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애굽시절과 출애굽의 준비( 출11:1-10 ) 본문
제 11 장 ( Chapter 11, Exodus )
그래요.
어두워도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으면
전
걱정이 없습니다.
주님
제 길 인도하소서.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 내리니
주님이 확실 히 말씀하신다.
'이제 한번 더 재앙을 내리면 바로가 너희들을 다 쫓아낼 것이다.'
NIV에는 'drive you out' 이라 나온다.
밀어낸다..라는 뜻이다.
진저리가 나서 꼴도 보기 싫어서 밀어낸다..라는 뜻이다.
그토록 강팍한 자가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럴까?
2.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그러시면서
나갈 준비하라고 하신다.
당연하게도 믿고 준비해야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 나를 이입시키면
꼭 믿어질까 싶기도 하다.
400년 애굽 노예 생활이 뼈에 사무쳐서
영혼까지 그 노예가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고
9번의 재앙을 보아도
바로 측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는데
이제서 '금 은을 구해서 나갈 준비하라 '하시니..
그걸 믿어야지만..
믿어질까 싶기도 하다.
내 지금까지의 속을 뒤돌아 보면
적당히 예수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것을 즐기고
그분의 보여주시는 이적하나하나를 감미롭게 음미하고는 있지만
막상 '이제 때가 되었으니 이렇게 하라'고
딱 떨어지는 말씀을 하시면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소설책 읽듯
장기판에서 훈수를 두듯
한걸음 떨어져 성경을 읽고 머리속에서
하나님의 뜻일 듯한 원리를 추정하여
'그래..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 거야'라고 추정할 때는
이들의 입장에서 준비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내가 그 입장에 들어가면
그렇게 '선뜻' 준비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분명코 주님이 모세에게
' 바로가 우리를 drive out'할 것이라 말씀하셨기에
하기는 할 것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힘차게 준비할 것 같지는 않고
머리 속이 어딘가 뒤죽 박죽이 될 것 만 같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난 하나님의 뜻일 듯한 것에 적당히 내 할 수 있는 정도의 것만 맞추어
생색 낼 수 있을 정도만 '믿습니다.'해 온 것만 같다.
마치
예수님 쫓아다니는 사도 일행 들이
그 분의 3년간의 돌아가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부활을 보았음에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디베랴 바닷가로 다시 돌아가
무력한 생활을 한 것처럼 그렇게 반응하게 될 것만 같다.
정말 당연한 것은
금과 은으로 패물을 바꾸어
바뀔 삶의 형태에 확고 부동히 대하여야 되지 않는가?
그게 믿음이고
당연히 취해야할 현명한 태도인데...
왜 그러지 못할까?
난,
내 경우를 돌아보면 이렇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먼저 속에서 '나는 안돼, 설마..'하는 생각이 치고 올라오는 것 같다.
그러면서 실패하고 실수하고 고전하는 장면이
순간적으로 날 스치면서 주저 앉혀 왔던 것 같다.
예수님 말씀으로 상당 부분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왔고
그 부정감이 옅어 졌지만 아직도 그게 힘들다.
직장에서 여러 일들이 주어지고
교회에서 많은 제안들이 오고
다양한 권유들이 있어왔지만
아니다.. 하고 앉아 있었던 것은
내 속의 그 오래된 '애굽의 노예생활' 탓이다.
주님 예수님이
그 애굽의 노예습관을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씻어 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출애굽의 기회를 부여하시고
성령으로 날마다
새로운 양식을 주셨고 주실 것임을
그리도 말씀하시지만
아직 내 속에서는 그래왔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금과 은'을 준비해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래야 한다.
예전과는 달리
말씀으로 뚜렷이 하라하신다.
이전은 디베랴지만
이제는 오순절 다락방 사건이후이다.
이전은 애굽의 노예였지만
이제는 출애굽의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걱정은 금물이다.
할 이유가 없다.
출애굽하는 백성은
하나님께서
직접
홍해의 물결을 가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지만
예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성령으로 늘 인도하시기 때문이시다.
내가 할 일은
금과 은을 준비하라시니
준비하는 행동 뿐이다.
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어느새
모세는
애굽 사람들에게 은혜를 느끼게 하고
크게
그것도 심히 크게 보이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칭찬한다.
신실한 사람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라고....
8.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서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좇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
앞으로 내가 취할 태도는 이것이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타협이 없이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심히 노하는 태도 자체는 자제 해야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흔들림없이 전하고
말씀에 대한 관심이 내 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점차로 그 비중이 더 커져야 한다.
적용
1. 주일이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게 어떤 것인가.. 맞추어 사는 하루가 되길 노력하겠다.
2. 성경 여섯 장 읽겠다.
3. 당직이라서 병원에서 하는 예배에 참가할 수 밖에 없다.
진중한 마음으로 근무하겟다.
4. 경건한 마음으로 TV를 키지 않겠다.
5. 대기하는 산모가 정상 분만 하길 기도한다.
6. 월요일 있을 모임을 주도해야 한다.
주님이 '금과 은'을 준비하라 하셨으니
그러겠다는 적극적 마음을 주시길 기도한다.
7. 건너야할 장애물 들..........
이제 조금씩 주님께서 '준비하라'는 뜻이신 것 같다.
뚜렷하게 말씀하시질 않으셨던 것은
내 속의 오래된 애굽 성질을 온전히 떨굴 시간이 필요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
말씀하시면 '예'할 마음을 주시길
성령께 간구하여야 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십자가에 내려놓고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는다.
안되는 것 조차 주님께 의지한다.
기도
주님
또 한번
애굽의 옛 성품이 스물 거림을 느낍니다.
그게
'금과 은'준비하시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길 두렵게 하는 듯 싶습니다.
언제 때가 되어
주님께서
'주하인.. 너 이리해라'라 하실 때
'예'하지 못할 것을 아시고
우리 주님께서
아홉번 재앙을 주시는 동안에도
모세 이외의 평범한 이스라엘 인에게 보이시지 않았던 것 처럼
저에게도
이것을 보라.. 이것을 보라.. 하셨지
'금은을 준비하라'고 특별히 지시는 하지 않으셨던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오랜 연단 동안
믿음이 성장하였던 '열 한 제자'의 그것처럼
비록 아직도 무력감과 어리석음은
제 영혼에 남아 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강하게 이끌어만 주신다면
전 성공할 것을 믿습니다.
주님
이제 제 삶이
주님으로 인하여
조금은 더 힘이 있는 삶이 되게 하시고
제 영혼에서
애굽의 400년 된 '타르 찌기' 보다 더 끈적거리며
붙어 있는
흑암의 덩어리를 밀어낼 수 있도록 하소서.
더듬을 수있는 그 흑암을
이제는 광명 중에 있음을 감사하며 밀어낼 수 있도록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감사합니다.
주님
늘 감사하고 고마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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