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역설의 주님을 믿음(왕하 1:1-12 ) 본문
제 1 장 ( Chapter 1, 2 Kings )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저희더러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정말 아하시야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일까?
그래서 그 많은 하나님의 증거를 듣고 보았을 텐데도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서 저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이전의 어리석은 이스라엘 왕들 처럼 똑같이 '다른 우상'을 찾는 ..
우리 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 어리석은 바보일까?
7.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고한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그런데.. 이것을 보라.
대뜸 '인상착의'를 물어볼 정도로 그는 직감력이 있는 자이고,
8. 저희가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왕이 가로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한마디에 그가 '엘리야'임을 알아채릴 정도로
나름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란 뜻이다.
그런 그의 통찰에 가까운 번뜩이는 분석은
그가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닐 뿐더러
엘리야라는 이름이 워낙 유명했을 터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누구라도 이름 만들으면 알...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생기지 않는가?
그렇듯 유명한 선지자가 자신이 지배하는 나라에 거하는데
왜 하필이면 타국의 '우상'을 찾아가라 했을까?
여기서 묵상의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토록 잘 알고 하나님께 도움 만 구하면 척척 알아서 될 위치에 있는 자가
왜 그런 가장 어리석은 패착을 했을까?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것이 ' ~타더라' 라는 소리들 아닐까?
우상.
어쩌면 이것들도 몇 몇 기적 비슷한 이야기들을 가지지 않았을까?
영적인 존재이기에...
물론, 하나님의 그것과는 너무도 다른,
결과가 악하겠고 조건적이지만
즉각적이고 즉물적이고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인내를 요구하시는 데 반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그러기에 마음 약한 그는
환란에 빠지자 마자 '판단'할 여지도 없이 그냥...
아마도 조금 그가 진중한 판단을 하였다면
'엘리야'를 생각해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의 문제다
'타더라'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의 문제다.
'믿음'이 적은 문제.
눈 앞에 달콤함에 덜컥 판단을 중지해버린 어리석음의 문제
주위에 신하를 잘못 포진한 문제.
.........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필요했던가?
아니, 그를 통하여 나와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조심해야할
타산지석은 무엇이던가?
당연히도 필요한 것은 '전능한 하나님을 믿음'이다.
그의 온전하심을 믿고
그의 살아계심을 믿고
나에 대한 그의 변개치 않는 사랑을 믿고
무엇이 나에게 펼쳐져 있던 간에 그것은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믿음이며,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음이 그것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나...
정말 이런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매사에 유지될 수 있는가?
나.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많이 발전했다.
자꾸 조금씩 흔들리긴 하지만
말씀 안에서 훨씬 단단해지긴 했다.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의 물음에 대하여 '예'라 나오는 것을 보아
믿음은 좀 늘어난 것 같다.
더욱 더..가 필요하다.
그리고 진중함이 있어야 한다.
매사에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좋은 사람들,
믿음 안에서의 좋은교제가 필요하다.
아하시야는 몰라서 그런게 아니다.
그의 천박한 성품과 더불어
주위 사람들의 경건한 조언이 없었던 탓이다.
당연히도 ...
아침 조회.
여성 병원 '병원 장'의 교체.
전임 원장님의 건강악화로 부원장의 등극.
희비가 교차한다.
전임원장의 인격적인 완성도나 추진력등에서 인정 받아 6개월의 휴직처리는 되었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착찹할까 생각된다.
신임원장은 승격은 좋지만 실제 어려운 시기에 맡아
그 또한 한편으로 좋지만
한편으로 전임에게 미안한 마음,
새 직임에 대한 부담감...
그를 바라보는 조금은 아웃 사이더 위치의 나이든 평과장들의 눈.
그리 크지 않은 이 작은 공동체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눈들이 있고
난 그 안에서 그 들 중의 한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괜히 마음이 뒤죽 박죽이려 한다.
마음은 말씀으로, 은혜로.. 많이 평화로워졌지만..
