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민감성( 출 10:21- 29) 본문
제 10 장 ( Chapter 10, Exodus )
주님을 의식하니
의미가 있어집니다.
어둠은 세상으로
꽃은 유혹으로
아니,
꽃은 천사로
어둠은 주님을 가까이할 도구인 '고난'으로도...
흑암이
더듬을 만한 흑암이 되기도 합니다.
샬롬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만한(NIV : that can be felt) 흑암이리라
더듬을 만한 흑암?
묵상집을 들여다 보며
한 참있어도 감이 안 잡힌다.
NIV를 보니
'느껴질 만한 흑암'이라 나온다.
느껴질 만한 흑암.
그래도 잘 못 느끼겠다.
어찌 되었던 간에
그런 흑암이 애굽을 덮은 것이
점점 심해지는 재앙의 정도와는
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까짓 거
자고 뒹구는 것 좋아하는
주하인은
삼일 동안 누워서 잠이나 자면 되지
뭐..
그런데
23시간까지는
대학교 때 자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3일은 어렵긴 하겠다.
흑암이란 것을 보니
불을 켜도 앞이 안보이는
그런 어둠을 얘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밤' 정도의 어둠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23.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
금방 답이 나온다.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을 정도의 어두움.
지옥을 연상케 하는 어두움
사람들은 눈이 안보이면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다.
고센지방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주님의 영광과 권능을 보이실 기회다.
그러나 몇가지 생각이 든다.
고센 지방에 이스라엘 백성만 있었을까?
그들을 관리하는 애굽 백성 도 있었으리라.
기독교 인으로 인하여
불신자들까지 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고센 지방의 크기가 어떠한 지 모르지만
낮과 밤이 규칙적으로 당연히 오는 환경에서 살면서
고센 지방 이외의 곳에서 어두움이 그토록 오래 있을 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냥 귀막고 편안히..
그것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입고 살면서도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가끔
밥을 먹으며 씹을 때마다
머리 속으로
의도적으로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하며
먹을 때가 있다.
삼킬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도 할 때도..
어리석은 이 주하인은
혀가 맛을 볼 수 있고
이가 튼튼히도 씹을 능력이 있고
앉아서 밥술갈 들 건강이 있는데도
그 걸 축복해주신 주님의 감사함을
늘 잊어먹고 살더라도
의지적으로나마 그리하려 하고 있다.
가끔..
축복 안에서 살면서
축복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고센의 이스라엘 인 중
혹시 있을
어리석은 자 같이 되지 않기 위하여
늘 하나님의 행사에 귀를 기울이고
시대의 변화 - 고센 이외 지방의 어두움-에
민감하고 살아야 한다.
또
고센 지방 변두리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두움과 밝음의 극명한 경계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변두리 살면
중심부에 사는 사람보다
삶은 조금 더 고달프고
조금은 가난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늘 그렇듯
고난은 진리에 빨리 도달할 방법이긴 하다.
고센 지방의 사람들을 묵상하면서
'빛과 어두움에 대한 민감성'
다시 말하면
'깨어 있을 수 있음'에 대한 것이 관건인 듯 싶다.
모세와 아론의
바로와의 사이에서
하나님이 이처럼 역동적으로 역사하셧음에도 불구하고
고센지방 깊은 곳에
그냥 설겆이나 하고 청소나 하며
일상의 삶에 -잘못된 것이 아니다. 민감성이 문제지.. -깊이 젖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 움직임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자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처음으로 돌아가
'더듬을 만한 흑암'에 대하여 이해가
가기도 한다.
흑암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는 민감성을 지니는
깨어있는 자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흑암이
그냥의 의미없는 재해나 자연현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과 관계있는
의미있는 흑암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게
바로
더듬을 만한 흑암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하고 깨어 있는 것이다.
세상과 적당히 혼합된 삶을 즐기며
양다리 걸치는 듯 한 삶보다는
철저히 주님이 오늘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혼란한 지구적 현상을 통하여
내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질 가를 확실히 결정하고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절제하리라.
조금은 더 내려놓으리라.
조금은 걱정과 근심을 덜하리라.
조금은 더 친절하리라.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기에 그렇게 하리라.
28.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가로되 왕의 말씀이 옳으니이다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주님이
고센 지방에 사는 이스라엘 같은
당신의 팔아래 거둔
신실하길 원하는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의 여부를 떠나
세상에 철저히 성공을 위주로 사는 자들,
불신자들 ... 은
이럴 수도 있다.
온전히 '세상'을 선택하는 것.
바로가
그처럼 하나님의 뜻에 가까이 접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하나님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드디어는
자신의 영혼을 붙들고 있는
사단의 속삭임에 그냥 순종해 버리는 것.
난 모세를 안볼거야.. 라고 결정해 버리는 것,
성령님의 부르심
예수님의 말씀을 극력으로 부인해 버리는 것
..
그것을 선택하는 또 다른 부류 들이 있다.
이제 그들에게는
주님의 심판 만이 기다릴 뿐이다.
적용
1. 성경 여섯 장 읽겠다.
2. 당직 서면서 열심히 묵상하겠다.
3. 최선을 다해 친절하겠다.
환우 , 직원들에게
4. 주님의 고센 백성임을 감사한다.
감사 감사 감사...........감사를 외우고 다니겠다.
5. 난 고센에 사는 기독교인이다.
감사하며 불신자애굽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행동거질 조심하겠다.
목소리는 낮히고
성질은 덜 낸다. ㅎ
6. 변두리에 사는 자 같이 혹여
느껴질 때라도
빛과 어두움에 더욱 민감할 수 있을 기회가 있음에
감사하련다.
주님은 모두 감사할 일 뿐이다.
난 행운아다.
기도
주님
어려웠습니다.
시간도 부족했지만
깊이 묵상하기에 걸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고센 지방에서도
밝은 가운데 살면서
밝음의 감사함을 모르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무지에 대하여
묵상을 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그래도
주님을 단 한번이라도 더 의식하고 살 수 있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라도
주님의 뜻을 인하여
감사하길 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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