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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대화를 원하신다( 눅2:40-5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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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대화를 원하신다( 눅2:40-52 )

주하인 2008. 1. 9. 12:04

제 2 장 ( Chapter 2, Luke )

성령이

조기 저 연붉은 꽃씨 처럼

내 위에 떠 계시지 않을까?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예수님은 철저히 세상의 원리를 따랐다.

세상의 성장을 존중해서

적은 육체로 과도한 사명을 하지 않았다.

성경 내내

그 분은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기적을 자제하셨다.

단지 사람을 위해 치유를 할때

주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만 나타내셨다.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조차

양처럼 순종으로

죽어가셨다.

 

 그 분은 약해짐으로

철저히 주님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나시도록 하신 것이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만

성부 하나님의 영광이 머리 위에 계시기에

늘 그 분을 인식하며

살아오셨다.

 그렇다면 

어제의 시므온의 위에  성령이 있고

오늘 또 다시

예수님의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위에 있다는 말이 어떤 말인가?

 위의 사진 속 민들레 꽃씨 처럼

보이지 않게 우리의 머리 위에 계신 것인가?

구름 처럼 늘 머리 위에 계신 것인가?

양자 역학에서도 증명하였다시피

하나님의 영은 사물에도

어디에도

안에도 밖에도 계시는 데

굳이

머리 위에  계신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그를 늘 지켜 보시고

아빠가 아이의 머리 위에 서 있는 것 처럼

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싶다.

늘 내 머리 위에서

날 지켜보고 계실 때의

그 든든함이란.......

 

또한

머리 위에 계시다는 것은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여..

제 머리도 주장하세요.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예수님도

최대한 세상의 원리를 따르셨다.

튀기를 좋아하는 주하인도

세상에 점차로 적응하기 시작한다.

ㅎㅎ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아들을 두고 간다.

그러면서도 알지 못한다.

이 무슨 일인가?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성녀 마리아 엄마와

성인급 요셉 아빠가

아들을 두고 가면서도 하룻동안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결점이 있다.

 온전한 성화는

주님 곁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사람 들 중에서 그제야 찾는 것은

일행이 많았고

동류의 아이들이 많고

그들을 챙기는 보모가 있어서는 아니었던가?

마치,

'나홀로 집에'의 맥컬리 컬킨 같이

버림 받고도 모를 수 밖에 없는

벅적지근한 분위기에서

놓칠 수 밖에 없긴 하다.

 하지만

그들이 누군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대리모친 부친이 아닌가?

그들이 그 분을 잊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만일 그 분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우주에 물어야 한다.

 

 그런 것이다.

주하인도

이곳에 드나드는 참으로 참실한 모든 분들도

세상의 곳곳에서

주님의 기쁨을 감격으로 사모하는 모든 자들도

자칫하면

세상의 원리에

적당히 혼합되어

주님을 모시고 가는 줄 알지만

주님을 잊고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게 비단 인생에 한번 만 그럴까?

매일 매시에는

몇차례나 주님을 잊을까?

 조금은 덜하지만

아직도

엉터리 같은 사람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니, 내 문제긴 하다 -을 보면

속에서 확~ 열불이 나는 것이

주님을 믿는 자로서

아직도

주님의 그 낮아짐의 모본을 잊는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매시간 매분 ,

사람들 사이에서 찾지 말고

늘 내 곁에 주님을 맞아 들여야 한다 .

마치

아기이셨지만

주님의 영광을 늘 머리 위에 모시고 다녔던

예수님을 본받아서..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사흘 만에 찾았다.

그 동안

그 식구들의 놀라움은 얼마나 대단했었을 것인가?

( 특별히 안양의 두 소녀- 이예진, 우예슬-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되돌아 보고 안타까움에 찾으려 했으니 다행이다.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잊고 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거나

알아도 적당히 모르는체 하고

편한대로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나

그럴 때가 나에게도 없지 않아 있다.

이것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 일이던가?

주님을 다시금 찾아야 한다.

원칙 부터 회복하고

나도 모르게

내 기준으로 바뀌고

세상과의 타협으로 변질되어

주님이 안계신

모양새 교인은 아닌가 회개하고 돌아볼 일이다.

늘....

 

 12 살의 놀라운 소년 .

