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바라보아야 할 내 가나안 (민 27:12-23 ) 본문
제 27 장 ( Chapter 27, Numbers )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바라보라' 신다.
왜 이실까?
13.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처럼 ' 죽음'을 예고 하시면서도
무엇 때문에 보라시는 것인가?
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물 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분명히 므리바 생수 사건으로 서의 그의 잘못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징계의 의미인듯한데..
그렇다면 이 논리 대로 하면
당연히도 죽음 후에 모세가 가야 할 곳은 '천국'임이 분명할 거임에도
그것이 '징계'라면 ' 이땅에서의 ' 가나안 땅이 천국보다 낫다는
논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게 맞는 논리인가?
그리고 굳이 죽을 모세를 산위로 데리고 가서
''네가 들어가지 못할 땅'이 저기 있는데 '바라보라' "하시며
조롱하시는 것이신가?
그게 과연 지금까지 알게 되어가는 주님의 뜻이던가?
주님은 사랑이시고
주님은 지혜이시고
주님은 진리이시고.............................
세상의 가장 좋은 명사나 형용사로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할 만큼
대단하신 그 분이 ..
그렇다면 오늘 묵상을 통하여
나에게 무엇인가 주시고 싶은 뜻이 거기에 있지 않으실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천국이 이 땅위의 성공보다 못한 것처럼 들리게 하신 이유는?
...
이 땅 위의 삶.
어쩌면 그것은 '여행'하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여행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고
금전이나 일터의 빈 자리를 메꿀 대책을 세우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소집하고
의견을 교류한 다음
드디어 설레이는 길을 떠나는 과정에서
때로는 교통 정체로 막히기도
혹여 차가 펑크가 나서 밀고
비도 맞으며
때로는 떨어진 식량으로 배도 곯고
어쩌면 그 시절에 '동물'이나 습지 등의 영향으로 고전도 하고
..
드디어 모진 고생 끝에 목적하던 '가나안' 여행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목적지에 도달해서
이제 재미있는 물놀이나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다가
캠프 파이어 하면서 나누어 먹고 ...좋겠지 않는가?
그러나, 도착할 즈음
주님은 '모세'에게 다시 '본향'인 천국,
영원히 살아야 할 원래의 집으로 부르심은
여행지에서 어쨌든 누구든 돌아와야 하지만
그를 빨리 부르셔 천국의 집과 직장에서 제대로 쓰시려 하시는 이유.
그것은 어쩌면 모세에겐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어쨋든 집은 편한 것.
좋은 것.
또 여행지는 여행지 자체보다 그 과정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그는 그의 인생을 의미있음으로 가득 채우고 돌아가니
나중에 다시 천국집으로 돌아오는 친구들과
다시 한번 누리면 되지 않겠는가?
왜 조금 더 빨리 부르시는 지..
비록 겉으로의 이유야 무리바 생수가 되겠지만
그 깊은 본향에서의 뜻은
우리 주님 만이 아시지 않겟는가?
그렇다면 왜 '바라보라'고 하셨던가?
돌아 보라는 이야기 아니시겠는가?
지금껏 고생하며 40년의 광야 생활을 거쳐 왔지만
그것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나안'의 약속을 이루어내는 데 큰 역할 을 한 자로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말씀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모세님'에게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
우리의 지력으로는 알 수없는 귀한 일을 감당하시게 하시기 위함은 아니던가?
비록.. 이땅의 여행은 더 못즐겨도?
천국은 영의 기쁨이 있고
이땅은 어렵지만 육신의 재미도 있지 않던가?
잠시 더 육신의 즐거움 누리는 것도 좋지만
또 새로운 영원한 즐거움 누리는 것이 더 좋지 않나?
'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보라.
세상의 삶보다 더 큰 것이
하나님 나라의 삶인 것을
이 땅에서의 짧은 시간을 뭐 탓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함에도 모세님에게 질책으로 보이도록 하심은
육신의 재미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 같은 소시민'들에게 필요한 재미이고
그 재미나마 덜 보게 하신다는 뜻이리라.
나에게 바라보라는 것은 무슨 뜻이실까?
더구나 천국으로 아직은 갈자가 아님에도
모세님의 그 모습을 통하여 천국과 이 땅에서의 삶을 비교하게 만드시며
'바라보라'는 것은 어떤 의미실까?
나.
아직 멀었다.
잠시의 자극에도 여지 없이 흔들리는 ..
그러나 과거의 것과 비교하면 아주 많이 이루어 놓았다.
비록 모세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긴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의 '가나안' 땅이 있다.
주님이 바라시는 '내 달란트 '안에서의 가나안 땅이 있다.
과거의 행적을 되돌아 보면서
내 '결국' 이루어질 이 땅의 목표를 바라보라는 이야기 이신 듯하다.
그렇다면 바라볼 ' 이땅에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언제라도 부르시면 '천국'에 갈 준비를 해놓고
홀홀히 떠날 수 있을 때까지의
그 바라볼 '가나안'은 어디까지이던가?
스티븐 코비의 ' 성공하는 자들의 일곱가지 습관' 을 ebook에서 읽기 시작했다 .
이 책이 제목만 가지고는 또 유사유사한 '성공론'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안에 씌여진 내용은
오랫동안 말씀 안에서 하나하나 결정화(潔精化) 되거나 되어가는 이야기를
적어놓고 있었다.
이슬방울 하나하나 흩어져 있던 것이
조금씩 서로 달라 붙어 커지는 듯 한 느낌.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 만이 '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잠깐 벗어나 방 쪽 천정에 붙어 내려 있는 상상을 해보라.
그렇다면 자신을 좀 더 객관화 시켜 볼 수 있다는 것이란다.
또 그런 이야기도 나온다.
상상을 해보라.
장례식 장에 들렀다.
누군가 누워 있는 관을 보니 그게 자기였다.
' 아내가 울고
아들이 .. .
다른 아는 지인들이.. '
그들이 조사를 할 때 나의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자기 사명 선언서 이야기도 나온다.
독립적인 사람.
의존적인 사람.
상호 의존적인 사람에 대하여도...
진정으로 성공하는 것은
내면에서 '성품'이 완성되어서 외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란 것이며
가끔 성경의 내용을 인용한다.
많은 생각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그렇다.
그 분의 말씀대로 하여 성공하는 습관을 들이고 나타나는 모습이
그동안 내가 추구하려던 방향과 비슷할 것만 같다.
끝까지는 읽으려면 아직은 멀었지만..
오늘
모세님에게 바라보라던 '가나안'땅의 모습이
저런 완성됨을 뜻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를 조금더 돌아다 보라는 말씀은 아니시던가?
주님
회개할 것은 회개하게 하시고
돌아볼 것은 돌아보게 하시되
모세의 조금은 남아 있는 부족함을 받아 들이게 하소서.
그 분도 부족함이 있어서 주님이 일찍 불러가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찍 세상을 떠나도 주님의 뜻이고
그것이 결코 불행한 일만은 아니며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음을
아는 수준에서 넘어가 조금은 더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을 바라보고
이제는 미래 내가 나가야 할 부분을 쳐다보고
그로 인하여 과거에 함께 해주셨던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더욱 힘내게 하소서.
지금 거두어 가셔도 주님 뜻이요
그대로 두어도 아직은 고쳐야 할 부분들이 남아 있음을 뜻하는
주님의 뜻이시기에
당황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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