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뒷모습을 바라보며[수22:1-9] 본문
1.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 그때에'
무엇인가 의미 있지만
특별히 어느 상황을 지칭 하지 않는
성경의 특징적 표현,
그런데,
내게 그 때가 어느 때일까?
3.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오늘까지'
오늘 , 지금, 방금...까지...
난.. 주님의 말씀을 지켜왔던가?
그게 의도적이든 인식하지 못했던 간에라도
지켜왔더라면
4.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던가?
이제...
내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부분은 또 어찌 되는가?
6.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사람들이 다 '안식을 받고
'장막으로 돌아가'고들 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서 있는 '여호수아'
그 마음.
허전할 것인가?
시원할 것인가?
주님이 원하시는 안에서
그의 마음처럼
내 마음은 또 승리한, 늘 평안한.. 그런
흔들리지 않는 든든함 가운데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나는 '허전함'이 들어오려 는가?
갑자기 출근하려고 발걸음을 아파트 정문에 내 딛는 순간,
허전한 마음이 밀려오려 한다 .
습관적이었던, 이제는 좀 잊혀질려던..마음.
주일까지 가족들과 잘 지내고
또 홀로 일주일을 생활해서인가..^^; ㅉ
아니..어쩌면 이 나이되니
관심의 밖에 머물러야 한다는 (내 생각이든,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든.. )
나도 모르는 생각이 맞는 듯하다 .
그래도. . 다행인 것
그러함이 떠오르자 마자
괜한 생각임이 눈치 채여지고
마음을 내려 놓을 준비태세는 갖추어졌다는 것이고
그 안에 흐르는 기본적 흐름 (무엇이 옳든, 주님 안에서 별.. 일.. 떨쳐야 되는 생각의 오류들 ^^;)이
간파되어진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오늘 말씀을 들어가며
우산에 부딪치는 '빗'속을 걸어 출근하다 보니
'여호수아'가 모든 '격정적인 일'을 다 마치고
각 지파들을 므낫세 .. 까지 포함하여 돌려 보내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어진다.
불현듯 , 지난 십 몇년간
이전 병원에 근무할 때 열정적으로 주님의 일을 해내던 때가 생각났다.
첫사랑후 교회에 밤낮없이 기도하러 다니던 일,
아버지 학교 봉사하며 수년을 열심보이던 일,
병원 전인치유의 자리에 '찬양리더' 하던 일..
옮겼던 교회에서 금요 찬양의 자리...
여성병원에 새벽 큐티의 자리......
그리고는 지금.
그런데,
그 열심을 보이던 수년간의 각각의 일들이
내 의지이던
주변의 환경의 변화이던
끊어질 때
이상히도 '시원하고 개운한 ' 마음 보다는
허전하고 허탈할 때가 더 많았다 .
솔직히 내 일과시간 이외의 훨씬 많은 시간을
그렇게나 빼앗기면서
난.. 늘 힘에 부친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련하게도 그렇게 되면서
막상 쉬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되니
그 '허전함'이 참으로 감당키 어려웠었다.
그안에 갈무리된 영적 의미,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다 연단을 위해
내 마음을 허락하셔서 그리 열심을 보였고
또 다른 '점핑' 을 위하여서
단절을 허락하셨었지만
그 단절 때마다. ...
난... 여호수아가 바라보는
그 뒷모습을 보게 되었었다는 것이다.
그때에..
오늘은..
이제 부터는... 이란 단어가
그 모습, 그 허전함에 무엇인가 들이 미는
쿡 도장찍는 느낌의 강함으로
내 가슴에 남음은
그런 허전함을 연상하면서
실은 건강한 새로움을 또 기대해보길 기대하시며
레마를 허락하심인 듯하다.
나..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머리가 허옇고 구부러진 '노인'들이
앞에 나서고 괜한 참견을 하고 말을 많이 하심이
('대한 애국당' ......이란 이름으로 데모.. 이구.. 하지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풍모있지 못한.. ㅠ.ㅠ;;)
죄송하지만.. 진짜로 거부감이 들어왔다 .
