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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믿음 사이[마26:1-16]

주하인 2014. 4. 8. 08:36

내 삶이

사뭇 더

힘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그 놀라운 사랑을

단지 앎을 넘어서

깊은 믿음으로 나아가

그리될 수 있길 소원합니다

 

비록

내 삶의 범위

그리 크지 않지만

온 우주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부르실 그날까지

최선 다해 살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 주소서

 

내 주여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라 하셨다 .

 

유월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힐 사실.

 

그 당시 , 그 시점의 제자들 ..그들도 알았고

지금의 우리 기독교인들 거의 대부분 ^^;; 뿐 아니라

나도 알고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때의 한 여자, 막달라 마리아도 알았다.

 

 하지만, 예수께 전 재산을 바쳐서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사서

예수님 머리에 부은 이는

'마리아' 한 사람 뿐이었다.

 

그것.

어찌보면 식사를 방해하는 것 같기도

미친 것 같기도 한

상식을 벗어난 행동같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바쳐서

예수께 온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

 

 

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의중을 아시고 '내게 좋은 일'이라는 표현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실 말씀이시라 하신다.

지금의 우리,

나 주하인에게도 ...

 

 

 무엇인가?

제자들도 알고 나도 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모두 안다 . 

그리고 십자가가 있어야 우리가 천국에 갈 자격이 생김도 ..

그러하심으로 천국 백성이 된 것도..

하지만, 마음 깊이 믿던가?

 

마음 깊이 믿으면

내 일상의 문제들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헌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나를 돌아보면

들어서 수도 없이 알고 있고

걱정할 것 없고

영생을 기뻐해야 할 당위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런가?

주위에서 '노후'를 이야기하면 솔깃하고

고독을 이야기하면 가슴이 찌르르 한다.

아직도 내가 중심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둘러 쌓여 다정다감한 삶을 살다가 천수 만수를 누리길 원한다 .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의 소유를 과감히 손 놓을 수 없다 .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다 .

 

 막달라 마리아 .

전 재산을 털어서 향유로 예수께 쏟아 부었다 .

그녀의 예수 이후의 삶은 어찌 되었을까?

알고 있지만 믿지 못하던 제자들은

그래도 사도행전의 말대로

사람들의 사이에 둘러 쌓여 살다가 나름 자신들의 삶을

알차게 꾸려나갔다 .

비록 대부분이 십자가 형을 받았음은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녀 마리아는 그 후 이름이 나오질 않는다.

아마 그들 ,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일정 부분 자신의 역할 을 다해가며

나름 노후를 외롭지 않게는 살았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지만

기름 부을 당시의 그녀는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며

무조건 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을 안타까워하고

타오르는 감동으로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그런 행동,

정말 '믿는 자'의 행동을 보며

나와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자.

 

 비록, 나의 이 적은 믿음과

성경에 이름을 올라갈 정도의 훌륭한 믿음이 없음을 너무 잘 아실 것이기에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

그래도 나에게 지금 예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라 하시면

과연 난 그럴 수 있을까?

 없다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난 분명히 예수님의 날 위해 돌아가심을 알고 믿는데..

 

 우선 이후의 현실에 대한 걱정이다.

위에도 썼지만... 노후 대비.

솔직히 난 자가용이 없어도 살고 

하던 골프도 포기한 지 오래고

술과 그에 따르는 향락, 포커 ,하이로, 당구, .. 와

무엇보다 그리도 좋아하던 담배가 뿐 아니라

자의반 타의 반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 자식욕심..)에 대한 포기된지 오래라서  

그리 많은 소유가 필요하지 않으리라 생각되면서도

알게 모르게 '꼭 붙들고 있는 욕심'이 있음을 난 안다 .

 

 그 욕심의 근원은 무엇이던가?

일단은 '두려움'이다.

다 놔버리면 세상에 아무 끈도 없어질 것 같은..

그것의 깊음을 스스로 바라보면

'힘이 있어야 존중을 받고

힘이 없어지면 버려질 것 같은' 그런 막연한 두려움 아닐까?

 즉, 통제력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세상에 대하여

아무 것도 내가 할 수 없음.

그것은 비단 나 뿐 아니라 모든 노년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본질적 두려움 아닐까?

거기에 난 그리 화려한 대인 관계의 능력이 없으니.. ^^;;

 그런데, 마리아는 안그랬을까?

더 그랬을 것이 분명한 사람인데도

그는 왜 저질렀을까? ㅜ.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

너무도 큰 하나님의 에너지를 느낌.

그래서 그녀는 감당할 수 없어서 향유를 부음...

그녀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었다 .

 

그녀는 '천국'을 확신했음이다.

지금 어쩌면 이땅의 고통은 잠시일 것임에도

영생은 그렇지 않을 것임을

머리속의 생각이 아닌 영혼이 믿었을 것이다 .

 

그렇다 .

나에게 부족한 것은 그런 것들이다.

믿음이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믿으면

그런 걱정들, 그런 두려움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마치 제자들이 그랬듯이 알면서도 믿지 못해

혼란을 보이는 그런 미련함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

무엇을 믿음인가?

어떻게 믿음인가?

 당연히도 살아계신 예수님이다.

그분으로 인하여 내가 갈 곳은 '천국'이고 영생임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을 뚜렷이 해야 한다.

난 앎과 믿음 사이에 서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꾸만 흐려진다.

'천국' 에 대한 더욱 뚜렷한 확신이 필요하다.

