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은 흉내만이라도[창26:17-35] 본문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또 다른 우물'
' 또 다툼'
' 옮겨서
' 다른 우물' 팠더니
그제야 싸움이 멈추고 번성하다.
우물 파는 능력,
그것 보다 더 뛰어난 '참는 능력'
그것의 모든 것이 온전히 '하나님'으로 부터 왔음을
세상에 알리는 영혼의 품격.
그게 이삭이다.
나.
돌아본다.
우물을 팔 수 있는가?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물을 팔 능력.
있다.
이제는 자부할 수 있다 .
수많은 체험들.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한
삶의 변화.
그 우물파는 능력.
그것을 인정하는 능력.
실은 난.. 지금도 늘 '하나님' 소리다.
어떨 땐 내가 그 소리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 소리만 한다'고 핍박할 까봐
순간 슬쩍 놀랄 때도 있다 .
아직도 세상에 발 붙히고 눈치보는 자의 증거임을 스스로 안다. ^^;;
하지만 금방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내 입의 긍정을 통해서
그 중 몇몇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도 되고
그 중 몇은 어느 순간, 그들의 인생에 변곡점에서 허덕이게 될 때
무의식적으로 내 편한 얼굴에서 나오는
자신감 있는 능력있는 '하나님의 덕'이었음을 기억해내고
자기들 발로라도 '교회'에 나가게 되지 않을까?
난 그것을 기대한다.
이제 나도 모르게 더 더욱 그러하고 싶다.
그런데..
우물
또 우물
또 아무소리 아니하고
타인들을 위하여
참고 옮기는 것..
그 인내를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가만히 '잠시' 묵상을 하며
그 생각이 '번뜩' 든다.
아..
다행이다.
이전에는 , 바로 몇분 전까지 저런 구절은 무조건
내 큐티내지 영성의 대상이 아니었었다. ㅜ.ㅜ;;
정말이다.
난 그만큼 '급한 '불 같은 자고
그것도 오일 발라놓은 마른 장작 같은 자였다.
건드리면 터지는..
하지만 오늘 '정말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면
내 본성을 어긋나서라도
조금은 가능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온다.
그렇다 .
마침.. 날이 온통 가을의 싱그러움으로 되풀이 된다.
아마..
이런 날씨에 그런 생각을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하심 탓이 아닐까?
감사하다.
조금은 성장이다.
그것을 느끼고 이제는 더 인내할 개연성이 생긴다 .
주여.
힘을 주소서.
특별히 인내의 힘을 주소서.
오랫동안 해보지 않던 참음의 힘을 이제는 주소서.
아니..
오늘 하루 만이라도
우물을 파고도 참아내는 자의 참음을 허락하소서.
때가 된 듯하오니..
주여.
오늘 저녁에는 저 일로 인하여 회개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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