아마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아집이고 살아있는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한 내려놓아야 될 문제들을
아무 문제성도 느끼지 못하고
세상에 무게를 더한다는..
어쩌면 조금은 왜곡되어진 반발 (죄송.. 오래된 흔적 , 고쳐야될 생각.. ) 로
그렇게 보아왔을 것이고
그러함은 내 자신에 대하여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자꾸만 스스로 당혹스럽게 느껴졌을 이유도 있다.
그래서 , 그게 조심하고
더 낮아지고 주님 앞에 겸손한 자로
향기 있게 바뀌어야 할 당위성은 앎에도 불구하고
내 부족한 '지력'과 영적 성장은
가끔.........오늘 아침 처럼
갑자기 '허전함'으로 확 다가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부질없이 그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사로잡히면
내 하루는 , 내 매일은 어둡고 눅눅한 느낌으로 사로잡힐 수도 있고...
어쩌면
이리 매일 말씀에 맞추어 들여다 보고 말리는 작업 ( 귀한 영적 working ~!) 을 하니
밝히 보이는 것이 맞지
아니면 , 우울증에 빠져 들 개연성이
난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긴 하다 .
각설하고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그 '이벤트'.. ..인생의 대단한 이벤트...
하나님의 이름으로
태양을 하루 멈추게 하면서 까지
기업을 정리하기까지
그 얼마나 절절하고 열렬하고 보람있는,
살아있는 자로서의 생기 (주님의 은혜 덕이지만.. )안에 살았을까?
그러다가
막상 ...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허전함이 안들었을까?
아니라면............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었을게다.
그게..
그때에고
오늘이고
이제부터......다.
주님 안에서
허전한 허전함은 의미없다.
마구 몰아 또 허겁지겁 생각못하고 지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님 안에서
열렬하고 뜨거운 여름 같은 인생의 과정을 거친후
(영적인 절차탁마, 거친것 정으로 까내고 솎아내는 것 같은.. . )
조금은
한가하고 여유롭고 잔잔한 시간으로 들어선
지금의 나의 모습... 나의 시간들을 읽어주시는 것 같다 .
이제는 거친 것 깎아낸 후 '사포질' 이나 그라인더로 잘 갈아 내듯
조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듯하다.
그 중 하나가
이 허전함,
나이들어 무력함으로 다가올 인생의 짐에 대하여 어쩔 까하는 두려움을
주님 안에서 받아 들이고 내려 놓는 작업.
가는 사람들 잘 보내고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님 뜻 가운데 받아 들이며
어떤 것도 주님 안에서 벗어난 것이 없음을
영혼 깊숙이 받다 들이는 과정...
그 과정은 노화되어 '관심'이 떨어져 죽을 것 같은
그런 '주님 없을 때의 사단의 생각'이 아니고
그러할 때 조차
주님은 날 내려 다 보시고
그러할 때 더 깊이 주님과의 소통을 꾀할 때임을
이제는 알 것 만 같다.
그게...이제는 나의 그때고
그것이 오늘 부터이며
그렇게 이제 부터는
더 깊고 맑고 잔잔한 영성의 시간들을 위하여
받아들이고 내려놓고 감사하여야할 내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
감사하다.
주여.
온전하신 내 주님.
주님의은혜 가운데 오늘 하루 또 시작합니다.
주여.
나이들어가는 자,
어느 정도 인생의 후반기를 넘기는 자에게
매일은 무미하고 건조한듯,
거기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
지루함이 시작되는 하루일 듯 느껴집니다.
하지만. .. 이제는..
오늘 부터는
주님과의 더 깊고 잔잔한 교류를 시작해야 할 때인듯합니다.
세상에는 필요하면 내 그러함을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오지 않으면 가만히 기뻐할 수 있는...
그러다가 부르시는 시간이 오면
두손들고 갈수 잇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도우소서.
나머지 일.. .
세상의 주고 안주심... 다 주님께 맡깁니다.
주여.
특별히 현실의 어려움도 ... 아룁니다.
다 아시지요?
그마져 같이 연계되어 흔들거리려 합니다.
마음 , 현실 .. 다 달래 주소서.
내 주여.
오직 믿고 기댈 ,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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