이 땅 조금 만 더 고생하면 누릴 '영생'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과 괴리된 도피성 천국개념이 아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삶에서 '연단'과정,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성화'된 영혼으로 천국에 오길 원하신다.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필요한 믿음이 있다.

'마리아'는 살동안 먹고살일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 그후의 행적은 나오지 않지만

분명코 그녀는 '행복'했을 것이다.

행복의 기준.

누가 알것인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이 퍼부어 주시는 물질로 뿌듯하고 감사하게 사는 것도

물질은 풍족하지 않지만 다른 부분에서 풀어지는 역사도

건강이 회복되는 것도 행복하게 될 수도 있지만

늘 성령이 충만하여 가진 것 없어도 '기쁨'이 유지되는

평강의 상태 만으로도 '천국같은' 삶이 되는 것을

아주 아주 조금이지만

난 틀림없이 누리고 잇지 않던가?

그리고 그 기록들이

이 블로그의 근 8-9년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

 난.. 막연하게 아직 걱정하고 있다.

내 노후를 걱정하고 있음은

그런 '행복'과 그 후의 '영생의 행운'이 있음을

그러함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얻어져

틀림없이 내게도 주어질 것임을

난.. 깊이 믿지 못화는 것이다.

 

난.. 안다.

분명코 잘안다.

그리고 믿는다.

분명코 믿는다.

그렇지만 완전히 깊이 믿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온전한 믿음과 앎 사이에 어딘가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다 .

그것...

내 기도 부족함 탓이다.

절제의 부족함 탓이고

감사의 부족함 탓이다.

 

기도를 통하여

세상의 권세들에게 내어 놓았던 부분들,

내 영혼의 영토가

온전히 '성령'으로 사로잡혀야 한다.

내 혼자 힘으로 되지 않는다.

 

어제는

퇴근 하면서 집까지의 자전거 길이 너무 짧은 듯하여

빙 돌아 작은 야산으로 뚫린 도서관길 을 통하여

집 쪽으로 내려 갔다.

가다가 새로 만든 그 도서관 마당의 벤치들이 너무 한가롭고 좋아

그 곳에 앉아 잠깐 기도하고 들어가려 앉았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더욱 그랬다.

앎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

십수년을 나를 기다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서

너무도 부족한 나.

아직도 세상의 재미와 세상의 걱정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하나님의 그 평강을 놓치지 않기 위한 갈등으로 흔들리다가...

 

 가만히 앉아서 묵상을 하고

조그맣게 읖조리듯 (성경에서 그것을 meditation, 묵상한다는 표현이라고 P목사님이 가르치셨다.^^*)

조용히 기도하고 있으면서

마음이 '믿음' 쪽으로 넘어가며 차분해진다.

난.. 기도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 너무 좋다.

내 의지나 상황과 상관 없는 '평안'.

평강.

 

그때마침 귀를 스치며 지나가는 선선한 바람.

기분이 참 좋아진다.

불현듯 느껴지는 것이 있다 .

계속 바람이 조금씩 불던 차가운 온도였었는데

어찌 지금 이 순간에 처음 느껴지는가?

 아...

하나님의 위로.

자전거 타며 더워진 몸을 말리고

나를 쓰다듬는 듯한 ..

 

 눈을 감고 내 육신 안에 온전히 담겨진 내 영혼이

그 저녁 그 산위의 하늘에 펼쳐진

온 우주를 운행하시는 성령님을 느끼는 것.

그런 느낌.

비록 내 영혼이 걱정거리와 믿음 부족함으로

우주를 넘실 거리는 그 큰 기운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하지만

'분명코 내게 임하셔서 나를 어루 만지시는

내 아버지 하나님을 난 기쁨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내 안의 그 큰 죄악들 때문에 내가 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가지 못하는

숙명적 죄적 속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 달리심으로 날 위해 그리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리 힘있지 못하게 사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시다.

 

난.. 더 기도하고

더 묵상하고

더 감사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님이 내 죽도록

가장 행복한 방법으로 이끄실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내 갈 곳은 '영생의 천국'이고

그 천국은 내 상상을 넘어서는

가장 '선한 곳'임을 잊지 않아야 겠다.

믿어야 겠다.

믿음으로 가슴이 뛰었으면 더욱 좋겠다 .

그러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난 예수님을 믿고

천국이 내 운명임이 믿어져야 겠다.

그래서 더욱 기도해야 한다.

 

 

주님.

마리아의 그 후의 행적에 대하여 약간 생각을 넓히다가

그 마리아의 나머지와 영생이 행복으로 이어졌을 것을

느끼게 하시는 듯하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선이심을 믿는다면

절대로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부디 간절히 바라옵기는

제게 주어진 모든 것이

저를 위한 것이고

제 선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비록 삶의 이 이후의 현상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도 주님의 기쁨을 놓지 않고 있으면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다가

천국에 갈 수있음을 기대하게 하소서.

주여.

천국의 영생이 더욱 뚜렷이 제게 느껴지도록 하소서.

가슴 떨리며 소천을 기대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여.

비록 혹시 제 나머지 삶이

힘들지라도 영생의 눈꼽 만치도 못되는 시간,

기쁨으로 십자가 지는 제가 되게 하소서.

말을 하지만 절대로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속성들이오니

주여...

주님이 인도하셔서

제 뜬금없는 기도와 바램들이

온전히 주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내주여.

힘을 주시옵서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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