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 사는 고센은 눈 바람만 있다. (출9:13-35) 본문
아침에 출근하다보니
이 소담한 꽃들이
마치
우박을 맞은 듯
모조리 떨어져 있네요.
처참했어요.
주님의 진노가 임해
우박이 온 땅에 떨어지고
불덩이가 같이 내려온다면
이구..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겠지요.
그래도
고센에 피해있을
기독교인이 되어서
참 다행입니다.
제 9 장 ( Chapter 9, Exodus )
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14.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
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모세가 세워졌음은
주님의 능력을
온천하에 알리기 위함이다.
그것이다.
그 이상을 바람이나
그 이하의 것에 대한 불평은
혼란 만 가중할 뿐이다.
삶이 힘들어 진다.
20.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21.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자는 그 종들과 생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
불신자들도
인정을 하는 자들은
덜 고생한다.
24. 우박의 내림과 불덩이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하니
십대 재앙의 일 부분의 참사지만
우리 인생에는 이런 고통은 없을 까?
최소한
난
우박덩어리가 떨어지고
불에 데이는 고통과
그 내리는 심함으로 인한
당혹감과 심한 좌절을 거쳐 왔다.
불신의 시절을 거쳐
초신자의 시절에............
난 인생이 불구덩이와 같았다.
살기가 싫을 때가 너무 많았었다.
26. 이스라엘 자손의 거한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몇 몇 재앙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지독한 고통에서는 예외로 해주셨다.
고센 땅에는 '악질'과 '우박' 재앙이 피해간다.
내 고통은 날 짓눌렀지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말씀이 내 속에서 힘을 얻어가자
난 '평화'로와졌다.
일단,
나는 나와 화평을 이루어 가기시작했고
외부적 조건이
점차로 무게를 잃어가며
우박의 크기가 줄어들어
가벼운 눈바람으로 변하듯
바람처럼 스쳐 밀려가기 시작했다.
'주님 탓이다.'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드디어
바로도 인정하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한다.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이렇다.
비단,
불신자
바로 예를 들지 않더라도
눈에 보고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보내고 있는가?
우리 각 개인도..
30절에서 모세가 그렇게 했듯이
사람은 이렇단 걸 인정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러기에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좌절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사는 목적이 어찌되었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기에
지치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한다.
아침에
큐티 시간에 찬양을 인도하였다.
이상하게도
어제 오랫만에 수요예배에 신실한 태도로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집중이 안되고
사람들의 반응에 유난히 신경이 쓰인다.
난 찬양할 때마다
그들이 내가 가지는 기쁨을 같이 공유하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찬양을 할 때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같이 지긋이 눈감고
자신도 모르게 두손을 높이 들고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뜨거운 찬양을 드리는 걸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침의 찬양이 뜨거워
사람들이 피곤한 줄도 모르고
한맘으로 큐티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만 같았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러니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이 서늘해지고
무대가 힘이 들어지는 것만 같다.
어찌 생각해 보니
이것은 '하나님'을 보고 찬양을 올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빙자한
내 잘난 맛은 아니던가"
아니라면
모두가 나와 같이 주님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하고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어쩌면 이상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는 지도 모른다.
주님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보이시기 위하여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임을 허락하셨는지도 모른다.
모세처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는
최선을 다하되
바로들의 강팍함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결점을 인정하고
그럴 수 밖에 없음을 받아 들여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최선을 다하서 하되
늘 주님을 집중해 보고
주님 만을 찬양 드리는 것만 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오늘 보여주시는
묵상을 통한
나
주모
개인에 대한 레마일 수 있다.
난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다.
그래왔다.
그리고 조급하다.
드라마틱하고
환타스틱하고
열정적이고
...
한마디로 뽀다귀나는 행사가 되어야 참가 해 왔었다.
그러나,
모세의 예를 보아도
사람은 어디하나 뜻대로 그리 되는 녹녹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도 고생하면서도 바로와 신하들은 그렇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게 비단 모세 자신의 리더십 뿐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임을
아주 가까이서 보는 자들이 그렇다.
그게 인간이다.
그 인간들 속에서
그런 인간 주 모가 산다.
나라고 다른가?
급속도로는 절대로 변치 않을 강골 고집불통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주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기다림이 그래서 필요하다.
오늘 저녁 전인치유도
그냥 준비된 찬양을
'주님 앞에서 ' 부르고 내려올 것이다.
변할 자는 변할 것이고
은혜 받을 자는 은혜 받을 것이다.
그 중에 일부는 어쩌면
예전처럼
자기 발로 교회에 나갈 지도 모르고
그 중 일부는 은혜 깊게 받을 줄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는 하지 않겠다.
난
그냥
주님 앞에서
주님의 허락하신 일이니
허락된 만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은혜를 가지고...
적용
1. 주님 만 보고 '전인치유' 찬양 임한다.
2. 수요일로 바뀔 지 모를 행사에도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다.
3. 어떤 일에도 과도한 기대는 피한다.
4. 시간이 필요한 것은 필요할 것임을 인정한다.
느긋할 필요가 있다.
5. 들어준다.
환자의 말을 먼저 들어준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준다.
6. 성경 여섯 장 읽겠다.
7. 내 삶의 유일한 목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임을 잊지 않는다.
주님의 영광을 올리는 나의 현 상태의 방법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듣는 일이다.
따르는 것은 성화하는 과정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일상에서 성화의 과정을 기대한다.
주님을 통하여 가능하다.
7. 나 사는 곳은 고센이다.
주님의 보호아래 있음을 인정한다.
기도
주님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든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조금은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길 원치 않습니다.
주님
저에게 장애물은
조급한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과도한 기대였고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이상적 생각으로 서두른 것이었음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다면
창피함도
부끄러움도 무릅쓸 용기를 허락하소서.
기다릴 수 있는 인내의 마음을 주소서.
기다리는 동안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의 평강을 가슴떨리는 기대로 받게 하소서.
기다림이 고통보다는 그 기다림이 기쁨이게 하소서.
변케 하소서 .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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