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제 시험과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을 듯하다[약1:12-18] 본문
내 진료실 창틀에서 번식해가는 다육이가
오늘 아침 보니
노란 꽃같은
생전 처음 보는 돌기를 피워냈네요
오년 전 입사할 때 선물받은
입사동기인 다육이가
생전 식물을 키워보지 못한
주하인의 아래서
수없이 많은 시험 (물 너무 많이, 너무 가뭄 , 이곳 저곳 이양.. ㅜ.ㅜ;)을 거치며
드디어는 많은 자손을 퍼뜨리고는
저러한 노란 결정체를 피워냈네요.
이끼든, 곰팡이든
혹은 꽃이든
주변환경을 해치지 않고 피워내는 아름다움은
시험의 인내를 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아련한 위로가 되기도 하네요 ^^*
시험
인내
복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
할렐루야
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드는 전문가 ^^;;'로서
시험을 들 때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 .
그냥... 육신의 문제로 드는 시험 같으면 그 문제만 끝나면 되기에
또 어쩔 수 없어서 버티면 된다는 끝이 보일 때가 있기에 (그게 설령 죽음일지라도 우리에게는
견뎌야할 의지가 있기에 그 후의 소망을 두고 기도할 목표가 있지 않던가? ㅠ.ㅠ)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지만
심적, 영적 어려움으로 인한 '시험'은
그 방향성의 모호함,
혼돈에 빠진 미련한 자(^^;)로서의 끝이 보이지 않음, 목표의 부재
때로는 자책, 자괴의 시험, 우울.....은
그 혼돈의 어지러움으로 인하여
과연 시험을 참는게 어떤것인가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참는 방향성의 상실로 인하여
'시험을 참는다는 것'의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
그리고
당연히도 육신의 시험, 심리적 시험, 영적시험.......구분하여 오는게 아니고
영육혼의 서로 나사 맞물리듯, 기어 얽히듯 얽혀서 다가오기에
위의 표현이 쉽지는 않다.
그러기에 '시험을 참는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힘든 명제가 아닐 수 없기도 하다 .
특별히 주하인 같은 시험드는 전문가 ^^;; 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다르다.
말씀이 있으시다.
말씀이 있으심은 해결이 됨을 말씀하시는 것이고
말씀이 로고스 하나님으로 인정되는 순간,
그 말씀은 결단하는 순간,
깨달아 가슴에 안는 순간
그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
어제의 표현대로 '어떠한 시험'이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니
'참는다면'
'복'이 된다 신다.
'시련을 견디어 낸 자'에게
(아... 시험은 시련임을 아신다.
주여.. 감사합니다. )
'생명의 면류관'이 된다신다.
아..
복... 의 개념은 이제는 알지 않는가?
꼭 물질적인것 만도, 영적인 것만도, 심리적인 것 만도 아닌
하나님이 아시는
내게 가장 좋은 것.
그러나 이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은
어쩌면 '이땅의 것' 보다는
죽어서 영적세상에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이 '현실의 혼돈 ,시험속의 우리'에게
위안이 되던가.. 가
너무도 당연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고 주님 나라의 복을 받을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일상에서 매일 매일 똑같은 시험에 넘어지고 허덕이던
나 같은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보면서도 솔직히
삶에 큰 힘을 받아 내기 힘든 이유이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위의 표현을 적나라 하게 할 수 있음은
이제......
특별히 오늘
'시험을 참는 자'라는 말씀이
"시험을 참을 수 있어.. 그게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야.."라는
뉘앙스로 다가오며
'복'이
시험을 없이 하시거나
혹여 시험을 그대로 두셔도 그 안에서 버티고 깨닫는 힘을 주시거나
아니면 그 시험을 통해 더 큰 깨달음 (이전처럼, 이전보다 다른 유형의... )을 주실 것이시며
그것...
'복'이라는 한단어로 표현해도 될 만큼 (주님이 내 복..이란 단어를 터부시하는 것을 몰라서 복이라 하셨을까? 정말?)
내게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큰 '축복'으로
날 이끄시고 인도하실 것이시며
이제.. 시험을 통해
기도하고 몸부림치던 '주님 나라의 소망', '천국소망을 더 크게 하시며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자로서
이땅위의 삶도 어찌 될 것인가를 깨달아 보라심 처럼 다가온다.
말씀을 붙들고 오늘 하루 살아볼 요량이다.
늘 그러하였듯...
내게 다가오는 수없이 많은 시험거리 ㅠ.ㅠ; 들을
참아야 하는 당위성,
그게 스트레스나 불안이나 두려움 보다는
오히려 '복'의 계기, 복의 디딤돌이 되어
오늘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의 어떤 유형으로 다가오는 지
기대하는 마음과 더불어 체험의 간증을 채워보고
그를 통하여 생명의 면류관의 의미를
조금 더 뚜렷이
이전보다 더 확실히 깨닫는 하루가 되길 고대해보자.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그리고
욕심, 미혹의 부분이 내게서
시험의 어떠한 부분을 차지하는 지........
더 뚜렷이 깨달아 보자.
감사합니다.
주여.
오늘도 뚜렷한 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시험을 참으라 하십니다.
주여.
시험.. 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쭈볏하고 가슴이 막히려 합니다.
두근거리고 피하고만 싶습니다.
그런데.......알아지는 게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적용하면서
점차로 그 안의 많은 부분들이
제 교만과
제 마음대로 고삐 풀리게 움직이는 생각
원튼 원치 않든 제 안에 자리잡은 원망,....과 환경등의 상호작용들로 이루어진
수없이 많은 왜곡된 시험거리들이
저의 '시험'안에는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여.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네가 약해짐으로 내 능력이 강해지니
온전히 기뻐하라. .. 라 말씀해오셨고
오늘..
그 시험에 대하여
이제 문항과 문제를 아니
'온전히 참아보거라'
복이 있으리라.
생명의 면류관의 복.. 말이다. ... 하시는 것 처럼 들립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바라옵기는
지금도 순간순간 두렵고 혼돈스럽고 힘들려하는
모든 시험의 순간들이
제 욕심과 욕망의 근거로 더 크게 이루어진 것이며
주님의 말씀이 있으셔서
그 시험을 참으려 결심하는 순간
또 임하시는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충분히 이겨내게 하소서.
기쁨으로 그리하게 하소서
복을 기대하며 그리하게 하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그려보며 그리하게 하소서.
그 모든 근거가
오늘.. 또
말씀으로 그리하라 하셨으니.. 가 되게 하소서.
주여
말씀하셨으니
또 인내에 도전합니다.
시험을 기뻐하고 참아내기에 도전합니다.
주여.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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