그런 흔들림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면서
만일 더 큰 사회,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전제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양심' 내지 '선하려는 의지', '하나님을 의식함' ... 의 일부를 약화시키지 않고는
저런 마음의 흔들림이 몇배나 커지는 상황에서
뻔듯이 유지하기는 힘들 듯 싶다.
나만 그런가 ... ^^* ?
어쨋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이 의식하든 안하든
그들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취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어려움, 환란, 혼란,
즉각적 해결이라 생각되는 부분에 대하여 감정적 혼란을 감당하면서도
더 멀리 계신 듯한 큰 존재를 믿고 기다림은
많은 사람들이나 다양한 상황에서 그리 쉬운일 만은 아닌듯 싶다.
믿음의 유지.
그러기에 오늘 내가 살아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날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가장 선한 것을 주시기 위한 혼란' 임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그것을 통하여 주님은 나를 튼튼하게 하시고
약한 듯 한 상황을 통하여 더욱 강하게 하시어
가장 선한 것을 주시려는 것 아니던가?
'역설의 진리'에 대하여 아침에 설교하심을 들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원리는 '역설'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역설을 얼마나 잘 버티어내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를 이기어 내는 가..
그게 오늘 아하시야의 패챡을 통하여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역설적 진리 아니던가?
그 사실을 잊지 말자.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그 원리 안에서 평정을 찾고
주님이 주시는 그 기뻐하심의 은혜 가운데 거하고
늘 놀라운 선을 이루어 내는 하루가 되길
진정으로 바라고 깨닫고 인내한다.
감사하다.
또 말씀을 통하여
아하시야 처럼 흔들리려는 내 마음을 추스려 주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을 난 느낀다.
적용
1. 주님은 역설이시다.
2. 역설을 보지 못하는 아하시야는 죽는다.
현실은 배반해도 주님은 선이시다.
그것을 믿자.
3. 믿음.
주님은 살아계시다.
주님은 선하시다.
주님은 늘 날 사랑하신다.
주님은 내 모든 것 아신다.
그것을 믿는다.
4. 현실.
. 또 다시 조용해지는 진료실..
그 역설도 믿는다.
. 내 자식들.
그 역설도 믿는다.
. 현실과 하나님의 뜻은 비례하지만도 반비례 하지만 도 아니하신다.
그러나 모두 선을 향한 과정이다.
그것을 믿는다.
5. 서두르지 않는다.
아하시야는 서두르다 실패했다.
인내하자.
기다리고 현명한 판단 내리자.
6. 주님은 결국 병마져 고치시리라.
아멘.
가장 선한...
통합적 복을 주시는 분.
7. 성경 세장 읽는다.
기도
감사하신 주님.
내 하나님.
아하시야의 패착을 보고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르는 자가 아니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 만을 보고 하나님을 잊는 자였지만
그를 통하여 우리는 역설의 하나님을 봅니다.
아니., 역설을 통하여서 가장 선한 것을 주시는
진리의 하나님을 봅니다.
제 흔들림,
주님이 다 아시는 줄 믿습니다.
제 어려움..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주님.
아하시야가 아는 것 보다 더 주님을 알고 있다 생각합니다.
이제 그 앎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함으로 자리잡길 원하나이다.
어떤 상황에도 기다리고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가장 선한 것을 주실 것임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 줄 배웁니다.
귀하신 주님.
여러 현실적 이유가
다양한 생각이 절 어렵게 합니다.
그것,...
이제 그 마져도 주님이 날 위해,
아니 어쩌면 이 어두운 세상에 조금의 반영되는 거울 역할을 하라 허락하신
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마음이 주님의 뜻이시면 더욱 깊이 영혼에 박혀
힘이 있는 삶이 되게 하소서.
상황에 상관없는 당당함... 진지한 믿음의 소유자로
내 자식들의 아버지의 훌륭한 믿음의 본으로서도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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