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예정된 고난[슥3:1-10] 본문
2.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이 상황.
하나님 앉아 계신 앞에
천사가 있고
그 좌우로 '더러운 옷' 입은 '여호수아'님과 '사단'이 서있다.
그러시며 주님께서 '사단'에게 책망하신다.
그 내용이신 즉슨,
그 사랑스러운 여호수아, 그 대단한 여호수아가
'불에 그슬린 나무' 같음.. 이시다.
그러면서 여호수아께 말씀하시길
' 네 죄악이 제거되어 버렸으니
이제는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마..' 시는 것이다.
무슨 일이신가?
일단은 '사단'은 여호수아를 불에 태울 만큼 달달 복는
나쁜 역할을 한 자인게 틀림없이 맞고
그것을 주께 혼나고 잇음이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처럼' 고생한 흔적으로
주앞에 서서 주님께 위로 받고 위안 받는 형국이며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 전하고 옷갈아 입히는 모습.
가만히 보면
재판정에 서 있는 원고 사단과 피고 '여호수아'.
실무를 행하는 '천사'
판결 내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재판정.
거기에서 여호수아의 고생을 '불에 그을린 나무' 로 묘사하심이시고
그토록 달달 볶던 '사단'이란 이야기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단이 어떤 존재인가?
지금.
현재
이 땅... 내내 하나님과 대적하여 동등함을 주장하려 햇으나
실제는 어떤가...
욥기의 구절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그는 어떤 목적에 의하여 당분간 하나님께 용인받아
마구 잽이 , 이리저리 천방지축의 행사를 행하던
어리석은 존재라는 이야기고 죄덩어리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어떤 목적과 어떤 시간 동안은 어디까지인가?
여호수아,.. 그 분이 어떠하신 분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뛰어난 믿음과 행동력을 가진 자 아닌가?
그가 .. 그 시간 ..
그의 인생의 시간..
그렇다.. 인생의 시간동안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하며
죽은 후 이제 '주님 심판대 ' 앞에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
그의 불에 그슬린 모습은
'인생.'.. 이 연단의 광야를 걸어가는 동안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이의 '불 같은' 고난과 갈증.. 그 뜨거움.. 을 경험하는 거를 의미함이다.
아..
눈물이 나려한다.
참.. 어렵고 힘들다.
내 어찌 노력하고 애써도
타고난 금수저의 물질과 부유를 가졌어도
인생의 어려움이 왜 없으랴?
늙어가는 육신의 버거움에 가해지는 '금수저'의 부유는
더 누리고 싶어하는 '그 욕심'에 반비례하여 더욱 더 커지니
누구라도 '불에 타인 어려움'.. 그 어려움이 없을까?
단...
그 그을린 육신 .. 이
영생의 길목이신 주님 앞..
그 백보좌 심판대 앞에 가서
위안이 되고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전제로 사는 삶이 되어야 하고
당연히도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받아야 하며
그 후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단의 전쟁터를 걸어야
넘어지지 않는 옷을 입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오늘.. 저 여호수아에 대한
위로와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하고
영생을 누리게 된다.
지금 ..
그렇다면 ..
내게 ..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당연히도 QT의 목적이니..
'불에 그을린 옷' 입게 되는 것이 당연함을
내게 다시한 번 깨우치심이시다.
그 어려움.. 녹녹치 않을 것을 주님이 아시고 계심이다.
그러하니... 흔들릴 일이 '나 ' 주하인에게는 없다는 것이고..
도저히.. 내 혼자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은 이 고난..
'사단'의 영역에 속해서 주어지는 것이니 얼마나 내가 어렵겠는가.. 하고
주님이 공감해주심이며..
그 머져도
주님이 다 운행하시고 운용하시는 '묘수'에 속해 있어...
아무리 지금의 내 앞이 어둡고 두렵고 암담해도
그 마져 주님이 다 사단을 통해 허락되어진 부분이니
크게 흔들릴 일이 아님을 말씀하시며
결국... 그 위세 당당한 내 앞의 일들조차도
주께서 임하시면
별 일 아니고
결국 아름다운 승리의 시간이 내게 부여 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게.. 꼭 죽음이후의 시간만에 국한 된 것이 아님은
사람마다 다른
주님의 우리 하나하나에 대한 개인적 하나님의 역사로 다가오시기 때문이다.
힘이 난다.
감사하다.
맑게 보인다.
주여.
귀하신 내 주님.
잘 알지만
또 잊어 버리고
의혹으로 점철 되려던 제게
주님은 '불에 그을린 막대 '같은 나를
위로하고자 하심을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위로자 하나님께 영광올리고
그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조정하시고 다 아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주여.
힘 내게 .. 성령으로 또 붙드시옵소서.
간절히도 빕니다.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나[슥5:1-11] (0) | 2017.12.06 |
---|---|
사모하는 자의 일생과 일상[슥4:1-14] (0) | 2017.12.05 |
그마져 날 위하심이시다[슥1:7-21] (0) | 2017.12.02 |
온전한 돌아옴[슥1:1-6] (0) | 2017.12.01 |
여전히 그러시다[시99:1-9] (0) | 2017.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