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예수님 앞의 잠잠함[욥13:1-19] 본문
오늘도 내리는 비를 바라 볼 수 있었고
빗방울 땅과 부딪혀 내는 파열음도 들을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내 가슴은 잔잔한 여유로움으로 채워졌습니다
가만히 귀를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그 스피커 옆에 꽂혀 있던 녹색의 행운목을 바라보며
다양한 생각이 기쁨으로 모여듦을 느끼며 행복해졌습니다
예전에도 난 햇살 속에서 밝음을 바라보았었고
귀를 스치며 주변을 흔드는 살가운 바람소리도 들었었지만
그때에도 난 그리 감사하지 모르고 외로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제 잠잠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가만히 내 속의 여러 상념들을 그 앞에 내려 놓기 시작한 후에야
난 점점 평안을 회복했고 흐르는 자유에 대하여 감사하기 시작했지요
그랬습니다
진정한 지혜 완전한 사랑 올바른 행복의 방향을 알게되고
내 궁극의 향하여 갈 방향과 내 영원의 행운을 깨닫게 된 겁니다
주님 앞에 모든 것 가지고 와 기다리기 시작한 후에야 말입니다
주님 만이 내 영원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나도 눈이 있어 볼것은 다 본다 .
또, 난 귀도 있어 들을 것은 다 듣는다.
그러나, 깨닫는 문제에서는 다르다 .
같이 보고 같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깨달아도 내 환경, 내 살아온 배경, 내 현재의 머리 속 상황, .. 에 따라
다른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 .
욥이 눈이 다 보았다. .. 귀가 다 들었다.. 한다.
나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들을 것 다 듣고 보고 다 보았지만
너희들과는 다른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그 다른 깨달음.
그것을 삶 속에서 누가 옳은 지 누가 틀린지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난..단 것 좋아하는데
아내와 아들은 싫어하고
난 매운 것 좋아하는 데 그들은 다르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 내 본 것이 단 것과 매운 음식이면
난 '맛있는 음식'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지만
그들은 맛없는 음식.. 을 하나님이..과연.. 할 수있다 .
그런데..
그 자신의 듣고 본 것 만 가지고
천편일률 적으로 타인을 판단하려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옳은 기준'을 삼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게 깨달은 자일까?
그런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자신하는 자의 미련만큼 무서운 일이 어디잇을까?
3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그래서 욥은 말을 접는다 .
'전능자 ' 하나님께만 말을 하려하고 변론하려 한다고 한다 .
그렇다 .
그게 정답이다 .
어디 인간 존재 자체가 하나님 그 전능자에 비교할 가치가 있던가?
그런데..
눈에 보이는 '내 수준'의 말 통하는 무식한 동류가 더 가깝지 않던가?
하나님.. .
뵈려면 집중하여 기도하고
설령 깨달았다 해도 '자신'이 없지 않은가?
신비와 실제 사이에서 중심 잡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렇기에 욥의 고난에 들어가 있는 자들은
우선 주위를 먼저 돌아보고
그들의 판단을 허겁대며 기대하려는 것 아니던가?
그럼에도 전능자에게만 말씀하고 하나님과 만 변론하려는 노력은
노력 자체 만으로도
너무 귀한 영성이다 .
아니. .. .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세상,
이 물질의 세상에 우리를 남겨 놓고
하나님을 바라도록 '스케쥴' 해놓고
당신의 사랑하시는 모든 우리들을 시험하심은
그것 자체,
즉,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만을 바라고 하나님 만을 변론하려는 '습관'
그 귀한 영혼의 성품을 기대하면서 허락하시는 것 아니시던가?
이 인생의 모든 환란과 고통과
이해 버거운 이 유한한 생명의 유지 자체가
다 그러함이시기도하다 .
그 분과의 교통,
그 분 앞에서의 삶
그 분과 대화하며 가는 삶...
그 삶의 신비를 깨달아 가길 기도하며
아픈 가슴 부여 잡으시고
하나님은 영의 세계에서
우릴 기대하고 기다리시며
가장 적은 비율의 모습 만을 우리에게 나타내보이시며
세미한 흔적만 보이시는 것이시다 .
5 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그러하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허덕 거리면 눈 돌리는 것은 그리 권할 만한 것이 아님은
서론에서 이야기 하였다 .
어떤 상황에서도 '진정한 깨달음'의 옳은 길이신
예수, 그 분 만을 바라는 것이다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십자가 앞에.. ' 라 나온다 .
그렇다 .
하나님은 십자가를 내 눈 앞에 놓으셨다 .
예수그리스도 , 그 생명의 구원자
그 전능자 예수님을 눈 앞에 보이심으로
우리 방향을 잡도록 하시고
그 앞에서 머리 조아리고
들은 것 본것을 내려 놓고 있으면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옳게 바꾸신다 .
말씀으로 그리하시기도
선한 환상으로도
번쩍하는 '인사이트'로 그리하시기도 한다.
그리할 때 내 영혼에
폭 넓고 잔잔하며 꺼짐이 없을 듯한 기쁨이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퍼지며
머리가 번쩍하는 지혜가 나오기도 한다 .
그것.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 다.. 라고 나온다 .
최소한 부족한 주하인에게느
침묵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의 아룀이
지혜의 근본임을 말씀하신다 .
주님.
그렇습니다.
제게는 그러셧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주님 앞에 가만히 가서 앉으면
하나님은 '번뜩'하는 깨달음으로 제게 동기를 부여하시고
그것 집중하도록 성령의 선한 관심을 초래하시고
하나하나 서두르지 않고 시행하면
몇 년 후 돌아보면
내 관점이 완전히 바뀌어 있음을 수도 없이 경험하도록 하셧습니다.
의술도 그러셨고
그 의술로 펼쳐진 놀라운 결과들도
논문도..
사진도..
묵상 시도.. .
찬양의 인도도..
살아가는 현금적.. 부분도..
심지어는 자식들과의 관계회복에도..
하나하나 방법론 까지도 .. 주님이 인도하심의 그 방법의 무궁하심은
어찌 나 같이 강퍅하고 미련한 자에까지도
이렇듯 지혜로우신 방법으로 그러셨던 가 감동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돌아보았습니다.
다음달 임상 과장 회의에서
저를 인정하신 분께서
5분 스피치를 요구하셧습니다 .
주여.
주님이 드러나는 말을 하기로 결심했고
과정 중에서도 잠잠히 주님 앞에 앉으니
지혜를 주셔서 어느새 준비하고 있습니다 .
모든 것
주님 앞에 잠잠히 앉으려는 습관을 들이시고
그를 통하여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의 결과를 제게 보이심이고
그를 세상에 알리심입니다.
부디 간구할 것은
발전할 때 뿐이 아니고
욥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감동이 동일히, 더 크게 유지되게 하소서.
오직 주님..
뵐때까지
영원까지
주님 만이 내 모든 근본의 이유이심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구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껍질 속의 야수[욥15:1-16] (0) | 2014.07.26 |
---|---|
모든 것 주의 손에[욥13:20-14:22] (0) | 2014.07.25 |
의로움으로 자유하다[욥12:1-25] (0) | 2014.07.23 |
내 소발의 愚 [욥11:1-20] (0) | 2014.07.22 |
하나님께만 [욥기10:1-22] (0) | 2014.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