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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과 부활과 나[마26:26-35] 본문

신약 QT

보혈과 부활과 나[마26:26-35]

주하인 2014. 4. 10. 08:54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오직 예수.

오직 예수 보혈

그 분의 그 흘리신 피로써

나는 다시 죄 사함을 얻는다.

 

 그분은

그 저녁

남들은 쉬어야 할 그때에

흘리실 '피'를 말씀하신다.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의 저녁.

인간으로서 체험해야 할 가장 '극한'의 고통을

담대히 이야기 하시나

그 분은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실 정도로 마음의 고통이 많으셨다.

그 저녁.

 

그 저녁의 그 정신적 고통.

그 저녁의 그 위대한 '인간 사랑'

그 저녁의 그 엄청난 하나님 순종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지금의 우리 '현재'가 있다.

 

그 분의 그 저녁의 피흘리실 인고의 시간 덕에

이 엄청난 죄 중에서도

담대히 살아 있을 수 있다.,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리고

그 분은 부활을 말씀하신다.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부활,

예수님 사역의 최종 종결,

하나님의 이 땅에 예비하신

그 큰 프로그램의 비밀을 말씀하시는 데도

그는 온통

자신의 멋진 제자됨에만 온 관심이 기울어져 있다.

남자다운...

너무나 인간적인..

 자기만의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으로 드러내려 하는

자아의 발로.

 

어찌 예수님의 돌아가실 것임이 더 안타깝거나

그 분의 피흘리실 것임이 '끔찍'하게 느껴져 소스라치거나

'부활'하신다는 말씀에 대한 놀라운 반응이거나

지금까지 보여주신 능력으로 가능할 것을 미루어 짐작하는 끄덕임이나

그 후에 새로 시작될 자신들의 '번영' 같은 것들이 기대되거나 하지 않고

예수님 죽으실 때 자신이 따라 죽을 결심 만 생각났을까?

 

솔직히 그것,

예수님이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심을 받아 들여 가슴에 녹이고 있는 것 만 해도

그로서는 많은 성장이 있음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성경을 읽으면서

자꾸만 드러나는 '인간들의 무지한 속성'에 대하여

다시한번 볼 수 있음이 안타깝다.

 마치,

내 진료실에 그토록 많은 시화 사진들이 걸려잇음에도

긴장하며 들어오는 환우 분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소수에서만 '아~' 하고 놀라는,

그것도 '뭐 다른 것이 없어요?' 하고 물어야 아는

그런 현상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인간들은 '지성'을 가지고 ' 감각'으로 보이는 것만 믿고 판단하려 하는 경향이 많지만

그 본다는 것 조차도 이리 어이 없이 펑크 나는데

그들의 감각을 믿는 것이 얼마나 어이 없는 일인가

늘 생각한다.

그래서 '판단'을 함부로 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큰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음을 느끼곤 한다.

 

오늘 베드로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보혈' 흘리실 것을 말씀하시고는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그는 자신이 따라죽을 말만 하고 있다 .

멋진 최후를 머리 속에서 그리며...

 

 그렇다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가?

 

일단  예수님의 고뇌다.

그 저녁.

죽음보다 더 무서운 밤이었을 것이다.

그 분은 그 무서운 밤 동안 ,

내가 안고 살아오던 모든 인생의 두려움들 보다

훨씬 크고 대단한,

아니 온 지구의 인간들이 겪을 수있는 모든 두려움을

다 체험하고 가셨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그 분은 '인내하셨다.'

우리가 알다 시피 '피땀'흘리는 기도로

그 두려움을 영혼으로 체휼하고 가셨다.

나.. 그러니

그 분의 보혈.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그냥 육신의 고통만의 상징이 아니고

우리의 '능동적 죄'로 인하거나

상처로 인한 피동적 '죄'로 인하거나

모든 '죄사함'을 위하여 흘리신

말그대로 '보배 피' , 보혈이신 것이시다.

난.. 그것을 믿어야 한다.

매일 매일 짓는 매일의 죄를

십자가 앞에 가지고 갈 때

그분이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그 귀한 '보혈'로써

씻어지고 죄사함을 받는 다는 것이다.

 

또한,

그분은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것은 새로운 것이다.

이전 것은 가고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내 일상에서의 부활.

그 부활을 난.. 안다.

부활을 통하여 과거와의 단절이 이루어진다.

내가 어찌할 수 없어 몸서리 치던

과거의 흔적들이 더 이상의 발톱을 들이밀 건덕지가 차단된 것이다.

 매일 그들이 그러고

난 그 안에서 죄 짓지만

십자가 앞에 서서 주님 보혈을 믿고 죄사함의 회개 기도를 하는 순간

내 죄는 사해지고

난 다시 부활의 영혼으로 새로와 지는 것이다 .

그것..

부활하신 예수께서 증거로 보내신 '성령'으로

증거가 된다.

성령체험이 그래서 중요하다.

단지 믿는 머리 속의 상상이 아니고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혼으로 내려와

내 죄사함의 증거가 자리 잡게 되어

내 검붉던 영혼이 점차로 순백의 부분들이 넓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 베드로는 아직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상태이다.

머리 속으로 많은 배움이 있었고

행실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예수님의 진정한 부활 신앙에 대하여

영혼 깊숙이 체휼하지 못한 상태이다 .

그러니 그 는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다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없던 것이다.

 

 오늘 나는

예수 보혈을 더 사모해야한다 .

십자가 앞에 더 다가가야 한다.

그 분의 부활을 믿고 기다리고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는 보내실 , 보내신 '성령'을 온전히 사모하고 기대해야 한다.

죄사함의 나를 기뻐해야한다.

 

 

주님.

내 귀한 주님.

그 저녁 당신의 그 인내와 순종과 긍휼히 여기심의 결단 덕에

제가 지금 이리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포악하고

누구보다 경솔하며

누구보다 교만하고

누구보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죄덩어리 죄하인이

주님의 그 결단과

그 모든 것을 같이 깨달아 십자가에 지고 가신

그 예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하여

제 가 지금 이리 주께 고백하게 됩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인내하시고

하나님 앞에 죄사한 영혼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셔서 그렇습니다.

이 죄덩어리 죄책감 덩어리 죄하인이

주하인으로 서게 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주여.

부활을 믿습니다.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성령으로 저를 늘 붙드심을 믿습니다.

감사하며

저와 제 주위의 모든 분들이

주님을 같이 깨닫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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