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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말씀하소서(히 2:1-9 ) 본문

신약 QT

예수님 말씀하소서(히 2:1-9 )

주하인 2010. 12. 8. 09:50

제 2 장 ( Chapter 2, Hebrews )

주여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 모든 들은 것'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영혼의 정결함을 원합니다.

말씀을 하나도 빠드리지 않고 '모두' 들을 수 있길 원합니다.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이전 보다는 더욱 달라지길 원합니다.

간절해진 제가 되길 원합니다.

삼가할 수 있는 절제와 인내를 원합니다.

 

그것이

'혹'시 세상의 시류에 '흘러 떠내려가'

마치 예수님의 그 나를 위한 십자가 사랑이 헛될까 '염려 함입니다' .

 그러나 그게 쉽지 만은 않기에

말씀으로 이리 말씀하시는 지 압니다.

세상의 시류가 잡아 끄는 힘이 얼마나 강한 가는

젊음의 유혹이 다 사라져가는 제 나이의 사람도

아직도 '시각적'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듦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주님.

부디 예수님 십자가의

그 큰 구원의 표적,

그 표현할 수 없이 크고 넓은 사랑의  극치를 등한히 여기지 않게 하소서.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성령의 그 도우심의 증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히브리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원리를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는

귀한 말씀이 적힌 곳.

 말씀이 하나님의 살아 움직이심이고 

성령의 감동의 증거이고

하나님 자체이심을 알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매일 들여다 보면서도

어느새 한참의 시간을 살다 보면

메마른 심성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어찌 이리도 세상은 강한지

세상에 살다보면 '성경'을 들여다보고 '믿음'을 가지고 ' 기도'를 하는 일이

어느새 먼 딴 나라 이야기 같기도,

어느때는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스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

몇 번 표현 했지만

' 겨우 '설화'나 '전설'같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목숨 걸고 시간 소모할............'이란...

참으로 죄송한 생각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세상의 권세자 들의 장난이 아닌가 싶어

얼른 돌이키곤한다.

 이 큰 구원.. 십자가의 그 놀라운 사랑으로

온 우주의 에너지인 하나님의 능력을 내 영혼에

성령으로 통하여 매일매일 받을 자격이 있었음에도

힘을 내지 못함은 저런 어리석은 세상의 혼미함에 속음이 아니던가?

 

 

 작년 12월에도 환우들이 밀리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자잔치 않은 문제들로 인하여 상당한 가슴 앓이를 했었다.

그것이 무슨 뜻일까 고민하고 회개했던 기억이 있어 올해도 조심하고 주의 했지만

내 잘못이 아닌 몇 가지 일로 마음이 불편했다.

환우의 문제..

특별한 질환...

비록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휴가 중 마음이 쓰임이 사실이긴 했다.

 

 어제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

환우 보호자 분 한분이 오셔서 무례한 행동을 하고 가셨다.

그 환우 분은 산부인과에 하복통이 심해서 내원하셔서 진찰한 바 뱃속에 피가 고인 상태로

확인이 되었고 그 상태에 비하여 너무 심한 통증으로

환우분과 보호자 분께 진찰 상황을 다 보여 주고 설명한 후 수술 승락서를 받은 후

'진단적 개복술'- 말그대로 배에 피가 고인 이유와 통증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한

진단을 목적으로 개복 수술 하는 경우로 복강경으로 하기에 상처가 적다 -을 하러 들어갔던 환우이다.

 수술 중 장으로 의심되는 부위에 심한 달라 붙음과 고름 주머니가 있어서

외과에 수술을 의뢰하고 나왔던 환자로

'방선균'이란 아주 특별한 병에 의하여 그리된 것이고

잘 나아서 퇴원한 케이스인데 .. .

그 때부터 환자 보호자 분들의 묘한 행태가 시작이 되었다.

 수술을 인계하고 수술방을  나온 다음 부터 이상한...

그리고 외과 간호사들에게 회진 갈 때마다 취조하는 듯한 물음을 계속 물었다하여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분이시다.

 

 이럴 때 의사는 당혹스럽다.

의료과실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 이 환우는 오히려 진단이 늦어져 수개월 고생할 가능성을

당겨준 ...  감사해야할 상황임에도... -  의심하고 결과가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함부로 의사에게 언행을 높이는 것.

 사회적으로 매스컴에서 소수의 의사 - 그들도 인간이고, 인간의 그룹에서 확실한 비윤리가 없다고 는 못하지만 무조건 그 소수로 의사를 비윤리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다.- 들 때문에

의사들을 의심하게 만들어 두는 것은

당하는 우리 같은 자들에게 '불쾌한 '일이기도 하지만

실은 '믿지 못하는 ' 환자들의 병은 더 고생한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어찌 되었던 간에 환우는 '외과'에서 '개복수술'로 수술을 마쳤고

잘 나아 퇴원하였다.

