어진 여건(도피성 주민이 되는 것도 자신의 판단일까? ) 에서 

그리되어진 것이어도

그게 주님의 뜻이면 받아 들여 

내려놓고 

그 버거운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5.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도피성에 들어가기 위한

절대 조건 중 하나... 

'미워함'이 없는 살인이어야 한다. 

싸이코 패스는 미워함이 없이 살인하는데

그런 병적 살인은 예외고 

정상적이고 '실수'가 동반된 

'미움이 없는 죄' 말이다. 


  

6.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도피성에 들어간 죄인은

실수에 대한 댓가 치고는 길지만

'그 당시의 제사장이 죽거나.. ' 등 오랜 기간의 자숙이 필요하였다. 

 죄인은 미워하지 않되

죄는 미워하여야 한다. 

죄된 행위의 결과는 '보응'을 받아야 한다. 

실수라고

도피성에 들었다고

그냥 

다 

용서 받아 유야 무야 됨은 아니다. 

 예수님.

도피성에 의한 죄 사함에 

기억해야할 부분이다. 



7.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8.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도피성을 위하여

자기의 것을 '구별하여'  내어 놓는 , 

손해를 감수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그 분으로 인한 '사죄'의 은총을 위하여

우리에게는 '십자가'를 같이 지어야할 마음이 있어야 한다. 

결단이 있어야 한다. 



9.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

  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자 만을 위함 만이 아니다.

살인한 자는 징계로 살인하는 게 허용된 시기였단다. 

그러나 그러한 살인에는 또 격한 미움과 파괴를 동반하여 

더 큰 '죄'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됨으로

이 죄악의 끈을 끊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니

도피성은 또한 손해를 본 자들에게도 

유익이 되는 

모두를 '위한' 방법이시다.


 또, 도피성은

기업을 다 나눈 후에 지시하신 결과로 이루어졌다. 


 광야 40년...

가나안 정복.

그리고 나서의 나머지 최종 정리로  도피성.... 



 도피성.

너무도 잘아는 내용.

그래서 더 어렵다. 


 하나님의 놀라운 이치.

그를 위하여 이땅에 내려오신 도피성 '예수님' .

생각하면 감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러한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 십자가, 예수 이름 만 믿으면 모든게 다 용서되어지기 때문에

무엇, 어떠한 일이라도 다 해도 된다는.. 

그래서 방종으로 나가기 쉬운 위험성을 가지고 있음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늘 도피성을 묵상하면서

'미움'을 가진 의도적 살인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수'이름을 부르면 다 용서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엔 '미움'이나 '의도적인 죄'를 깨닫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 들길 간구하며 

십자가 앞에 와 부르짖음을 이야기 하시는 것이 맞다고 하시는 듯하다 .

당연하지만.. 

회개의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오지 않음은

주님 앞에 오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

 오늘 도피성을 묵상하면서 깨달아 짐은

주님 예수님 앞에 다시금 '겸허해 져야 함'이 우선임이다. 

거기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사랑은 

무엇이든 다 용서하시는 한없이 크고 넓은 '포용'이며

그 결과로 우리에게는

철저한 '은혜'로 인해 '살인자'의 죽음으로 부터 벗어나 

새 생명을 얻음이 사실이지만

구함을 받는 비의도적 살인자거나

예수 주변인 (도피성 주민, 구원 받아 주님의 일하게 되는 자... 모두.. )이거나

모두...

일정 부분의 어려움, 

감내해야 할 인내는 반드시 있을 것이란 것이다. 

 

 나.

정말.. 좋았다 .

예수 첫사랑 후..수개월 을 정말 날아 다니듯 둥둥 떠 다녔고

그 후에도 예수님의 말씀 중..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 라는 말씀 구절로

마음이 뻥~뚫리는 듯 가벼운.. .

이전의

인생의 고난, 인생의 무의미, 인생무상.. 뭐 이런 늘 외치고 다니던

불안과 무거움들은 거의 없는 듯... 

주님 안에 있으면 무조건 다 잘 되고 , 좋은 거만 같았었다. 

 하지만 인생은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것'만은 없음은

그 이후.. 내 삶의 굴곡을 경험하며 

다시.. 무게가 눌려오는 듯하여 

당혹스러운게 한두번이 아니며.. 

"아 .. .이럴 것이면 왜 주여 나를 구원하셔서

 십자가 무게까지 더..........."하고 

몸부림 치며 기도하던게 한두번이 아니다. ..ㅠ.ㅠ;;;

그거.. 

광야 40년,

가나안 정복 전쟁.....까지

주 안에서 허락되어지는 '십자가' 임을 깨닫기 까지.. 

괜한 몸부림이 맞은 것이었다. 


이제.... 

지금.. 

어느 정도의 격렬한 영적 전쟁들이 마무리되어가며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오니

그것들.. .

도피성에 피하는 비의도적 죄인,

도피성 주민으로 감당해야할 허락되어진 '고난'이며

그것을 감내함이야 말로

주님 십자가 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과정임을 깨달아지는 바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함'

'우리를 위함'임을 

다시 한번 말씀하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 



도피성이신 예수님.

도피성이란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가벼워지나이다. 

원죄적 인간... 

그 중에서 도 유난히 결점이 많고 상처가 많았던 저.. 

의도적이지 않은 되풀이 되는 죄의 무게로 인해

원하지 않았으나 묶여있던 여러 인생의 버거움으로 인해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것만 같던

어이없는 수렁같은 이 인생의 굴레에서 

절 건져주시고 

내 사소한 잘못들을 용서하고 받아 들여주시고

안아주셔서 감싸 주시던, 

주시는... 내 도피성 예수님.

그 예수님,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주여

오늘은 '도피성'을 다시 묵상하게 하시며

내 오늘,

많은 격렬한 영적 전투와 전쟁을 거쳐오며

이제 정리되어지는 시점의 눈으로 

다시금 도피성을 묵상하게 하심을 깨닫습니다. 

주여.

제게 허락되어진 

도피성 주민의 자격, 의무.. 

그 안에 남은 

주님이 요구하시는 일정부분의 감당하고 받아 들여야 할 것들을

받아 들일 수 있게 도우소서.

잊지 않을 지혜를 주시고

받아 들이는 내려 놓음과 

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감당할 마음을 

주님과 함께 짊어지게 하소서.

내 주여.

기쁨으로 그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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