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새 노래로 주님께 (시 96:1-13 ) 본문

구약 QT

새 노래로 주님께 (시 96:1-13 )

주하인 2010. 11. 5. 09:50

제 96 장 ( Chapter 96, Psalm )

 

각기 다른 색깔

다른 모습이어도

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우리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기쁨을

내 몸으로

내 영혼으로

찬양 불러 올려드리오니

주님  받으소서

 

새 노래로 주님께 (시 96:1-13 )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파할지어다   
 

 노래하라.

노래 할 지어다. 

노래하여

송축하며

선파할지어다

극진히 찬양하라..

 

오늘의 묵상은 시작부터 열렬히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내용이다.

그 분위기는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다.

이하에 계속 나오지만 금전적인 헌물도 내라는 구절도 나온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무겁다기 보다

전체적으로 '열렬한 ' 찬송과 찬양의 축제 분위기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림.

당연히도 당연하지만

그게 어떤 때는 의무감 비슷한 느낌이 아니던가?

 아버지.

 어머니.

효도하고 올려드리고 존경해야 하는 당연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찌들리다 보면 현실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효도'는 당연하지만

효도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이 그 당연함에 무게를 더해

가끔은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 영광을 올려드림.

우리... 믿는 자들.

그 중에서도 실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깊이 아는 자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우리들,

난 그들을 '선택받은 소수'라는 표현을 쓰고

'좁은 문'을 향해 가는 자들이라 표현되고 있지만

이런 우리들은 조금은 더 다른 마음이어야 하지 않는가?

당연히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림은

오늘의 분위기 같이

내 삶은 어려워도 '축제의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찬양하고 노래하고 선포하고 경배올리고 .....

 그러나 그러하지 못함은 왠일이던가?

효도를 이야기로 예를 들었지만

삶에 찌들려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기에 마음의 버퍼가 적어서는 아니던가?

그게 웬일인가?

하나님의 우선이 되어야 하는 데

하나님이 세상의 삶과 병행되어 취급되는 ㅜ.ㅜ;; 어이없는 일 탓이 아니던가?

어이없다 표현했지만

보이는 세상의 일과 보이지 않는 영의 하나님이 실은 '동행'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그 삶이 '소수'의 삶이 될 수 밖에 없지 않던가?

 

 그러기에  은혜...

오직 은혜 만이 그를 가능케 하는 일이다.

아무리 열심히 주님을 의식하고 살려 노력해도

세상은 날 붙들고 늘어진다.

짓이기려 한다.

세상의 고민은 잠시도 내 영혼을 갈기갈기 할큄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선이 된 자들의 삶은

'은혜'가 넘친다.

그 은혜를 오늘 이 시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보여 주신다.

 

'새 노래로 ' 하나님께 노래하라신다.

새노래가 무슨 노래인가?
새롭게 작곡된 노래이던가?

그럴 수도 있다.

주님의 은혜가 감격되어 내 영혼에서 넘치어 흘러나오는 기도와

흥얼거리는 곡조를 엮어 찬양을 만들어 내면 그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

어제 부터 '성경의 찬송가'가 불려진다.

참 은혜롭다.

진료실에 비치되어 있는 기타를 들어 인터넷에서 악보를 찾아 찬송을 불러보았다.

은헤롭다.

찬송가의 가사와 음률이 영혼을 때린다.

오래된 곡조이고 가사이지만 새롭게 영혼을 때린다.

감동이 가슴을 치며 심장이 두근거린다.

내 목소리에서 나오는 떨림이 은혜롭다.

기타의 선율이 아름답다.

'새노래다.'

그 새노래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만족이 공감되는 듯하다.

 나.

새노래로 하나님께 영광드리리라.

 

 '여호와께 ' 노래하라 한다.

그래.

찬양을 드리면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아니던가?

그게 아닌가 보다.

'여호와께 '라는 단어가 가슴을 흔드는 것 보니

주님이 받으시는 찬양은 늘 같은 것이 아니신가 보다.

어쩌면 그 찬양을 내 감성에 맞추어 볼러 댔는 지도 모른다.

오늘은 '여호와께'  노래 하라신다.

그렇다.

오늘은 '영광을 기쁨으로 하나님께만 '드리는

그래서 주님이 직접 그 찬양을 받아 들이시는

그런 찬양이 되길 소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 이름으로 드 높이 소리내고 싶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게 너무 감사함을 세상이 알게 하고 싶다.

 

 오늘.

금요일.

오늘 부터 교회에서 '4인 4색 성령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성령부흥회가 인도된다.

거기에 내 소속되어 있는 하기오스 찬양팀이 선다.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여 노래하리라.

새노래로 노래 부르고

하나님께 직접 드리는 찬양을 드리리라.

그리하여 성령이 온 세상에 드높이 퍼지는

매개체가 되길 원한다.

하나님의 이름 만 드러나고

그 분의 구원의 이 역사적 감사함 만 드러나는 그런 도구가 되길 소원한다.

 

오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데 집중하리라.

경배와 축제의 장이 되길 소원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축제의 장소에

난 찬양대로 노래 부르리라.

찬양하리라.

송축하리라.

경배하리라.

 

 

 

적용

 

 

1. 성경 세장 읽겠다.

 

2.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 덕이었음을 감사한다.

  찬양으로 그 감사를 올려 드린다.

 

3.  하기오스 찬양 팀에 찬양할 때 주님 만 집중하리라.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오늘은 찬양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 찬양이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경배하는 찬양이 되길 원합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귀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소서.

그 기뻐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절 구원하시고 동행하신 다는 사실을

절절히 느껴서 그러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좁은 길 가는 동안

그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닌 것을 잊지 않길 원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오직 주님의 은혜로 가는 길이기에

이처럼 어려워도 축제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영광올려 드릴 수 있을 수 있음을

깊이 알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