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억압과 자기 부인 (민 29:1-11 ) 본문
제 29 장 ( Chapter 29, Numbers )
바람 휘몰아 칠 때
꼭
저항하려고만
하지 않게 하소서
그냥
맡겨
흐르게 하소서
억압해
부러지기 보다
날
부인하고
주 뜻대로
살길 원합니다
주여
(민 29:1-11 )
7. 칠월 십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KJV와 개역한글 , 개역개정 모두 '마음을 괴롭게 하고' 라고 나오나
NIV에는 You must deny yourselves
즉, '네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라고 나온다.
성회로 모여서 마음을 괴롭게 한다니... 뜻은 대충 알겠지만
혹여 이게 '쌔디스트적 ' 언어처럼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것을 즐기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
NIV 찾아보니 역시 정확하다.
'자기 부인'하라.
뜻이 비교적 명확해진다.
어찌되었든 간에 표현은 달라도
두 표현 모두 ' 심적이 고통이 있어도 그 것을 인내하라'는 이야기 처럼 들린다.
그 날 , 칠월 십일에는 특별히 심리적 어려움을 감내해야 함을 이야기 하신다.
그렇다면 '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극단적으로 반응하거나 영적으로 어린 분들의 그것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조용하신 분들, 순한 분들이나 영적인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의 그것을
생각해 본다.
심적인 혼란을 느끼지 못하는 '싸이코 패스'나 '선천적 호인'들과
나름대로 승화를 시킬 능력이 있는 성장한 사람들은 또 예외로 한다.
이제 '나' 같은 아직은 덜 성화되었지만
성화되려 하거나 착하려 애를 쓰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혼란'이 다가올 때 사람들이 하는 반응에는 두가지가 있다.
일단 '억압'이다.
아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강한 부인내지 망각이라는 정신 기제로
꽉 눌러 놓는 것이다.
쉽게 말해 '마취'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려서 부터 상처가 많거나 본질적으로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자신의 치부로 인하여 곤란을 받지 않기 위해
외부로 부터 오는 자극을 '순간적으로 억압'시켜 버리는 훈련이 되어 버린 경우
겉으로는 '화내야 할 상황'에서 조차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게 반응한다.
때로 그러한 그의 담담함은 '냉철함'으로 오인되거나
자신을 잘 절제하는 성장된 사람으로 부추킴 받을 수 있지만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눌렀던 에너지는 자꾸만 그 사람의 마음에 부담으로
조금씩 조금씩 압력을 가해져 온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심리적으로 쇠약해지는 때나 계기가 되면
과도한 정도의 반응으로 절제하지 못하는 '화'로 폭팔시키곤한다.
착한 사람들이 과도한 화를 냄이 이러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한 억압을 하는 기제를 가진 사람들은
그 영혼에 평온이 임하기 어렵다.
늘 답답하다.
무언가 초조하고 손해보는 듯하고 터질 듯하다.
'마음을 괴롭게 하는 '행위는 틀림이 없지만
파괴적 괴로움이다.
보통은 성장과정에서 얻어진 타인에 의한 상처가 그 바탕인 경우가 많다.
그 괴로움 안의 중심은 '자기 감정'이다.
반면 '자기 부인'이 있다.
자기의 옳다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그 인생을 걸쳐 형성해왔던 '가치'를
의지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현상.
따라서 '마음이 심히 괴로울 수 밖에 없지만'
의식적이고 선택적으로 결정해서
그 상황을 받아 들여야 하기 때문에
타인에 의하여 불가항력적으로 받은 상처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누르는
억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반사적이지 않고 의식적인 것이란 점이다.
망각이 아니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발전을 위한 긍정적 선택이란 점이다.
따라서 '마음이 괴롭긴 하지만'
거기에는 희망과 소망이 바탕이 있다.
그러기에 그 희망과 소망을 가져온 어떤 근본적 '대상'이 있다.
당연히도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 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이야 말로
자기 부인의 대표적 예이시다.
그 분을 닮아 각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것이
성장을 사모하거나 선택받은 모든 기독교인의 의무이자 권리인 것이다.
오늘 분명 '마음을 괴롭게 하라', '자기 부인을 하라' 라 하시는 것은
바로 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자기 부인을 하는 것은
나에겐 어떤 일이던가?
어제 오후.
수술이 힘들었다.
환우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복부 유착이 너무 심해 수술 시작부터 고생시키더니
막상 수술 부위를 바라보니 속이 너무 심하게 유착이 있어 어려웠다.
거기에 기구는 말썽이다.
최근에 들여온 기구는 고장이 나 AS 간지 오래이라
오래된 기구를 다시 사용하는 데 계속 출혈을 유발한다.
짜증이 많이 올라온다.
의사들은 늘 임계상황에 부딪치기에 필요치 않은 이러한 상황은
많이 긴장하게 하여 성질이 급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때.......
주님의 부인이 필요한 것 아니던가?
'주님을 생각함으로.... 이는 아름다우나.'
말씀 한마디만 생각해도 자기 부인이 쉬울 것을 ..
그래도 예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자제는 했지만
문제는 끝날 즈음이다.
너무 쉬운 assist일에 오랫만에 손바꿔 들어온 간호사가 - 평상시 너무 착했다.