소년 예수님

그 분이 회당에서 선생들이랑 대화를 하신다.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신다'

 주님은

우리들 부모처럼 늘 강요하시며 지시하시기만 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예수님

그 분은

우리의 의견을

우리의 호소를

우리의 눈물을

듣기도 하시고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들에 대하여

묻기도 하신다.

그리하여

우리의 원하는 바 보다 훨씬 크고 놀랍게 응답을 하신다.

 

문제는

부르짖기만 하는

우리 기도의 태도의 잘못이 문제다.

그분은 늘 우리와 함께 대화하기를 원하신다.

주님께 여쭙고

주님께 답듣고

주님의 말씀으로 여며가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주님의 기쁨으로

영적 에너지의 탱크가 채워지길 원한다.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님을 놓친 것은

우리 자신의 잘못이지

주님의 사랑 부족함이 아니시다.

 

 우리 뜻대로 하다가

우리의 미련함으로 일을 저지르다가

돌아서서 기도하고

안 이루어지면

원망하는게 엉터리 같은 우리다.

 작년 말에 묵상하던

이스라엘 11지파의 베냐민 말살 작전 실패가 그렇다.

우리도 늘 그럴 개연성이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주님이 늘 우리의 위에 계심을 사모해야한다.

지혜가 있어야 하고

주님이 늘 내 위에 계시는 든든함이 있어야

어리석은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교회에 좀더 충실하여야 겠다.

그러나 그분의 성전은

물리적 성전 뿐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신다.

우리 영혼의 지성소에 

그 분이 좌정하시도록

늘 마음 속에 모셔야 한다.

말씀으로

기도로

집중으로

관상으로

삶에서의 준행으로..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신년 벽두

목자들의 간증 사건에 이어

마리아의 마음에 둔다는 기록이

두 번째 나온다.

 놀라운 은혜로

임마누엘 예수님을 담고다니던 처녀가

무엇이 모자라

자꾸만

마음에 담을 노력을 해야만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 보이는

어리숙한 초보 부모의 모습과

자꾸만 마음에 담는 노력을 보아

믿음에 있어서

주님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매일같이 매 순간 해야함을

넌지시 지시하고 계시는 것이다.

 십자가 예수님의 구원은

우리가 천국시민의 자격증일 뿐

운전하기 위해

매일연습하듯

늘 주님을 잊지 않을 노력을 주님께 바쳐 드려야 한다.

그것이

주님이 세상을 만드신 원리에 맞추어 살아가는

현명한 길이다.

아니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자기 집에 가서야

알게된 후

땅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고

어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늘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늘 여쭙고

늘 대답해 드려야 한다.

 

적용

1. 여호와의 영광이 내 위에 임하심이라..라는 찬양이 내 것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주님

제 위에서 지켜 주소서.

 

2. 진심으로 주님을 위해 살고 있는 지 반성한다.

 사람 하나를 만날 때 마다

 환자 한 분을 뵐 때마다

 주님으로 보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예수님이 그랬듯이 최선을 다하여 책무를 다한다.

 

3. 성경 여섯장 읽겠다.

 

4. 주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던 지 돌아본다.

 

 

 

 

기도

 

주님.

오늘은

주님 아기 예수님의 성장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보이는

모친 마리아와 부친 요셉의

그러려니 하는 매너리즘도 보고 있습니다.

주님 예수님의

응답하시고

함께하시는 모습도 보고 있습니다.

습관적 신앙이 되지 않게 하소서.

특별히 내일 있을 전인치유 및 아침 큐티 찬양 인도에

주님이 이끄신 곡을 선곡하게 도우소서.

30/30/1를 기도 제목으로 두었사오니

30명이상의 환우 참여와

30명의 주님을 기뻐하는 내부 직원 참여와

1명이상의 기적이 있게 하소서.

주님 뜻이 아니시며 마소서.

주님

이제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자꾸만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에 있사오니

주여 새롭게 하소서.

늘 기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늘 있음을 있지 않게 하소서.

주님 만 보게 하소서.

기도 제목을 올렸지만

그 마져도 주님 뜻대로 하소서.

이제

오늘도 주님을 만나려

일정시간 기도할 때

주님이여

제 얘기를 들어주시고

저에게 물어주소서.

제가 뭘 원하는 지

제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제가 ...

인지 말씀해주소서.

아버지처럼

살아계신 주님

당신의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제 속에

제 위에

늘 좌정하셔서

절 이끄심을 제가 알게 하소서.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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