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도 난 누린다[창23:1-20] 본문

구약 QT

오늘도 난 누린다[창23:1-20]

주하인 2014. 9. 29. 09:57

비록  주어진 하루 짧고

그리 큰 모습 아니어도

 

오늘도

난 누리련다

 

주님 주신

저 맑고 큰 하늘을 누리고

그분의 허락하신

반짝이는 금빛 햇살을 그러련다

 

내안에

주님의 성령이 운행하셔

내 인생길

하야이 빛나게 하시니

그럴 것이다

 

 

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사라가 드디어 죽었다.

127년간 살던 이 땅을 벗어나

드디어 '주님 곁'으로 갔다 .

 

그녀의 인생은 얼마나 파란 만장 했던가?

그러던 그녀가 행운인 것은

불가능한 신체 나이에

'자손'을 얻었다는 것이고

그러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셨음'을

이 인생에서 체험하고

'누렸기에'

그녀는 그래도 '누린 햇수'라

그 인생을 표현되고 있다 .

 

누린 햇수.

이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나에게 의미심장히 다가온다 .

나..

돌아보면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러나,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참으로도 뚜렷하게 느꼈고

또 누리고 있다.

 

이제는 확실히 고백할 수 있다.

난.. 주님 곁으로 소천해 갈 것이다 .

그리고 지금..

난.. 누리고 있다.

행복하다.

그래서 그리 고백할 수 잇다.

그 행복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어서 그러함을

전적으로 알기에

이제 난.. 누린다 고백할 수 있다.

누리는 인생이다 .

 

 그리고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일이 남아 있을런지는 몰라도

난...

인생을 누리고 가는 자 맞음을

확신하고 있다.

 

누리는 것.

그 본질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 임을

진실로 고백할 수 잇다.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누림의 증상으로

내겐 나와 함께 함을 기뻐해주는 아내가 있음이요.

나의 없음을 같이 슬퍼해줄

가족들이 있음이다.

 

이것이 내게 큰 이유.. .

오랜 노력의 시간들..

주님이 인도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을

내 내재적 모순들이

성령으로 ,

예수님의 보혈로 녹여져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러함은

이 블로그

거의 10여년의 글 속에 많이 녹아 있다.

 

이제.. 그렇다 .

하나님 안에서 같은 생각과 같은 이해로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서로 사랑하는 방법들을

원리 가운데서 깨달아

위안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게 .. 누리는 자들의 기본 조건이 되지 않을까?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네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인생은 '나그네'다.

이 땅의 삶은 영원 속의 티끌 보다 못한 '짧은 시간' 거류하는 시간이요.

내가 가진 모든 것.

내 매장되고 나면 없어지고 말 .. 그런 것들이다.

내게 의미있는 소유물은

주님이 주신 것 뿐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동안 자연스레이 주어진 것들..

지금 난.. .참 자연스럽다.

특히 소유에서 그렇고

인생의 길에 대한 회의(懷疑) 문제에서 그렇다.

 

 그리 욕심내지 않고

그리 비교하지 않아진다.

없어도 자연스럽고

있으면 좋다.

흐르는 바람이 더 상쾌해지고

귓전을 속삭이는 음률이 더 아름다우며

아침 햇빛 받아 영롱이 반짝이는

들풀 들의 생기가 더 가슴을 지민다.

 더 주어지지 않았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그냥.. 그렇다 .

하나님 안에서 자연스러워져서 그렇다.

 

이제

난.. 누린다 .

오늘도 또 누리련다.

 

그게 감사하고

그게 천국같다.

 

 

주여.

클래식 음악이

지금 제 진료실 방안을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아침은

마침

'사라의 죽음'으로 예고 되는 듯

비가 세차게 내리며 조금은 우울할 듯한 시작이었으나

그녀의 고통스러운 삶은

그래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누린 삶'이 되고

그 누림이

가짐의 유무와 상관없이

고통의 있음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가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일상에 '삶과 영성'이 표출된 시간을

누리게 됨으로

삶의 자잔한 고해들은 멀리 떠나고

지금의 이 빗속의 잔잔한 클래식 음악처럼

인생을 음미하게 됨이 사실인 것 처럼 느껴집니다.

 

주여.

엊저녁.

주일 예밸 잘 드리고

아내와 함께 '밤'을 까는

다소곳한 저녁이었음에도

제 속을 참으로  오랫만에 후비는 고통스러운 생각으로

잠시지만 마음이 그랬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주여.

그 비교를 통하여

잠시 예수님의 손을 논 게으른 시간들과

다시 말씀 앞에 선 내 상태 사이에서

'누림의 뜻'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듯했습니다.

 

아침 일찍 소 수술이 잇어서 올라간 수술방에서

제가 즐겨 쓰는 ' 샬롬'이란 단어에 대하여 물어보는

불신자 간호사에게

인생에서 '평강, 샬롬'이 주는 의미를 체험해가는 자의

삶에 대하여 다시한번 조잔조잔 풀어주고 왔습니다.

주여.

제 인생 ..

샬롬 안에서

누리는 시간들이 맞습니다.

제 누린 햇수가

특별히 예수님 만나고 난 이후의 모든 시간으로 기억되길 원합니다.

그 시간들이

제 대대손손까지 넘치길 원합니다.

주여.

강하게 붙드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하심을 믿음[창24:10-27]   (0) 2014.10.01
잘 늙어감[창24:1-9]   (0) 2014.09.30
어째도[창21:22-34]   (0) 2014.09.27
말씀하신 대로[창21:1-21]   (0) 2014.09.26
그렇지만 부족하지 않은 나[창20:1-18]   (0) 2014.09.2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