 환우 분들의 입장에서는

내 지극한 설명 - 실제로 설명을 참으로 정성들여서 한다 .  난..- 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복강경으로 끝날일을 '배를 개복'하게 된 것은 받아 들이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외과에서도 충분히 설명하였고

병 자체가 그러지 않을 수 없는 병임이 결과로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병원에 와서 폭언과 위협을 하고 갔다.

더구나 들어오기 전에 '녹음'까지 준비하고 왔다고 하고

앞으로 편치 않을 거라 위협하고 소리치고 갔으니

그 '파괴적인 도덕의 무너짐'이 너무 개탄 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 분의 흥분의 원인은 분석하면 두가지였다.

' 왜 미리 발견하지 못하고 배를 여는가?'

' 보험회사에서 산부인과 질병이 아니라서 돈을 못주겠다.'는 것이다.

 햐.

내 오류도 아니고

불구가 된 사건도 아니고

사망은 더구나 아니고

의료과실로 법에 송치한 사실도 없음에도 저럼이 너무 어이가 없다.

 머리가 복잡하고 너무 속이 상하여 퇴근하지도 못하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일인가 들여다 보려 온 동료의사의 방문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불현듯 기도할 때임을 깨달았다.

고백을 많이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앉아 '삭이거나' 다른 오락거리에 푹 머리를 담근 후 - 술은 전혀 못하니.. ^^;;;-  한참 후 마음이 가라앉아야 하나님 앞에 겨우 아무 일도 없이 나오는 게 내 행태였다 .

이것은 어쩌면 '좋은 모습 ' 만을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내 속의 왜곡된 생각 탓인지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이것은 '예수님'은 또다른 부담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이 과연 부담인가?

아니라면 왜 나는 주님 앞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가?

무엇이 잘못된 것은 아니던가? ....

앎에도 해결하지 못함이 나에게는 오래된 문제였었던 거가 맞다.

 

 이 쉬운 상황을 깨닫는데는 오래 걸렸다.

이전에는 저 갈등 자체가 믿음을 깊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였었다.

예수님을 받들어야 하는 분으로 만...

그 분을 내 인생의 동행하시는 가까운 분으로 인식하지 못함이 아니던가?

 

어제 그 일은 시험대였다.

정말 진짜 필요한 순간에 예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난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십자가를 묵상하며 기다렸다.

내 혼란이 몇가지로 깨달아져 왔다

 

 하나는, 화가 남이었다.

그의 무례함이었다.

말씀을 생각하니 '다윗의 대처'가 생각났다.

그래서 '주님.. 내 대신 혼내주세요..' 했다.

조금 마음이 가라 앉는 듯하다.

 

 둘째로, 창피함이었다.

'내 나이에 내 잘못은 아니지만 의사가 멱살까지 잡힐 정도로.. 니 얼마나 남들이 우습게 ..' 가 내 속을 스치는

놀리는 소리 같은 소리였다.

'진짜인가요, 주님?' 했다.

답은 들려올 정도로 맑은 영적 상태가 아니었기에 당연히도 없었지만

그것은 아닐 듯한 차분함이 날 사로 잡으려 함이 느껴졌다.

'성령이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로 ' 걱정'이다.

 현실적으로 늘 눈치가 보일 나이임이 나이드는 자의 두려움이다.

서비스 쪽이 더 치중해야 경쟁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요사이 병원계이다.

그것을 알기에 저들의 포악함은 더 극을 달리는 것이지만

어쨋든 무조건 옳다고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긴 하다.

'그것 어쩌지요?'

역시 답은 없으시지만 마음은 가라앉는다.

고했으니 주님 알아서 하실 것이란 생각이 날 사로잡는다.

 

  넷째로 '부담'이다.

예수님 믿어가며 처음에는 위에 고백한 대로 '부담' 그 자체였다.

옥상 옥.

늘 걱정 많은 나에게 하나의 짐을 더 얹은 듯하다 하는 게

예수님의 '하지마라'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 것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아버지 어머니의 그 소리에 하나 더 얹혀진 듯한..

부담의 정체는 이런 것이다.

' 그를 긍휼로 보아야 하는데 긍휼은 커녕 화가 난다.

 불쌍히 여길 수 있는가?'

아.

그게 옳음은 확실히 안다.

말씀을 준행할 때 천국 백성으로서의 영혼의 정결함이 조금더 가까워짐도 안다.

그러나 안되었다.

그래서 부담이었었지만 '말씀'을 적용했다.

'영광의 광채'

'하나님의 본채'

' 능력의 말씀'이 어제의 묵상의 포인트다.

그냥 말씀에 대입했다.

아주 아주 약간이지만 마음이 확 풀리며 그의 얼굴이 '인상' 쓴 그 안에

그들이 의심하고 몸부림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경제적 환경내지 가정 사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조금은..........불쌍히 느껴지려 한다.

 

 다섯 째, '회개' 부분이다.

솔직히 내가 잘못없을 때 ,나는 너무 당당하다.

그들이 보았을 때 감정적 상처가 생겨서 더 강하게 나오는 지도 몰랐다.

회개했다.

 '주님 용서하소서.'

