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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누구일 때( 눅 3:1-17 ) 본문

신약 QT

누구는 누구일 때( 눅 3:1-17 )

주하인 2008. 1. 10. 10:05

제 3 장 ( Chapter 3, Luke )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깊은 산중 빈들에

마련된

놀라운 주님의 손길...

 

 

 
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누구는 누구

누구는 또 누구

누구는 또

다른 누구는 또 다른 누구....

사람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 누구에게 임하지 않으시고

오직

빈들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신다는 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말씀이 살아서

인생에 역동하는 것을

난 많은 감동으로 체험을 했다.

그 약속.

그 약속이 살아서 내 인생을 움직일 때

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

이전에 짊어졌던 모든 것을

내려놓을 마음의 여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양어깨에 짊어 졌던

모든 무게가 없어짐을 뜻한다.

아..

이건 일부

그분 말씀의 효용성.. ㅎㅎ..에 대한

내 아주 적은 체험의 일부일 뿐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대단하다.

 그 대단하신 말씀이

요한에게 임했을 때

요한은 얼마나 대단하게

기뻣을 지  상상이 간다.

 그런데

이 대단한 말씀의 임하심이

인간의 번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가장 낮고

가장 더러운 환경에 있는

요한에게 임하신다.

 

  물질이나 세상적인 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가난하면 모두 주님의 말씀이 임한다는

역의 가정은

또다른 오류를 불러 일으키기 쉽상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또다른 바리새파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우리

현대의 축복받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이란 말씀을 곁에 두고 있지만

누구나 다 말씀을 듣던가?

아니다.

믿는 자는 많되

말씀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주님의 말씀을 잘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3.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회개를 해야 한다 .

무엇을 회개 해야 하는가?

주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지만

말씀을 경히 여기는 마음을 회개 해야 한다.

오랫동안의 세속의 삶에서

수많은 상처와

맘대로 살아왔던 이전의 풍습이

주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거듭나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어제까지 보여지는

마리아의 '마음에 각오하는 모습' 만 보아도

우리 삶의 변키 어려움은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렇기에

주님의 말씀에 준행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은

늘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회개시켜 주심을 인도 받아야 한다.

 

 

 
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주님 말씀이면

따르려 노력하여야 한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를 하여야 한다.

 

 

13.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한다.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혹이

남들에 비교하여

적은 벌이라 할지라도
그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15.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하지만

이 모든 결심은

혼자 이루려 하면

작심삼일

그 엉터리 같던

수없는 기억들을

또 한번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자신없음에 빠질 수 밖에 없고

믿음은 너무 어렵다고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점차로 강력한 절제주의로 빠질 위험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된다.

회개도

인도도

용기도

......

성령과 불의 세례로 된다.

주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처럼 쉬운 길을 위해

그처럼 어려운 길을

손수 택하셨고

부활을 몸소 완성하심으로

불가능한

천국의 길을

완성하신 것이다.

 

 말씀을 듣고

성령이 충만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평강의 삶을 유지하다가

주님 나라 가기 위해

우리는

낮아짐을 기뻐할 필요가 있다.

낮아짐은

물질적

경제적인 낮아짐 뿐 아니다.

 겸손을 선택하는 것이다.

비교하여 그리되면

주님을 생각함으로 달가워하는 것이다.

그게 낮아짐이다.

그때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의 온 영혼을

불붙듯이 뜨겁게

감동의 삶으로 몰아가실 것이다.

 

 

 

적용

 

1. 전인치유에 최선을 다한다.

 벌써 생각만해도 속이 울렁거리려 한다.

언제 부터인지

남 앞에 나서는 것이 정말 어렵다 .

찬양을 기뻐하고 은혜에 취하여 나가지만

나가기까지

그 시간이 참 어렵다.

낮아짐의 원리로

주님 앞에 서는 느낌으로

말씀이 빈들에 임하듯

나에게 임하실 것을 상상하며

전인치유 무대에 서겠다.

 

2. 성경 여섯장 읽겠다.

 

3. 주님 앞에 선다.

 처음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한다.

 

4. 빈 들에 있지 않는 자들을 부러워 하지 않겠다.

 난 나다.

 난 빈들에 있음을 기뻐하겠다.

 

5. 겸손하게 하소서 .

주여

 

 

 

기도

주님

주님 말씀이 제게

깊게 다가오길 원합니다.

주님 뜻에 따라

행실도 변하고

온 영혼이 다

주님께 맞추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아직은 절 막고 있는

자아의 껍질이 하나하나 벗겨지길 소원합니다.

청백하게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용기와

그보다 더 주님의 뜻을 따를 때오는

성령의 놀라운 임재가

절 그리하게 하길 원합니다.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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