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육체의 고난, 일상의 고난 & 영적 고난 [벧전4:1-11] 본문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리스도께서'도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 .
육체의 고난은 누구나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육체의 고난을 두려워 하지말라.
어제 말씀처럼 '육체의 고난'은 '그들의 고난'을 의미한다.
그들, 불특정 다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믿지만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자들
그들의 고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고난을 근심하지 말라신 이유시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당연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고난'은 '십자가' 지는 고난으로 받기 위해 허락되어진,
그를 위해 부르셨다시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도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 신다.
할렐루야.
잊기 쉽지만
잊으면 안되는
필수 불가결한 실제적 도구, 육체의 고난.
육체의 고난은 '영적고난'과 다른 개념이리라
그러기에 그냥 고난이 아니고 꼭 찝어 '육체의 고난'이라 하셨다.
'육체의 고난'이라시면
이 육신의 껍질을 쓰고 살아가는 동안 이 땅위에서 반드시 맞이 해야할 고난..
거기에는 사고, 암, 질병, 성공.......의 육체적 , 심리적 , 사회 관계적 아픔으로 인한
고통이 포함 될 것이며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 충만한 가운데 느껴지는
그리고 말씀의 인도하심으로 인한
영적 충만함과 반대되는 '영적 위기 의식'의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을 '영적 고난'과
마치
전혀 상관없을 듯한
저급한 '고난' (이 표현이 맞을 지 모르지만.. ㅠ.ㅠ;;)
그래서 하나님과의 공고하고 수준 높은 영적 동반을 하는데
지장이 될 것 같은
일상의 저급한 도전들,
그로 인한 '고난'을 의미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런 것.........
하루하루 말씀 만으로 살고
그 말씀 가운데 주시는 방향대로만 살기로 결정한 내게...
갑자기
전혀 뜬금없는 이유로 '환우' 문제로 고민이 주어지거나
내 생각과 상관없는 논리로 윗분에게 눌림이 주어지거나 ㅠ.ㅠ;
그로 인하여 내 나이에 현실 문제로 버거워지거나
코로나로 인하여 .....................
거기에 아직은 창창한 듯했으나 갑자기 육신의 이곳 저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올 때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다쳤을 때..................
아직 도와줘야할 듯한 자식들이 버거운데 .......등등...................
이 육체의 고난은
'영적고난'으로 치환시켜 받아 들이기에
십자가로 받아 들여 짊어지기엔
너무 저급스러운 '그들의 고난'같은 '고난' 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주께서는
분명히 그러신다.
그러한 '고난'......그들 만의 고난 같은
이 육체의 고난도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아내셨으니 (안그런가?...비단 십자가의 고난이 문제던가? 침뱉고 뺨때리고..............그게 얼마나......치욕적인 육체의 고난이시던가?.. 십자가도 영적의미를 넘어서는 현실에는 견딜 수 없는 육신의 아픔이 아닌가? 육체의 고난의 극치 ! ) 내게도 주께서 하신
그 의미없을 듯한 '육체의 고난' .. 이 현실의 고난도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것이 맞다.
굳이 선교지나 순교의 장소, 예배의 장소, 교회.......가 아니어도
이 삶속에서
정말 버거운 일, 아무런 의미가 없을 '고난'까지
다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육체의 고난'이 '영적고난'과 차이가 있음이 아니다.
주님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께서 이미 겪으신 고난이니
이 일상의 고난도
말씀에 의거하여 받아 들이 '확실한 명분'과 '이유'와 '이해됨'과 '깨달음'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육신의 고난, 일상의 고난은
'마음의 갑옷'으로 삼아
이겨내가야 할 '연단의 도구'일 뿐임이다.
감사하다.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것
육신의 고난이 너무 심하여
그 영적의미를 잊어 버리게 할 수 있을 것을
주님께서 오늘도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깨닫게 하시고
그를 도구로
이제 '죄를 그칠' 계기가 되게 하심이다.
아....감사하다.
육신의 고난이 가지는 또하나의 의미는
그를 통하여 '죄를 멈춤'이고
죄를 멈추게 하시기 위하여
내 매일의 살고 숨쉬는 일상 속에서 모든 일을
도구로 쓰심이다.
'인생의 지팡이, 사람의 막대기' 말이다.
4.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아..
어렵고 두려운 진실이지만
받아 들여서 '연단'으로 이겨내야할
'죄를 멈추기 위한' 도구 말이다.
내 정화와 성화를 위하여 허락되어진
그러함들..........
감사하다.
새삼.
이제
'비방',
방탕하는 자들의 유혹
그러함에도 잘나가는 듯한 자들에 대한 '비교'.
나 혼자만 깊이 받는 것 같은
이 고난들..............
그 무게......
모조리 '육신의 고난'이지만
의미있는 육신의 고난이 맞다.
할렐루야.
주님.
깨닫게 해주십니다.
알면서도
매일 매일 살면서
제 안에 고난들, 육신의 문제들은
찌거기를 남기려 합니다.
연민, 좌절...........들요.
어느 정도 깨달아지고 알아져서
모든 고난을 다 십자가로 받아 짊어지려 하지만
그러한 '육체의 고난'들은
제 다리를 걸어 넘어 뜨리려하고
짚고 일어서려는 팔에 힘이 빠지게 하려고도 합니다.
그것.
너무 지쳐 힘이 들려 할 때
울 주님께서 또 이리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육신의 고난은 '이미' 주님도 받으셨으니
저도 받아도 될 당연한 개연성이며
그 육신의 고난이
영적고난과 또 분리해서 구분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도요.
주님.
이 부족한 자에게
새로운 영적 갑옷을 주셨으니
힘내어 나갈 수 있을 듯합니다.
내 주여.
그 마져 주님의 온전한 은혜로 도우소서.
예수님.
어제
아들.
고백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이렇게 까지 낮추고 받아 들였는데
이마져 허락하지 않으시는 듯해서
힘이 들다고 고백하는
저 젊고 어린 마음을
헤아려 주소서.
그 육신의 고난을
영적 고난으로 승화 시키소서.
모든 믿는 자들 그리하소서.
특별히 사모하는 자들을 더 그리하셔서
힘을 주소서.
갑옷으로 삼게 하소서.
그들이 온전히 연단 받아 나갈 기회가 되게 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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