 

 많이 성장했음을 스스로 느끼며 '아멘'하고 눈을 뜨고는

퇴근 준비를 하며 많은 생각이 왔다 간다.

'수영'을 하여야 겠는데

마음이 아직은 무겁다.

솔직히 '화'는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다시 터져나올 것 같이 불안하다.

그래서 '기도원'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을 기뻐하시는가?

기도원에 가서 추운 기도굴 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하나하나 구분시켜 깨닫게 해주신 부분을

말씀에 대입하여 내려 놓았다.

소리내어 기도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평강을 주리라'는 이사야 57장의 구절이 며칠전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하나하나 소리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찬감자 중간'의 형식으로.. !

뻥 뚫린다.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많은 중얼거리는 기도를 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

 ....................

'주님 .. 감사합니다' 했다.

 말씀에서 '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곤란한 것 - 나로 바꾸어 생각해도 맞다 - 감사하라.' 하지 않았던가?

그랬더니 '연약한 ' 내가 '강한'내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내내 집에서 아무 티도 내지 않았다.

벌써 난..

이전의 감정에 휘둘리는 폭군 아버지의 흔적을 '가면' - ㅎㅎ.. 하나님의 말씀'으로 '..씌워 버릴

만큼  성장했다.

난 내가 자랑스럽다.

말씀에 맞추어 변해가는 내가 자랑스럽다.

더구나 그게 내 게으름에 대하여 어제까지 만 해도 당혹스러워 하던

나였기에 그 동안 말씀 앞에 쌓여진 내 변화의 노력이

응답받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더욱 자랑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는 카레를 끓여서 식탁 내 옆자리에 서서

말씀 묵상구절을 들여다 보는 내 입에 퍼 넣어 준다.

마침...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하고 말씀은 시작 되고 있었다.

그래.. 어제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내가 어찌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려 노력할 기회나 있었던가?

더욱 간절히 삼가하여 함부로 사람들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옆자리에서 식사하던 큰 아들이

눈이 책에 가 있으며 입은 아내의 숟갈로 행하는 것을 보고

나랑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면 퉁퉁 붓는 눈을 겨우 뜨며

얼른 '화장지' 하나를 꺼내 들어 내 목에 둘러주며 '앞치마' 한다.

모두 웃었다.

 난 .. 아기다.

그래.. 영적인 순수한 아기가 되련다.

내 속에 드는 생각이다.

 

참 감사하다.

이제는 '모든 들은 것을 ' 조금씩이나마 삼가할 줄 아는 내가 되고

더욱 간절한 마음이 드는 내가 되고

말씀을 떠내려 보내지 않으려 고민하는 것이

부담이 아닌 평강의 감사를 알기에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짓임을

스스로 깨달아가는 내가 되어간다.

그것을 알아감이 대견스럽다.

 

 예수님 말씀을 알아가는

이 아침이 사랑스럽다.

 

 

적용

1. 말씀을 더욱 더 집중하리라.

 말씀 세장 읽는다.

 늘 말씀을 기억하고 외우려 노력한다.

 말씀은 힘이다.

 내 영혼의 에너지다.

 나의 중심이다.

 

2. 1절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외운다.

 

3. 환우들에게 더욱 친절히 하겠다.

 눈을 깔고 목소리를 낮추겠다.

 내 의도치 않은 위압감 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4. 기도하는 하루가 되겠다.

 

5. 감사한다.

 예수님이 계셨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

 모든 나의 상황은 '선'이다.

 그것을 앎이 자랑스럽다.

 사랑스럽다.

 

6. 성령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하루를 기대한다.

 

7. 큰 구원과 십자가를 묵상하자.

 

기도

 주님.

모든 들은 말씀이라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늘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들은 말씀으로 나를 삼가할 수 있는 '절제'의 능력을 주소서.

그 절제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임을 알게 하소서.

그래서 모든 것 앞서가지 않게 하시되

지루함으로 지치지 않게 하시오소서.

주님의 평강으로 내 영혼을 열정으로 채우소서.

주님 사랑으로 제 가슴이 뿌듯하게 하소서.

주님.

나의 모든 결점을 사랑하게 하소서.

내 연약함을 받아 들이게 하시고

내 곤란을 이해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하게 하소서.

그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상황이시고

주님을 더욱 가까이 갈 기회가 됨이 그러하고

그로 인하여 주님의 평강을 맛볼 수 있음을 알게 되기에 그러게 하소서.

모두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더욱 간절히 소원할 것은 그들을 긍휼히 여길 마음을 허락하시고

내 잘못을 즉시 회개하는 자 되게 하소서.

성령으로 도우소서.

저에게 은사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은총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주님 십자가 예수의 그 보혈의 구원을 감사함으로 잊지 않게 하소서

죽도록 기쁨으로 간직하게 하소서.

 제 아내와  제 자식들,

주님 안에서 제 식구로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앞으로 성령으로 충만하여 흔들리지 않는 가족 되게 하시되

깊은 긍휼의 성령 충만한 자들 되게 하시고

인생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 되게 하소서.

바라옵기는 믿는 우리 모두 그리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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