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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주님 계시다 (시95:1-11 ) 본문

구약 QT

어디에도 주님 계시다 (시95:1-11 )

주하인 2010. 11. 4. 08:27

제 95 장 ( Chapter 95, Psalm )  

 

어두움 조차도

해가 뜨면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어디에도

주님은 계신다

 

어떤 상황에도

주님은 계셨다

 

어서어서

무릎 꿇자

그리고

즐거이 찬양하자

 

주님햇살 느끼이면

그 아픔과

그 괴로움 

이제 곧  바뀌리라

오히려

즐거움으로 바뀌리라

오히려
기쁨으로 바뀌리라

 

 

 

 

 

 

( 시95:1-11 )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때로는 '즐겁지 않을 때'도 즐거이 부를 때가 필요하다. 

찬양은 즐거울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 의지적으로

그것도 즐거이 부를 결심을 하고 올려드리는 찬양은

'감성'의 즐거움도 회복시키신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것도 그의 것이로다 
'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다.'

NIV 에는 'In his hand are the depths of the earth,' ,

             ' 그의 손 위에 땅의 깊음이 있다' 라 나온다.

 이해가 가는가?

이해가 잘 안가는 시인의 뇌리에서 추상적으로 떠도는 소리처럼 느껴졌던 것이

아침에는 이해가 간다.

 

' 몸이 땅으로 꺼진다.

 땅 속 깊은 굴 속에 갇혀 있는 요셉의 입장...'

땅 속을 싫어하는 이유는 '지옥'이 연상되어서 그렇다.

우울한 것이 '땅이 꺼지는 것 '같다.

깊숙이 깊숙이 꺼져 바닥없는 '무저갱'에 빠지는 것 같은 마음이다.

 땅 속 깊은 곳에 꺼지면

정말 힘든 것은 '거기에 아무도 없는 것 ' 같은 진한 외로움이 무게를 더한 다는 사실이고

이제는 아무도 손을 써줄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렇다.

 땅에 꺼지는 것은

외부적 이유로 박탈감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자책이나 자기를 향한 깊은 분노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깊은 절망감, 이 땅 속 바위에 눌리는 듯한 힘든

내 주위에 아무도 없을까?

정말일까?

 오늘 주님이 말씀 하신다.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다'

NIV에서는 더 뚜렷하시다.

'그 분의 손 위에 땅의 깊은 곳이 있다.'

끝없이 내려 갈듯,

아무도 없는 듯한 곳에서도 주님은 계시는 것이다.

깊이 깊이 내려가는 것 같은

환경의 하락,쇠락, 고난.........속에서도

주님은 계신다.

죄로 말미암아 깊이 자책하고 더 없이 나쁜 것 같아도

그 바닥을 받치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으신 것이다 .

 문제는 '내 자아'의 속임에 속고 있는 것이고

깨어 있지 못하여 사단의 혼돈에 속고 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로마서 8:38-39에 '내가 확신하는 것은.... 높음이나 깊음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끊을 수가 없다'고 나온다.

깊음을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었지만

오늘 묵상의 땅의 깊은 곳..에 더 뚜렷이 표현 되어 있지 않은가?

땅의 깊은 곳에 떨어질 만큼

힘이 들고 도저히 그곳에 누군가의 손길이 있을 수 없을 거라 단정하여도

주님은 계신다.

주님은 당신의 손으로 날 , 내 밑에서 받치고 계심을 깨닫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계실 지 모른다.

 

 문제는 이것이다.

괜한 나락에 자신을 맡김은 '자기연민'일 수도 있다.

힘을 내자.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날 끊을 자 없다지 않은가?

가장 바닥에서도 날 더 받치고 계시는 주님의 손이 있다 하지 않으신가?

땅의 깊은 곳에서 더 깊은 아래에 주님이 있다 하지 않으신가?

 

 주하인.. 잘 안되는가?

이제라도 힘을 내라고

즐거이 경배하라고 하시지 않는가?

즐거이 경배할 마음의 준비만 하면

즐겁게 경배할 마음을 주신다 하시지 않는가?

바닥없는 나락에 빠지더라도

그곳에 계실 하나님의 평강을 보이신다 하시지 않는가?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굽혀 경배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더 의지적으로 그래야 한다.

그게 내 의무고 내 의지가 되면 다르다.

주님의 말씀이니 그래보는 것이다.

말씀이 생각나니 순종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시니 그러는 것이다.

어떤 의미를 붙힐 이유가 없다.

그냥 주님이 원하시니 그러자.

 

무릎을 꿇자.

굽히자.

즐거이 찬양하자.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한다.

참 이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난 끈이 있다.

주님의 말씀.

말씀을 생각하려 애를 쓴다.

'즐거이 ' 노래하라신다.

그래서 찬양을 잡았다.

"' 88장' 내 진정사모하는'

마음이 즐거워 진다.

참 놀랍다.

이 의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변화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무릎을 꿇라신다.

조금 일찍 출근하게 되어

책상 밑에 놓인 방석에

무릎을 꿇는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내게 공감되어 오는 것 같다.

 

 내 깊은 곳에 떨어지려는

이 습관성 나락증을

주님의 손으로 받으시는 듯하다.

'끝 밑 모르는 깊은 바닷속을 한번 헤아려...........♪'

찬양을 쓴 사람들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이 틀림없다.

그들의 영혼에서 흐르는

유사한 패턴이 공감이 된다.

 

다시 일어난다.

아침이 맑다.

 

 

적용

 

1. 아무 렇지 않으련다.

 바닥에서 주님의 손이 떠 받쳐 주신다.

 

2. 묵상한다.

 받치시는 주님의 손

 떨어지고 있는 내 옆을 같이 내려가시는 주님의 얼굴.

 

3. 즐거이 찬양하라.

 찬양한다.

 

4. 회개한다.

 한번에야 되겠는가 마는

 주님은 언젠가 나를 완전히 바꾸시리라.

 믿고 기도한다.

 

5. 성경 세장 읽겠다.

 죽도록 성경읽자.

 이해가 안가도 머리에 안들어와도 눈에 안 읽혀도 .. 읽자.

 

6. 무릎 꿇자.

 경배하자.

  기도하자.

 

7. 그래도 날 사랑한다.

 날 위해 주님 돌아가셨다.

 그들을 위해 주님 돌아가셨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나락과 정상이 왜 그리 얼마 차이가 안나는지요.

순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지러이 떨어집니다.

그리고는 죄덩어리.. 내 모습만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힘을 주소서

주님 손으로 받치신다하니

다시 힘을 내겠습니다.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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