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어느 때나 구하라[사7:10-25] 본문
11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징조'
Sign.
꼭 신비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기뻐하시거나 허락하신 것임을
알거나 느낄 수 있는 어떠한 현상.
시간이 지나
그것을 '간증'이라는 표현으로 정리되어 느껴지기도 하는
그 어떤 '주님의 함께 하시는 증상이자 기뻐하시는 현상'.
'한 징조'라 하신다.
이제는
믿는 우리, 더 사모하는 나에게
더 큰 징조를 말씀하시는 것이시다.
그런데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하신다.
그렇다.
징조를 구하는데
오늘의 내 삶이 어떤 위치에 있던
그게 힘들더라도
아니면 풍성한 상황에 있어서 오히려 마음이 게을러져
주님이 더 필요치 않을 듯(ㅜ.ㅜ; 죄송..)한 상황이라도
이제는
더 큰 징조를 구할 때라심이시다.
12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그런데
오늘 주일.
주변에 가족들이 풍성하게 왔다갔다 하며
주말 부부의 삶을 몇년 째 되풀이 하는 내게
주말을 맞이하여
편안하고 풍성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징조를 구하라 하신다.
무슨 징조인가?
다시
힘들고 불안한 시간처럼
그래서 매달릴 수 밖에 없던 그 상황을 다시 연상이라도 하라신 말씀이신가?
그게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징조'를 구하라 심은
더 기도하고
늘 항상 깊은 하나님의 임재에 함께 하길 권하시는
주님의 오늘의 뜻이심이시다.
아니.....라 하고
게을러 '나는 주님을 괴롭히지 않겠나이다' 함은
13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오히려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함이다.
주님은
나의 주께 기도함
주님을 사모함을 기다리신다.
그게 나를 만드심이시다.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한 수도 없는 조건들을 허락하셔서
마치, 이 땅의 것이 모든 것인양
그래서 그 과정에서 주님은 필요 때만 찾을 존재인양
그리 느껴지도록 하게 하심은
그 과정을 건너면서
이 세상의 분주함
이 땅의 것들이 절박한 조건 속
아니 그 반대로 너무 풍만해 주님이 필요없을 것 같은
모든 상황에서 조차
주님을 바라보는 삶,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과 손잡고 가는 인생이 되길 기대 하시며
우리를 창조하심이시다.
그게 주님이 우리를 만드신 이유이시고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란 이야기다.
이 외...
어디에
우리가 살아 있을 이유가 있던가?
왜 사는가?
먹고 살고 자식 낳고 죽어가기 위해.. ?
그게 목적이라면
그 만큼 허무한게 어디있는가?
개나 하이에나, 소 돼지, 새.......생선... 조차
그렇게 산다.
더 처절히.........
우리의 삶은
어떤 이유를 붙혀도
의미없다.
오직
더 크게
더 큰
한 징조를
매일 사모하고 느끼기 위하여
우리는 만들어 졌다.
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다행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너무 뚜렷한 징조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오늘
눈뜨게 하고
또 새롭게 시작할 하루를 허락하심은
한징조를 위하여
내 지금의 현상이
높은데 든지
낮은데 처해 있든 지 상관없이
기도하고
임재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것임을
잊지 말라신다.
그게
쉽지 않기에
매사에 잊고
매사 흔들리고
매사 망각하기에
또
주님은
레마로
내게
그리 말씀하심이시다.
감사하다.
주님
거룩하신 하루가 밝았습니다.
살다보니
자꾸만 게을러지고
자꾸만 잊어 버리며
때로 홀로 고민하고
때로 이 풍성하고 고요함이
내 홀로의 문제인양
나의 만족을 위해
눈의 정욕을 채우며 시간을 때우거나
육신의 만족을 위하여
탐닉을 하면서
또 하루를 죽여 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 아침도
또 그러한 높은데, 낮은데 처하는 영적 상태로
나른해지고 있습니다.
주여.
한 징조를 구합니다.
임마누엘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합니다 .
내 주여
거룩하신 주일을 맞이하여
오직 홀로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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