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어리석은 인생의 다람쥐 쳇바퀴(왕하9:4-24) 본문

구약 QT

어리석은 인생의 다람쥐 쳇바퀴(왕하9:4-24)

주하인 2006. 10. 19. 12:30

(열왕기하9:4-9:24)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이 거기 누웠음이라

 

( 젊은 한 때는 세상이 다 내 벌린 팔 안에 들어올 듯도 했다...)

 

천하를 다 가질 듯 하고

하나님의 뜻이니

천국이니

고리타분하게 들리고

전혀 자신에게는 죽음이란 닥칠 일 아닌 듯이 보여서

수도 없는 역사가 증명하고

많은 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경고가 되어도

그냥 세상이 온통 제 것인양 살아왔지만

이제

그에게도 서서히 끝이 다가온다.

 

 요람도 아프다.

 

 

그 아픔이 자신의 왕국에서 배반하여 나간 하사엘이란 자에게 입은 상처다.

그래서 누웠다.

 

 거기에 업친데 덮친 격으로 예후라는 무서운 적이 다가오고 있다.

 

 젊을 때

마치 내 육신과 그 능력과 그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세상의 전부인 것 처럼

그로 인하여 겁이 없는 것처럼 지내지만

서서히

세월이 지나고

그 세월이 육신에 잔재를 남기며

삶의 어쩔 수 없는 수없는 고난의 점철이 마음에 짙은 상처를 남겨 놓고 가며

그 쌓인 상처가 털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들다 느껴질 때 즈음

대부분 사람들이

센티해지고 우울해지려 한다.

 

삶이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코스를 밟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 더 큰 적이 멀리서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불안감이 그를 누르면

견디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17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어 맞아 평안이냐 묻게 하라

  너무나도 당연하게 몸부림을 친다.

대신 한 사람을 보낸다.

 

사람을 의지한다.

그리고

힘없고 가련한 발악을 한다.

 

" 평안하냐?"

 

참으로 가슴아픈 말이다.

적한테 평안하다니..

비록 그 적이 적이 아닐 수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무언가 안심할 거리를 얻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예후가 민심을 단속해서 비록 확실한 정보는 아닐지 몰라도

요람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이런 어디선가 본듯한 행동을 한다.

 

18 왕의 말씀이 평안이냐 하시더이다 하매~   저희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한번 보냈던 자가 돌아오지 못하자

불안은 증폭이 된다.

 마땅히 젊고 힘이 있는 경우

군사들을 보내고

계략을 꾸미고

나름대로 대책을 세울 것을

미련한 발버둥만 또 되풀이 한다.

 

 그러나

일단 가버린 영광이 어찌 돌아 올 수 있을까?

발버둥일 뿐인 걸...

 

 이때 쯤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비웠더라면 무언가 좀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19 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미련한 인생은

수도없이 되풀이 되는 인류의 오류를 또한번 범한다.

또 ...

또...

 

 

21 요람이 가로되 메우라 하매 그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직감한 그는

비슷한 인간 아하시야를 몰고

억지로 외형을 옛적의 모습으로 꾸미고 간다.

 

 우정

 돈

 명예

 재물...

 

과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까?

( 지구 상에 명멸에 갔던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의 모든 삶은 다 똑같은 다람쥐 쳇바퀴다  !!! )

 

얼마나 지나야 이런 것들을 의지하여 우리를 보호하려는 어리석은 다람쥐 쳇바퀴를 멈출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요람이 아닌가?

정말?

 

 주님을 믿는다면서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들의 현란한 움직임에 눈동자를 돌리며

다리 하나는 세상의 그들과 비슷하게 놓아두고

흘러가는 세월을 탄식하며

이제는 옛날과 전혀 다른 육신의 능력을 한탄하고

한편으로 다시 그 것을 추스려 또 한번의 헛된 영화를 바라보며

의지할 것을 모두 끌어 모아보려는

이 요람이 내가 과연 아닌가?


22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예후도 행동하는 바가 그리 탐탁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입술을 통하여 진실이 들어난다.

 

" 네 살아온 것이 잘못되었다.

 네 살아온 잘못된 터전에서 돌이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이웃을 향하여 좀더 긍휼한 눈으로 바라보고

없는 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폈더라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게 무엇인가?

결국 세상에 모든 것이 있는 줄 알고

그리도 허겁지겁 살아왔지만

그건 다 헛된 물거품이다.

그게 다 이세벨의 음행이나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허탄할 물거품을 찾아 그리도 헤매고 다녔다가

이제 말년을 맞아서도 정신을 못차리고

이렇게도 어리석음이 많으니

네게

어찌 평안이 있으랴? "

 

 통렬한 질책이다.

주님이 중년을 마구 통과하고 있는 주하인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이렇게도 어리석으니..

도망하기 보다는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진짜로 그것이 옳다면 그냥 무릎 꿇어야 한다.

그리고 돌이켜야 한다.

진실이고 진리이시며 의지처이신 주님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주님이시여

'내 안에 벗겨 내지 못할 더러운 때가 있습니다.

 주님 도우소서.

 시간 늦은 줄 알지만

 보혈으로 만 절 도우실 수 있습니다.

 회개합니다.

 정결케 하옵소서.

 그리고

현실이 너무 암담하오니 주여.

 제발 저에게 손내미시어

 저의 병든 환경 병든 몸 마음을 모조리 고치소서...'

 이래야 할 것이다.

 

 요람은

같이 어리석은 자 아하시여를 쳐다보았다.

'아하시야여 ~'

 

적용

 

1. 의지할 것은 인간, 재물, 명예... 이 아님을 명심한다.

 오직 주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그분이 주시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정답이다.

 

2. 기도원 간다.

  성경 5장 읽는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기도

 

주여

난 어찌하오리까?

원칙을 알고 원리를 알지만 실은 아직 정확한 방법을 모릅니다.

가르치소서.

요람같이 되기 원치 않지만

요람이 안되기 위해서 어찌 행동을 하여야 할지는 우리 주님 세세히 가르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직의 위대성은 그 리더의 위대성에 정비례한다.

- 헨리 블랙커비 
 
 

 사랑이 식어질 때(06.10.18 양문교회 연습 중)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