말도 없는.. - 다 잊어 버린 듯 느릿하다.
짜증이 올라오려 해.. 'KE ! 좀...' 했더니 순간적으로 말도 않는 그 간호사가
'쯔~읏' 하면서 입맛을 다시며 다가오는 게 아닌가?
순간... 확.. 올라오려는 다양한 생각을 자제한 후
일단 다 마치고 나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혼내?'
' 착한 사람을 갑자기 ?"
' 가르쳐야 하는 것 아냐?'
' 다른 간호사가 날 어찌 보겠어.. ' ...........
생각이 많다.
그래도 가만히 기도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다 퇴근한 진료실에 앉아 '기타를 치며 조용히 찬양을 올리고',
성경 세장 읽고 기도를 드리는 화제'를 드리고 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불현듯 떠오르는 선한 생각이 있었다.
전화를 했다.
' KE !'
'예'
'수술 다 끝내고 정리했어?'
'예...'
' 내 물어볼 것이 있어요..'
'예~'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
' 이러이러 한 일이 있어서 '내'가 마음이 좀 그랬는데
내가 오해가 될 거 같아서 사실을 확인하려고... '
'아..........니.. 그럴리가요....... '
예의 그 착한 목소리로 그리 얘기한다.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렇다면 제가 사과 드릴 께요.'
'아니.. 그래서 전화 해본거야.
혹시 내가 오해가 되면 KE을 계속 그런 눈으로 볼거 아냐?
고마워요.. '
그렇다.
내가 간호사에게 흔들릴 나이이던가?
그게 창피하여 혼자 꾹꾹 눌러 두거나 괜한 오해의 화를 키우는 게 '억압'이다.
하지만 '기도'하며 주님의 뜻 가운데서 받아 들일 수 있으면
홀로 십자가 앞에 받아 들이고
주님께서 미운 감정 자체를 성령의 불로, 예수 보혈로 태우심을 기도하여
마음이 가라 앉으면 그거야 말로 '자기 부인'이 아니던가?
아니면 지혜를 주시면 배워 왔던 '아이 메시지'를 통하여 지혜롭게 대화를 요청함도
또 어쩌면 현명한 일일 수도 있다.
참으로 많은 일을 다져왔다.
주님께서는 이런 방법론과 내면적 흐름도 조정해 주셨다.
말씀 가운데 그러셨다.
그런데 오늘 '마음을 괴롭게 하고'는
'인내'하란 쪽으로 들린다.
간호사에게 전화하는 것 보다 오늘은 ' 십자가 '앞에서
내 부족한 마음을 내려놓고
가만히 성령의 역사하셔 그 미움이나 흔들리는 속을 정화받는 경험을 하는 것.,
그것이 자기 부인이다.
참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리 자기 부인이 자꾸 되어가서
인생에 맞부딪치는 모든 일이
주님의 원리 안에서
내 문제로 해결하여 흘려 버리고
그들에 대하여 하등의 감정의 찌거기가 남지 않은
청정한 마음 만 남는다면
그게 바로 주님이 좋아하시는 '십자가' 동참이 아니겠던가?
참 감사한 깨달음이다.
적용
1. 억압해왔던 것들은 무엇인가?
. 볼 때마다 짜증이 올라오려는 사람들에 대한 .. 것들은 없는가?
그것이 억압이다.
해결해야 할 ..
2. 자기 부인하자.
내가 주도적이 되어서 선택하는 자기 부인은 혹여 싪패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져온다
더더구나 그 주도적 판단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면 훨씬 성공의 확률이 높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것,곤란... 다 참을 수 있지 않던가?
더구나 자기 부인을 통하여 약함이 강함이 된다 말씀하시니..
3. 십자가는 고난이지만 행복이고 모든 어이없음이 이유가 있어지는 통로다.
고난을 오늘 기뻐하자.
4. 성령을 사모하자.
고난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
이유를 알아도 희석되어 망각되는 것을 막아주시는 '은혜'의 통로다.
그분 만이 날 승리하게 하시는 에너지 통로다.
5. 성경 세장 읽자.
화제와 함께 드리자.
기도
주님
귀하신 분.
오늘도 멋진 깨달음 감사합니다.
일상에서 적용하고
그적용이 나의 영의 성장으로 이어지길 소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자기 부인하는 과정을 통하여
어려움에 머무는 것을 권고하십니다.
그러길 원합니다.
주님 잊지 않게 성령으로 도우소서.
또 급한 제 성품,
주님의 뜻 잊고
튀어나와 주위에 혼돈의 불씨를 퍼뜨리는 자 되지 않게
주님 강하게 붙들어 주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자기 부인, 도우소서.
예수님. ... 제 자식들 바라볼 때
조금더 중심잡힌 눈으로 보게 하소서.
그들의 시야를 인정하고
내 비록,
심정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다른 그들을 다르게 보게 하소서.
다양성으로 보게 하시고
초조하게 보지 않게 하소서.
시간의 흐름조차 주님이 결정하시고
그과정의 승리는 주님을 붙드는 순간 결정되었음을
아들들 통해 다시 목도하게 하소서.
주님.
제 식구, 제아내 ... 모두 기억하소서.
주님
이 나라
이 블로그 오시는 분들 영혼 기억하소서.
같은 누림 누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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